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이 그윽한 눈길로 산소 주변을 둘러보고 계십니다.이승숙
"그기 참 히안체. 꿈에 너거 할매가 보이는기라. 할매가 내 손을 잡아끌며 자꾸 할매 다리를 만지는기라."
어머니는 잔디를 심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어무이요, 와 카시니껴? 어데 안 좋으시니껴? 이카면서 내가 너거 할매 다리를 주물러 줬다 아이가. 자꾸 주무르다가 잠이 깼는데 암만 캐도 이상하더라 카이. 그래서 너거 아부지한테 캤지. 어무이 산소에 한 번 가보라고 너거 아부지한테 캤지."
지난 장마에 시댁 조부모님 산소의 축대가 무너졌습니다. 산에서 내려온 물이 그만 산소 축대를 휩쓸고 지나가 버렸나 봅니다. 시할머니가 누워 계신 아래쪽 축대가 무너졌답니다. 비 온 다음 날 아버님이 산소를 둘러보고 오셨는데도 이를 못 보고 오시자 할머니가 어머님 꿈에 나타나셔서 말씀해 주신 겁니다.
한 달쯤 전에 아버님이 전화를 하셨습니다.
"야야, 9월 17일은 날 비워 놔라이. 그 날 산소 좀 돌봐야겠다. 그러이 그 날 내려오너라."
윤달에 산소 일을 하면 좋다고 하시며 날을 받으셨답니다. 그래서 지난 토요일에 고향인 의성으로 내려갔습니다. 시조부모님을 모신 곳은 따뜻하고 아늑해 보였습니다.
"나는 암만 와봐도 여게가 좋다. 너거 눈에는 그래 안 보이나?"
아버님은 산소 자리를 둘러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아버님은 4남매의 막내로 태어나셨습니다. 아버님이 태어나시기도 전에 아버님의 아버님, 즉 우리 시할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합니다. 그래서 아버님은 유복자로 태어나셔서 아버지 얼굴도 못 보고 자랐습니다.
먹고 살 논밭전지도 얼마 없었던 우리 집은 시할머니의 길쌈과 삯바느질로 겨우겨우 생계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지문이 다 닳도록 일을 해서 자녀들을 키웠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