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가져온 정림의 관련 서류를 꺼내고 있는 타일러 병사. 왼쪽 갈색백은 동방아동복지회에서 딸려 보낸 자루로 보인다.한나영
라디오와 TV에서도 이 노래가 계속 흘러나왔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거리에서도 마치 점령군의 군가라도 되는 양 쉴새 없이 흘러나왔던 노래가 바로 <손에 손잡고>였다.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어서
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어서
서로 서로 사랑하는 한마음 되자 손잡고
고요한 아침 밝혀주는 평화 누리자
그러나 '대한의 딸' 정림은 화려한 이 노랫말과는 달리 눈물의 작별을 고한 채 쓸쓸히 조국을 떠나야 했다. 정림의 손을 잡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림을 가로막고 있던 벽을 허물어주는 사람도 없었다.
서로 사랑하는 한마음 되자고, 고요한 아침 밝혀주는 평화를 누리자고 애써 노래했지만 정림에게는 한마음 같이 나눌,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줄 사람이 이 땅에는 아무도 없었다. 참으로 메마른 땅이었다. 정림의 조국은.
그렇게 척박한 조국을 떠나 결국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던 정림이었다. 1988년 5월 2일이었다. 바로 첫 생일인 돌을 코 앞에 둔 시점이었다.
여느 가정이라면 미리 계획한 돌잔치와 초대 손님을 확인하면서 온 가족이 기쁨에 들떠 있을 행복한 날이었을 텐데…. 그렇게 서둘러 떠나 보내야 했을까. 돌이 바로 낼모레였는데.
정림이 조국을 떠난 날이 바로 돌 이틀 전이라는 사실은 나를 슬프게 했다. 부끄럽게 했다. 우리는 도대체 저 어린 것에게 무슨 짓을 했던 것인가.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공범일 거라는 생각에 나는 얼굴이 화끈거려 들 수가 없었다.
'애날리아,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정림을 태우고 갈 비행기는 도쿄를 경유하여 워싱턴으로 가는 노스웨스트 항공이었다. 그를 미국까지 데리고 갈 사람은 한국에 주둔했던 해군 병사인 타일러였다.
"이 분이 타일러예요. 저를 미국까지 데리고 온 사람이죠. 이 군인은 나 말고도 두 명의 한국 아이를 더 데리고 왔다고 해요. 공항에 마중 나온 우리 부모님이 타일러 병사와 기념사진을 찍었어요."
핏덩이의 앙칼진 울음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