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는 메워야 할 구멍이 있어요." 애날리아의 이메일.한나영
생명은 신비다. 경이로움이고 고귀함이다. 그러기에 모든 생명은 축복을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런 생명의 축복 잔치에 끼지 못한 생명이 있었다. 바로 첫 돌을 코 앞에 둔 애날리아였다.
"저는 생후 8개월 되었을 때 입양을 위해 위탁모 가정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제 이름(신정림)은 고아원에서 지어졌는데 원래는 이름도 없었던 것 같아요. 저의 생일도 진짜인지 알 수 없고요.
제가 입양되면서 가지고 온 서류에는 제 부모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어요. 저는 울산의 한 성당 계단에 버려졌다고 해요. 사람들이 저를 데려다가 8개월 동안 키웠고 입양을 위해 서울로 보낸 것 같아요."
애날리아는 서류상으로 버젓이 '신정림'이라는 제대로 된 이름이 있다. 하지만 애날리아의 아버지가 정말 신씨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신씨가 아닐 가능성이 더 커보인다. 왜냐하면 아무런 흔적 없이 애날리아는 몰래 버려졌기 때문이다.
부모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고 태어난 날짜마저 정확하지 않아 어쩌면 '잉여인간'처럼 태어난 애날리아다. 그녀에게 확실한 것은 그녀가 세상 사람들에게 발견된 날짜뿐이다. 어찌 보면 참 기구하다고 할 수 있는 인생이리라. 하지만 그런 기구한 삶을 자신에게 물려준 부모를 애날리아는 찾고 있었다.
조국이 버린 딸 곱게 길러준 미국 엄마
"헬로."
이른 저녁에 전화를 받았다. 애날리아의 양어머니로부터 온 전화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애날리아 엄마 데브라예요. 우리 애날리아로부터 나영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고마워요. 그런데 애날리아 입양 서류를 보고 싶다고 했다면서요?"
애날리아가 생모를 찾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애날리아에게 입양 서류에 대해 물었다. 부모를 찾고 싶다고 하는데 아무런 단서가 없기 때문이었다. 애날리아가 가져온 것은 입양 당시의 사진과 위탁모 사진, 비행기표, 그리고 동방아동복지회에서 받은 '보건수첩'과 <입양아 가족을 위한 기본적인 어휘집>, 그리고 'Facts about Korea'라는 한국 관련 책자가 전부였다.
"제 입양 서류는 모두 부모님이 보관하고 있어요. 잃어버리면 안 된다고 해서요. 제가 한 번 부모님께 여쭤볼게요. 그 서류들을 보여줄 수 있는지…."
그런 얘기를 며칠 전에 주고받았는데 바로 전화가 온 것이었다. 나는 기대하지 않았던 애날리아 어머니 전화에 조금은 당황해하면서 먼저 감사의 인사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애날리아로부터 부모님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사랑으로 잘 키워주셨다고요. 고맙습니다. 애날리아가 아주 곱게 자랐더군요. 감사합니다."
애날리아가 마치 내 딸이라도 되는 양 그동안 잘 키워준 엄마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 진실한 감사였다. 나는 애날리아의 조국 대한민국이 버린 딸을 곱게 길러준 미국 엄마에 대해 채무자와 같은 느낌이 있었다. 그런 죄송한 마음이 내게는 있었다.
"그런데 왜 애날리아 입양 서류를 보려고 하는 거죠?"
"애날리아에게 제 얘기를 들으셨다고 하셨는데요. 제가 한국의 한 인터넷 신문에서 프리랜서 기자로 일하고 있거든요. 애날리아가 생모를 찾고 싶다고 하는데 혹시 제가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해서요. 애날리아에 대한 정보가 많으면 부모를 찾는데 좀 수월하지 않을까요."
"그래요. 그런데 애날리아가 부모를 찾을 수 있을까요? 애날리아는 부모를 잃은 게 아니고 버려진 것인데요. 그리고 성당 계단 앞에 버려졌다고 말했다는데 그건 아니에요. 제가 보관하고 있는 입양 서류를 복사해서 보낼 테니 읽어보세요. 그리고 언제 한 번 시간을 내서 우리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