▲강화고등학교에서 지난 해에 펴낸 책입니다.이승숙
시아버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오야, 그래 저녁은 묵었고? 그래, 야야 아범은 들어왔나?"
"아유 아버님, 요새 저녁 같이 먹는 게 일주일에 몇 번 안 돼요."
"그래? 우에 그렇노? 술자리가 많은 갑제? 그래 가지고 건강이 개안켔나."
아버님은 목소리가 약간 쉰 상태였다. 집을 수리하시느라 힘드셨나 보다.
시가는 지금 수리 중이다. 약 30년 전에 집을 지을 때만 해도 인근에서 제일 잘 지은 집이었다는데 세월의 무게가 더해지면서 집은 낡아갔다. 그래도 두 분이 지내시기에 그다지 좁은 편은 아니지만 한 번씩 다니러 오는 자녀들 때문에 아버님은 집을 수리해야겠다고 마음먹으셨나 보다.
집을 짓던 때는 방도 크고 마루도 넓어서 동네에서 제일 좋은 집이었단다. 하지만 큰 일이 있어 5남매가 다 모일 때면 잘 방이 부족해서 마루에서도 자고 주방에서도 잔다. 하여튼 방마다 사람들이 넘쳐난다. 그래서 이번에 집을 수리하면서 화장실도 집 안쪽으로 들이고 마루에 새시도 달아 따뜻하고 편리하게 고치기로 한 것이다.
남편은 맏아들이다. 그래서인지 부모님 생각하는 마음이 남다르다. 예전에는 주로 내가 시댁 어른들께 전화를 드렸는데 언제부턴가 역할이 바뀌었다. 그 사람은 아무 때고 생각나면 불쑥불쑥 전화를 드리는 모양이다. 술 한잔 해서 기분 좋아도 시골집에 전화를 드리고 조금만 마음이 동하면 전화를 거는 눈치다.
읽고 또 읽고... "이거 우리 집 가보로 남겨야겠다"
지난 3월 중순 우리 부부는 경북 의성에 있는 시댁에 내려갔다 왔다. 우리가 사는 강화에서 가자면 승용차로 4시간도 더 걸리는 먼 곳이다. 오가는 길이 좀 멀어서 힘들지만 기뻐하실 부모님을 생각하며 시댁에 가곤 한다.
한밤중이 다 되어서야 우리는 시댁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늦은 밤에도 부모님께선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방으로 들어가서 인사를 올리고 집에서 미리 챙겨온 책을 전해드렸다. 그 책은 강화고등학교에서 지난 해에 만든 것으로 조부모님의 전기문을 쓴 책이었다. 아들이 할아버지가 살아온 이야기를 쓴 내용도 책에 수록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내려오면서 아버님 드리려고 챙겨온 것이었다.
말없이 책을 보시던 아버님이 목이 멘 목소리로 그러시는 거였다. "허, 그 참. 이놈이야. 허, 그 참…" 아버님 눈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아버님은 옆에 있던 수건으로 눈물을 훔치셨다.
작년 겨울, 강화고등학교는 조상의 뿌리를 찾기 위한 교육의 일환으로 학생들에게 조부모님의 전기문을 쓰게 했다. 그때 아들은 할아버지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다며 혼자서 할아버지댁에 다녀왔다. 아들은 내려가는 데만 해도 버스로 8시간 걸리는 고향까지 혼자 다녀왔다.
처음에는 '학교 수업까지 빠져가면서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하고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하니 '어쩌면 이런 공부가 진짜 공부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님은 그 책을 읽고 또 읽으셨다. "야야, 이거를 여러 부 복사해서 돌려야겠다. 이거를 우리 집 가보로 남겨야겠다." 아버님은 손자의 눈으로 들여다본 우리 집의 역사가 아무리 봐도 신통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