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 vs. "소환"... 화장장으로 홍역 앓는 하남시

시장과 범대위, 광역화장장 유치 문제로 팽팽한 대립

등록 2007.01.23 15:50수정 2007.01.23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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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하남시 아파트 단지에 걸려 있는 대형 현수막.

하남시 아파트 단지에 걸려 있는 대형 현수막. ⓒ 하남광역화장장 유치반대 범대위

2006년 10월 16일, 김황식 하남시장이 경기도 광역화장장을 하남시에 유치하겠다고 발표한 뒤 하남시는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김 시장은 경기도에 16기 규모의 광역화장장을 유치할 테니 2천억원의 인센티브를 달라고 요구한 상태인데, 하남시민들이 화장장 유치를 강력히 반대하면서 양측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광역화장장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은 광역화장장유치반대범시민대책위(아래 범대위)를 구성해 적극적으로 유치반대 활동을 벌이고 있다. 아침엔 시청 앞에서 소복 시위, 저녁엔 신장사거리에서 촛불시위를 하면서 화장장 건립을 반대하고 있다.

김 시장은 광역화장장을 유치해 경기도에서 2천억원의 인센티브를 받고 이를 종자돈으로 활용해 하남시 발전을 꾀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앙정부에서 21만평의 개발제한구역을 해제해주겠다는 현안사업부지 21만평이 있는데, 이 중 4만평엔 아파트를 짓고 나머지 17만평에 외자를 유치해 복합단지를 조성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2천억원의 종자돈이 꼭 필요하다는 것.

@BRI@김 시장은 1조4천억원의 외자유치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한 상태이며, 복합단지에는 버스터미널과 외국 명품 아울렛 매장, 먹을거리 장터, 로데오 거리, 영화촬영소 등을 유치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하남시 발전을 20년 이상 앞당기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홍미라(민주노동당) 하남시의원은 "화장장을 유치해 종자돈을 마련, 하남경제를 활성화하겠다고 하는데 얼마만큼 활성화하는지 근거가 없다"며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도 성공할 가능성이 불투명한데 예비타당성 조사도 하지 않고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광역화장장 문제를 취재하기 위해 찾아간 하남시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는 화장장 건립을 반대하는 대형 현수막들이 붙어 있었다. 시청 앞에서 소복을 입은 채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주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매일 아침 시청 앞에서 자발적으로 소복시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남 토박이라고 밝힌 구아무개씨는 "하남시에 화장장을 건립해선 절대로 안 된다"며 "김 시장이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화장장을 짓겠다고 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1999년부터 하남시에 살았다는 고아무개씨는 "김 시장이 주민들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 광역화장장을 건립하겠다는 것을 보며, '내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는 줄 알았더니 아니더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a 하남시청 앞에서 소복시위를 벌이는 시민.

하남시청 앞에서 소복시위를 벌이는 시민. ⓒ 유혜준



화장장 유치와 관련해 하남시의회는 타당성 조사를 위한 용역비 4억원과 주민투표예산 3억7천만원의 예산을 통과시킨 바 있다. 지난해 12월 20일에는 주민투표예산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일부 시의원이 본회의장 의장석을 점거하자, 방청석에 있던 주민들이 본회의장으로 뛰어드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김근래 범대위 위원장이 1월 15일 특수공무집행방해와 집시법 위반협의로 구속 수감된 상태다.

문영일(열린우리당) 하남시의원은 "여론조사 결과 시민의 77%가 화장장 건립을 반대하고 있는데 주민투표를 하는 것은 예산낭비"라며 "대다수 시민들이 반대하고 있는데 주민투표를 강행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화장장 관련 용역비 전액을 반납하고 주민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게 문 의원의 생각이다.

그럼에도 김 시장이 주민투표 시행 의지를 확고하게 내비치고 있어서 주민투표를 할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범대위는 김 시장이 '화장장 유치 주민투표'를 강행할 경우 주민소환제를 통해 시장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방침이다. 김 시장뿐 아니라 시의회에서 예산을 통과시킨 한나라당 소속 시의원들에 대해서도 함께 주민소환을 한다는 계획이다.

a 경기도청 앞에서 광역화장장 유치 반대 집회를 하는 하남시민들.

경기도청 앞에서 광역화장장 유치 반대 집회를 하는 하남시민들. ⓒ 유혜준

김 시장은 '주민투표 결과에 따라 화장장 유치를 결정할 것이며 현재로서는 결정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화장장 유치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굳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시장은 주민 설명회만 충분히 한다면 시민들을 설득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범대위에서 설명회를 원천봉쇄할 방침이어서, 설명회를 통해 주민들을 설득하겠다는 김 시장의 계획은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하남시가 계획한 설명회는 범대위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예정대로 하지 못하고 소규모로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범대위와 일부 하남시민들은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하남시의 주거환경이 훼손되는 걸 원치 않고 있다. 특히 범대위는 이번 화장장 유치반대 활동을 통해 시민들의 자치역량이 한 단계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 5·31 지방선거에서 '묻지마 투표'를 한 것이 이번 사태를 초래했다. 사람을 잘못 뽑은 하남시민들의 책임이 크다. 나 역시 반성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하남시민들은 주민 자치에 대한 생각을 바꿀 것이다."

하남시청 앞에서 만난 한 하남시민의 말이다.

"화장장, 혐오시설 아니라 편의시설"
[인터뷰] 김황식 하남시장

▲ 김황식 하남시장
김황식 시장은 어떤 입장일까? 김 시장은 하남시의 93%가 개발제한구역이기 때문에 발전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광역화장장을 유치해 2천억원의 인센티브를 받은 뒤 이를 종자돈 삼아 하남시 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선 주민투표를 통해 시민들의 의사를 확인한 뒤 찬성으로 결정되면 화장장 건립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김 시장은 주민설명회만 충실히 한다면 '승산'이 있다고 밝혔다. 최신식 시설로 짓는다면 화장장은 더 이상 혐오시설이 아니며, 환경오염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

김 시장은 다른 자치단체의 경우 주민투표조차 해보지 않고 화장장 유치를 무산시켰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주민투표를 하겠다며 강한 의지를 내보였다. 또한 주민투표 결과 '반대'로 결정되면 깨끗이 승복하겠다고 밝혔다.

- 하남시의 광역화장장 유치계획을 설명해 달라.
"광역화장장은 경기도에서 추진하는 사업이다. 16기 규모로 경기도에서 건립비용을 대고 하남시는 유지·관리만 하게 될 것이다. 공해가 없는 최신시설로 만들어 달라고 경기도에 요구했다. 또한 30만평 규모의 공원을 조성해달라고 했다.

현재 확정된 장소는 없다. 민원이 가장 적게 발생하고, 20~30만평의 빈 땅을 확보할 수 있으며, 임산이 덜 수려하고, 고속도로에서 화장장 전용 진·출입로를 만들기 양호하며, 시내를 통과하지 않는 조건으로 부지를 선정하고 기수와 규모를 정할 예정이다. 그런 후 경기도에서 인센티브를 확정·발표해주고 공청회와 주민설명회, 여론조사를 한 뒤 주민투표로 가부를 결정할 것이다. 지난 1월초에 타당성 조사를 위한 용역이 발주된 상태다."

- 지난 5·31 지방선거 당시 시장의 공약에는 없던 내용이다. 주민들은 공약에 그런 내용이 있었다면 당연히 뽑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는데 언제 계획을 세운 것인가?
"가평군에서 광역소각장을 유치하려고 했으나 주민 반대로 무산됐다는 뉴스를 접한 뒤, 우리가 유치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으로 김문수 경기도지사를 만나 '2천억원의 인센티브를 주면 하남시가 해 보겠다'고 얘기했다.

7월부터 3개월 동안 화장장에 대해 많이 공부했다. 화장장이 혐오시설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옛말에 처갓집과 뒷간은 멀수록 좋다고 했지만 이제는 처갓집은 가까울수록 좋고, 뒷간은 화장실이라는 이름으로 안방까지 들어와 있다. 그만큼 인식이 바뀌었다. 화장장은 더 이상 혐오시설이 아니다."

- 주민들은 시장이 주민들의 의사를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화장장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한다. 주민의견을 충분히 수렴한 후 정책결정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화장장 건립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일단 주민투표에 붙여 주민의 의사를 물을 예정이다. 지난해 10월 16일 시의회에서 가장 먼저 화장장에 대해 설명했다. 설명회, 공청회, 여론조사, 주민투표를 통해 주민 대다수가 반대하면 안 한다는 전제로 설명을 시작했다. 정책 입안을 하려고 타당성조사 용역비, 선진시설 견학비, 여론조사비 등 예산을 요청했다. 주민투표를 한 뒤 주민 대다수가 반대하면 유치하지 않겠다."

- 범대위에서는 자체 여론조사 결과 시민의 70% 이상이 화장장 건립을 반대한다며 주민투표를 반대하고 있다. 여론조사 후 주민투표 여부를 결정할 의사는 없는가?
"민주주의는 절차와 과정을 중히 여기고 거기에서 나온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다. 반대한 사람도 승복할 수 있고, 찬성한 사람도 승복하기 위해서는 주민투표가 가장 객관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자치단체는 반대에 부딪혀 주민투표를 하지도 못했다. 주민들의 총의를 확인하기 위해서 주민투표는 꼭 해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주민투표를 하겠다."

- 주민투표는 언제 할 계획이며, 화장장은 언제 착공할 예정인가?
"주민투표는 설명회를 충분히 한 후에 할 것이다. 현재는 6월에서 8월 사이에 할 생각이다. 주민설명회를 충분히 한 후에 하겠다. 하남시민 2~3만명 정도를 대상으로 설명회를 할 수 있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다. 설명회를 충분히 하지 못했다고 판단할 경우, 시기가 늦어질 수도 있다. 화장장 착공은 2009년에 할 수 있을 것으로 보며, 2012년에는 완공될 것이다.

- 주민투표를 강행하고 화장장건립을 계속 추진한다면 주민소환제를 통해 시장을 심판하겠다는 게 범대위 방침이다. 어떤 대책이 있나?
"주민들에 의해 시장이 됐는데 주민들에 의해 소환대상이 된다면 어쩔 수 없다. 법대로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주민소환제의 입법취지에 따르면, 정책에 의한 것은 소환대상이 안 된다고 본다. 부정을 저지르고 형사소추의 대상이 된 것도 아닌데도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 어느 자치단체장이 과감하게 정책을 추진할 수 있겠는가. 그런 것을 무서워한다면 소신껏 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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