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박하사탕>의 한 장면
이스트필름
고문은 피고인의 자백을 확보하기 위해서, 상호 모순되는 진술을 해결하기 위해서, 공범을 알아내기 위해서, 그리고 일종의 형이상학적이고 불가해한 방식으로 피고인의 오명을 제거하기 위해서, 혹은 여죄를 발견하기 위해서 행해진다.
고문의 역사는 오래됐지만, 서구에서는 11세기 이후 종교재판의 영향으로 일반 법정으로 보편화됐다. 그러나 근대 들어 몽테스키외 등 계몽주의자들에 의해 고문에 대한 탄핵이 확산됐고, 고전범죄학이론가 체자레 베카리아에 의해 고문의 논리적 근거가 논박됐다.
고문하면 다 분다? 빈약한 고문의 논리적 근거베카리아에 의하면, 범죄사실이 확실하다면 범죄자의 자백이 필요없기 때문에 고문은 쓸 데 없다. 반대로 범죄사실이 불확실하다면 범죄사실이 입증되기 전에는 무고한 자로 간주되므로 고문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또 때로 진상을 발견하기 위해 고문한다고 하지만, 바로 그 수단 때문에 범죄자와 무고한 자의 차이점이 사라진다.
고문은 건장한 악당을 면책시키고, 허약자, 결백자에게 유죄의 형을 선고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다. 무고하든 범죄를 저지르든 간에 억세고 용기있는 자는 혐의를 벗게 되고, 나약하고 겁많은 자는 유죄의 형이 선고될 것이다. 나아가 격심한 고통은 대다수 인간의 표정을 통해 드러날 모든 표지를 왜곡시켜 진위를 구별해낼 미세한 차이점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버린다.
따라서 고문을 통해 상호 모순된 진술의 해결이나 공범을 알아낸다는 것도 허구에 불과하게 된다. 고대 로마에서조차 고문은 노예를 제외하고는 사용이 인정되지 않았다.(참고: 체자레 베카리아, <범죄와 형벌>)
결국 고문이 진실의 수단이라는 것은 억지에 불과하다. 기껏 고문 가해자들의 사후 정당화논리에 불과하다. 이 글은 불과 수십 년 전, 혹은 현재일지도 모르는, 권위주의 시대 국가체제의 심장부를 들여다본다. 통제받지 않는 정부, 법치하지 않는 권력의 칼끝은 항상 가장 평범한 시민을 향해 있었다.
70일간 불법구금... 안기부와 검찰·경찰·법원 모두 한통속형사소송법상 수사기관은 피의자를 체포한 후 48시간 이내 영장을 청구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법 원칙은 '간첩사건' 앞에서는 무기력했다. 법원조차 그러했다. 진실화해위원회(진실위) 사건 조사과정에서 당시 수사관들은 고문가해 의혹을 대부분 부인했지만 신청인과 참고인들의 피해 주장은 구체적이고 일관됐다.
일본 관련 간첩조작사건의 수사기관은 주로 중정(중앙정보부)과 보안사였고, 일부 경찰이 담당하기도 했다. 피해자들의 불법구금 일수는 최하 6일부터 70여 일에 이르렀다.
진실위는 당시 체포·연행이 임의동행 형식이었다 하더라도 당사자의 동의가 없었다는 점과 구금된 장소로 봤을 때 '체포'로 보아야 하고, 당시 형사소송법에 의하면 긴급체포 후 48시간 내 영장을 발부받아야 했기 때문에 48시간을 초과해 발부된 영장도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한편 수사관들도 영장 없이 48시간을 초과해 구금한 행위가 위법이라는 점을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
오주석 사건을 조사한 당시 안기부 수사관들은 피의자 장기구금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었다. 당시 오주석을 연행한 안기부 수사관 이○○는 "연행 날짜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오주석을 춘천에서 연행해 장기 구금한 것 같다"며 "장기 구금은 우리가 반성할 일이다. 중간에 귀가시키거나 하면 증거를 없앨 수 있어 장기간 구금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또다른 안기부 수사관 이○○도 "50여 일 동안 안기부에 구금한 것은 당시 수사관행상 어쩔 수 없는 일"로 "이는 검찰이나 법정에서도 용인된 부분"이라고 진술했다. 그는 다른 공동피의자들도 비슷한 기간 동안 조사를 받았다고 밝혔다.
안기부 수사관 박○○는 "자백을 받을 때까지 장기 불법구금했다"며 "간첩사건의 경우 순순히 자백하는 경우가 없고 조총련 사건은 증거도 빈약해 추궁하여 자백을 받으려고 장기 구금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수사기관의 장기 불법구금에 대해 검찰도 묵인한 것으로 보인다. 안기부 수사관 김○○는 "사건 수사 초기에 검찰과 협의했고 수사를 진행하면서도 상의했다"고 진술했다. 안기부 수사관 우○○도 "피의자를 연행해 왔을 때 검찰에 연락한다", "직접 가기도 하고 검사가 부 내로 오기도 해 사건에 대해 협의를 한다"고 밝혔다. 때문에 검찰도 송치 이전에 사건을 인지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안기부의 불법구금 사실도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수사기록을 검토한 법원 역시 피의자들의 장기 불법구금 사실을 몰랐다고 할 수 없다.
불법구금 기간 동안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의 밀폐된 조사실에 갇혀 생활했다. 가족이나 변호인 등의 접견은 불허돼 최소한의 법률적 도움이나 자기방어가 불가능했다. 불법구금은 피조사자로 하여금 언제 풀려날지 알 수 없다는 좌절감과 주위로부터 도움을 받을 가능성이 차단됐다는 고립감을 심어준다. 이 좌절과 고립감은 그 자체로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수반한다. 자신이 간첩혐의를 받고 있고, 중정이나 보안사와 같은 기관에서 고문 등이 가해진다는 말을 들었거나 암시를 받은 상태라면 피조사자는 이미 자포자기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 상황에서 피조사자는 쉽게 수사관들이 요구하는 질문에 순응하는 답변을 하게 된다. 심지어 불법구금 기간이 길어지면서 피조사자가 수사관의 요구를 미리 간파하고 자신이 허위 자백한 내용의 미비점을 스스로 메꾸어 가기도 한다. 이는 마치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사건에서 학살장소로 끌려가던 청년이 자신의 손목을 묶은 밧줄이 헐거워졌다고 감시 군인에게 고쳐 매줄 것을 요구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 상황에서 피조사자의 목적은 오로지 현재의 고립된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 외에 어떤 것도 없어진다.
수사관들의 변명 "다른 사람들은 했지만... 난 고문 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