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 세린이에게 처음으로 추석빔 사주던 날

[사진] 어찌나 좋아하던지, 보는 제가 행복했습니다

등록 2006.10.04 14:56수정 2006.10.05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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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린아, 이 옷 누가 사줬어?"
"엄마, 아빠가요."
"아유, 예쁘네. 세린이는 좋겠다. 엄마, 아빠가 이렇게 예쁜 옷도 사주고."



시골에 가면 그동안 못 보던 옷을 입고 온 세린이에게 어머님이 누가 사줬냐고 물어보십니다. 그러면 세린이는 이렇게 엄마, 아빠가 사줬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꼭 확인합니다. "그치 엄마? 엄마, 아빠가 사 준 거지?"

그럼 아내와 저는 약간 주저하는 목소리로 "그럼, 엄마랑 아빠가 사 준 거지"하고 애써 대답합니다. 하지만 솔직히 그 옷은 사 준 옷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사 준 거라고 대답하기가 양심에 걸렸던 거지요.

6살이 된 세린이에게 지금껏 옷 한 벌 제대로 사준 적이 없습니다. 다들 그렇겠지만 물려받아 입었습니다. 둘째 처남댁에 세린이보다 2살 위인 녀석이 있어 어릴 적부터 옷이며, 장난감이며 신발 등을 모두 물려받았습니다.

세린이가 어릴 적에는, 돈이 들어가지 않아 좋았습니다. 물려받아 입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렇게 엄마, 아빠가 사 준 게 맞느냐고 물어볼 나이가 되면서부터는 왠지 마음 한 구석에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어린아이라 해도, 엄마와 아빠가 사 준 새 옷인 줄 알고 할머니와 할아버지 앞에서 자랑하는 것을 보며 솔직히 양심에 가책을 느꼈습니다. 이번 추석에도 옷장에 있는 옷 중 가장 나은 옷을 입혀 가면 분명히 어머니께서 "엄마, 아빠가 사 준 거냐"고 물을 테고, 그럼 세린이는 자랑하듯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 분명한데.


옷을 고르면서 그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썩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큰 맘 먹고 세린이 추석빔 하나 사주기로 했습니다. 녀석, '꼬까옷' 사니까 어찌나 좋아하던지. 옷을 입고 거울 앞에서 요리조리 살펴보는 녀석을 보면서 참 기분이 좋았습니다.

얼마 안 되지만 돈 벌어서 내 새끼 옷 한 벌 사주는 것이 이리도 뿌듯하고 행복한 일인 줄 미처 몰랐습니다. 이 옷 입고 시골에 가면, 할머니와 할아버지한테 "엄마, 아빠가 사 줬어요"하면서 한껏 자랑할 녀석이 눈에 선합니다.


옷 사주던 날, 녀석이 어찌나 좋아하던지 보는 제가 행복했습니다.

a 추석빔을 사러 첫 번째 들른 옷 가게에서 엄마와 함께 옷을 고르는 세린이. 하지만 녀석의 마음에 드는 옷이 없어 두 번째 가게로 갔습니다.

추석빔을 사러 첫 번째 들른 옷 가게에서 엄마와 함께 옷을 고르는 세린이. 하지만 녀석의 마음에 드는 옷이 없어 두 번째 가게로 갔습니다. ⓒ 장희용

a 엄마가 치마 하나를 골라 마음에 드냐고 묻자 녀석, 아예 외면해버립니다. 다시 세 번째 가게로.

엄마가 치마 하나를 골라 마음에 드냐고 묻자 녀석, 아예 외면해버립니다. 다시 세 번째 가게로. ⓒ 장희용

a 표정이 시큰둥. 세 번째 가게에서도 녀석의 마음에 드는 옷은 없었습니다. 다시 네 번째 가게로.

표정이 시큰둥. 세 번째 가게에서도 녀석의 마음에 드는 옷은 없었습니다. 다시 네 번째 가게로. ⓒ 장희용

a 옷 가게를 돌아다닌지 30여분이 지난 후, 드디어 녀석의 마음에 드는 옷을 찾았습니다. 꽃모양 레이스가 달린 옷입니다. 좋아서 어쩔 줄 모릅니다. '좋아라'하는 표정 좀 보세요.

옷 가게를 돌아다닌지 30여분이 지난 후, 드디어 녀석의 마음에 드는 옷을 찾았습니다. 꽃모양 레이스가 달린 옷입니다. 좋아서 어쩔 줄 모릅니다. '좋아라'하는 표정 좀 보세요. ⓒ 장희용

a 옷을 입고 흐뭇해하는 녀석. 좋으냐고 물으니 "응"하면서 자꾸만 옷을 만지작거립니다. 정말 좋은가 봅니다. 저도 어릴 적 추석 때 큰 누나가 새 옷이며 새 운동화를 사가지고 오면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녀석을 보니 문득 그 생각이 납니다.

옷을 입고 흐뭇해하는 녀석. 좋으냐고 물으니 "응"하면서 자꾸만 옷을 만지작거립니다. 정말 좋은가 봅니다. 저도 어릴 적 추석 때 큰 누나가 새 옷이며 새 운동화를 사가지고 오면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녀석을 보니 문득 그 생각이 납니다. ⓒ 장희용

a 좋아하는 핑크색 머리끈을 선물로 받고 좋아하는 녀석. 선물 덕분에 세린이 기분이 훨씬 좋아졌습니다.

좋아하는 핑크색 머리끈을 선물로 받고 좋아하는 녀석. 선물 덕분에 세린이 기분이 훨씬 좋아졌습니다. ⓒ 장희용

a 장사 수완이 좋은 사장님이 이 옷에 어울리는 윗도리라며 자꾸만 세린이에게 보여줍니다. 그 옷까지 사는 건 좀 무리라고 생각했지만 기분 좋게 사주기로 했습니다. 근데, 둘째 녀석 좀 보세요. 누나 옷을 사든지 말든지 가게에서 얻은 풍선 하나 가지고 재미있게 놀고 있습니다.

장사 수완이 좋은 사장님이 이 옷에 어울리는 윗도리라며 자꾸만 세린이에게 보여줍니다. 그 옷까지 사는 건 좀 무리라고 생각했지만 기분 좋게 사주기로 했습니다. 근데, 둘째 녀석 좀 보세요. 누나 옷을 사든지 말든지 가게에서 얻은 풍선 하나 가지고 재미있게 놀고 있습니다. ⓒ 장희용

a 아직 나이가 어려 자기도 사 달라고 떼쓰지 않고 혼자 잘 놀고 있는 둘째. 미안한 마음이 들어 녀석의 옷도 하나 사줄까 했지만, 그저 아무것도 모르고 혼자 신나게 노는 녀석을 보면서 그냥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불쌍한 녀석~.

아직 나이가 어려 자기도 사 달라고 떼쓰지 않고 혼자 잘 놀고 있는 둘째. 미안한 마음이 들어 녀석의 옷도 하나 사줄까 했지만, 그저 아무것도 모르고 혼자 신나게 노는 녀석을 보면서 그냥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불쌍한 녀석~. ⓒ 장희용

a 그런데,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둘째 녀석 보고 마음에 드는 옷 한 벌 골라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엉뚱한 곳에 가서 옷을 만져보다 휙 돌아서서는 다시 풍선을 가지고 놀더군요. 아내와 저는 "이건 네 탓이야"하고는 옷 안 사 준 것을 녀석 책임으로 돌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래도 미안하네요.

그런데,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둘째 녀석 보고 마음에 드는 옷 한 벌 골라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엉뚱한 곳에 가서 옷을 만져보다 휙 돌아서서는 다시 풍선을 가지고 놀더군요. 아내와 저는 "이건 네 탓이야"하고는 옷 안 사 준 것을 녀석 책임으로 돌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래도 미안하네요. ⓒ 장희용

a 거울 앞에서 떠날 줄 모르는 세린이. 옷이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저리도 좋아하는 녀석을 보니 제가 돈 번 보람을 느끼겠더라고요. 엄마가 시켜서 그랬겠지만 녀석이 "아빠, 추석 꼬까옷 너무 예뻐요"하더군요. 6년 만에 처음으로 내 새끼 옷 한 벌 사주며 참 행복했습니다.

거울 앞에서 떠날 줄 모르는 세린이. 옷이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저리도 좋아하는 녀석을 보니 제가 돈 번 보람을 느끼겠더라고요. 엄마가 시켜서 그랬겠지만 녀석이 "아빠, 추석 꼬까옷 너무 예뻐요"하더군요. 6년 만에 처음으로 내 새끼 옷 한 벌 사주며 참 행복했습니다. ⓒ 장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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