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이 딸기 먹으면 피가 마르는 겨?"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 94] 뱀딸기

등록 2007.01.28 09:24수정 2007.01.28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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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피어나기 전의 수줍음은 참 아름답다.

피어나기 전의 수줍음은 참 아름답다. ⓒ 김민수

꽃이 가장 아름답다고 느껴질 때는 언제인가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슬방울 송글송글 이고 있는 꽃과 활짝 피어나기 직전의 꽃을 좋아합니다. 활짝 핀 꽃이라도 아침 햇살 혹은 저녁 햇살을 온 몸에 가득 이고 밝은 등불처럼 빛나는 꽃을 좋아하지요. 물론 피어난 곳에 따라 같은 꽃이라도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지요. 그래서 때론 비바람에 상한 꽃도 아름답고 벌레 먹은 꽃도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꽃을 사랑하기 시작하는 건 아마도 이름을 알아 가는 일부터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이 궁금하듯 말입니다. 요즘 야생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야생화전문매장을 찾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되었고, 이른 봄 들꽃을 찾아 떠난 여행길에서 야생화 사진을 찍는 이들을 심심치않게 만납니다. 좋은 일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들꽃에 대한 사랑이 결국 소유하는 것으로 종지부를 찍는다는 것이지요. 이름을 알고 사진을 찍으면 그것으로 그를 다 안다고 하는 착각하는 이들이 있기도 하고, 야생화를 어떻게 해서든 소유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a 뱀이 많을 것만 같은 으슥한 곳에 피어난다.

뱀이 많을 것만 같은 으슥한 곳에 피어난다. ⓒ 김민수

뱀딸기 같이 흔한 꽃은 집에 가져가 키우라 해도 그럴만한 공간이 없다고 거절할 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귀한 꽃, 아름다운 꽃의 기준은 희귀성이나 상품가치 등으로 결정됩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생각들은 왜곡된 들꽃사랑이라고 봅니다.

물론 저도 귀한 꽃을 만나면 기분이 좋지요. 자랑하고 싶지요. 갖고도 싶지요. 그러나 그럴 때 최선의 방법은 그를 그 곳에서 자라게 하는 것이라는 걸 압니다. 차후에 그 곳에 들렀을 때 누군가 파헤쳐 간 흔적이 있으면 "차라리 내가 가져다 키울 걸"하는 후회가 밀려올 때도 있습니다.


물론 흔한 것들이나 지천인 것들은 화분이나 집 주변에 심기 위해 캐올 때도 있답니다. 간혹 꽃을 꺾어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기도 하고, 꽃잎을 따서 책에 끼워 넣기도 한답니다.

사랑이 깊어지면 그들과 오랜 시간 마주보면서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그냥 만나서 사진 찍고 돌아서는 것이 아니라 한참 그 곁에 앉아서 그 꽃이 그 곳에서 피고 지는 사연들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고, 곁에서 책도 읽고, 사색도 하며 "잘 있어! 네가 있어서 행복해!"하고 돌아오는 것이지요.


때론 다른 꽃들도 만나고 싶은 마음에 발걸음이 빨라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꽃들을 만나 많은 사진을 찍는다고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 사진을 얻는 게 쉬운 건 아닙니다.

a 지난해 마지막 날 하우스에서 만난 꽃, 추위에 오히려 더 단단히 피어난다.

지난해 마지막 날 하우스에서 만난 꽃, 추위에 오히려 더 단단히 피어난다. ⓒ 김민수

이 뱀딸기 꽃은 좀 특별한 것입니다. 지난해 12월 마지막 날, 비닐하우스 안에서 만난 꽃이기 때문입니다. 12월 마지막 날 뱀딸기를 만날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행운을 잡은 것이지요. 그날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다가오는 새해에 좋은 일들이 가득할 것만 같아서 휘파람이 절로 났지요.

그러다 생각해 보았습니다. '뱀딸기 꽃이 지천인 계절, 그 때에도 나는 이렇게 뱀딸기꽃 한 송이를 감격하면서 바라보았었는가?' 참으로 소중한 것들이 지천일 때에는 그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다가 다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 남은 하나로 행복해하는 인생, 이미 우리 삶에 가득한 소중한 것들이 없어지기 전에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다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후회해도 그때는 늦습니다.

계절이 돌고 돌면 꽃들이야 다시 만날 수 있다고 해도, 다시 피어날 수 없이 사라져버리는 것들과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우리의 오늘은 어찌해야 할까요? 이제서야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는 예수의 말씀이 마음 깊이 각인 됩니다. 우리는 모두 내일을 위해서, 아직 오지도 않은 내일을 위해서 살아가다 오늘을 잃어버리고 살아갑니다.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의 염려와 근심까지 미리 가져와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당장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도 제대로 살지 못하면서 오지도 않은 내일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a 양지꽃과 비슷하지만 꽃이 진 후 빨간 딸기를 탐스럽게 맺는다.

양지꽃과 비슷하지만 꽃이 진 후 빨간 딸기를 탐스럽게 맺는다. ⓒ 김민수

어린 시절에는 주전부리의 대부분을 자연에서 얻었습니다. 조금 대담한 친구들은 뱀까지도 잡아서 구워먹었지요. 저의 경우도 자연에서 많은 주전부리를 얻었는데 다 기억이나 할까 모르겠습니다.

봄나물은 물론이고 보리수, 밤, 도토리, 개암, 띠(삘기), 메뿌리, 산딸기, 칡, 버섯, 개구리, 메뚜기, 각종 민물고기 등 먹을 수 없는 것을 빼놓고는 거의 다 먹었지요. 세 가지 못 먹는 것이 있었는데 몰라서 못 먹고, 없어서 못 먹고, 안 줘서 못 먹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친구들이 뱀딸기를 먹으면 피가 마른다고 했습니다. 은근히 겁이 나데요. 뱀이 있을 것만 같은 으슥한 곳에 피어나는 것도 그렇지만 혹시라도 뱀의 독이 딸기 속에 들어있어서 정말로 피가 말라 죽는 것은 아닌가 조마조마했지요. 그래도 따먹어보았는데 맛이 별로입니다.

아침 일찍 이슬을 머금은 것들 중에서 잘 익은 것들은 약간 단맛이 있는데 그냥 밋밋한 맛이었지요. 어른이 되어 추억을 되새기며 뱀딸기를 따먹어봤는데 단맛에 길들여진 혀는 그를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더군요.

지금도 뱀딸기를 보면 "정말 이 딸기 먹으면 피가 마르는 겨?"하고 묻던 순진한 어린 시절이 떠오릅니다. 아마도 그 말은 주전부리가 흔하지 않던 시절 자기 혼자 뱀딸기를 독점하려고 누군가 퍼뜨린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아닌 것 같은 것이 그 무렵이면 뱀딸기 말고도 이런저런 맛난 것들이 많이 있을 때거든요. 지금도 정말일까 궁금합니다.

a 먹음직스러운 뱀딸기, 그러나 맛은 밋밋하다. 뱀딸기를 먹으면 피가 마른다는데 사실일까?

먹음직스러운 뱀딸기, 그러나 맛은 밋밋하다. 뱀딸기를 먹으면 피가 마른다는데 사실일까? ⓒ 김민수

꽃 한 송이에 딸기 하나입니다. 햇살 좋은 곳에 피어나는 양지꽃의 행렬에 가려 으슥한 곳에 피어나는 뱀딸기꽃은 존재하는 것 같지도 않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빨간 열매들이 소담스럽게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정말 자연은 못 말립니다. 누가 인정해 주지 않아도 자기 모습 그대로 최선을 다합니다. 그리고 비교하지도 않습니다. 양지꽃이 더 예쁘다고 기죽지도 않고, 그냥 수천 수만 년 자기의 모습 그대로 피고 집니다. 사람의 손이 타지 않는 한 자연은 그렇게 피고 지는 것입니다.

오늘은 막내와 수족관 구경을 하러 갔습니다. 그곳에는 여러 종류의 금붕어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인공수정을 한 결과 탄생한 것들입니다. 한참을 보던 막내가 "아빠, 그러니까 이 금붕어들은 기형이잖아, 그런데 뭐가 예뻐?"합니다. 내 아들이라서가 아니라 참 기특하더군요. 그래요,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자연스럽기 때문이고, 자연스럽다는 것은 자기의 모습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이겠지요.

뱀딸기는 어릴 적 보았던 것이나 나이가 들어 만난 것이나 똑같습니다. 그래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어린 시절보다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 깊어져서 그런지 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니 더 재미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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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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