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로' 상표가 새겨진 셔츠를 입은 북한 어린이(노란색).
신은미
변화는 북한 주민들의 복장에서도 드러난다. 학생들은 나름 멋을 부리고 성인 또한 그들만의 패션으로 치장한다. 심지어 '폴로' 상표가 달린 셔츠를 입고 다니는 어린이들도 있다. 어른들의 옷 색상도 더 밝아지고 디자인도 화려해진다. 여성들의 치마는 짧아지고 구두 굽은 높아졌다. '멋쟁이' 북한 여성들에게 귀걸이·팔찌 그리고 스마트폰은 기본이고 화려한 양산은 필수 아이템이다. 여성들이 외모를 가꾸고 치장을 하려는 건 어딜 가나 같다. 북한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게다가 정부의 외국어 강화 정책에 따라 학생들을 비롯해 주민들 사이에는 외국어 학습 열풍도 대단하다. 비록 외부와는 아직 연결이 안 되지만 국내에서 사용하는 인트라넷이 있다. 북한의 IT산업 역시 발전하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10년, 아니 5년 정도만 지나도 북한은 지금과는 또 다른 모습일 것이라 예상해본다. 내가 북한을 처음 방문했던 2011년과 지금 2015년 사이에도 눈에 띄게 큰 변화가 있었으니 말이다.
북한에서 먹은 뉴질랜드산 소고기
평양 시내 여기저기를 걷다 보니 어느덧 호텔이 있는 평양역에 도착했다.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프다. 남편도 박 교수도 옆에서 배고프다며 저녁 먹으러 가자고 아우성이다. 마침 역 앞에 있는 한 식당에서 숯불구이 냄새가 우리 일행을 유혹한다. 우리는 서로 눈을 몇 번 마주치고는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그 식당으로 향한다. '은하수 음식점'이라는 간판이 달려 있다.
박 교수는 저녁 일정을 위해 호텔에서 기다리고 있을 그녀의 안내원 송영혜씨에게 역 앞 '은하수 음식점'으로 빨리 오라고 연락을 넣었다.
북한의 음식점은 남한과 달리 반찬을 하나하나 따로 주문해야 한다. 우리는 전식으로 떡볶이, 해삼냉채, 양배추 보쌈김치, 미역무침, 소불고기, 소갈비, 모듬야채를 주문했다. 그리고 주식으로는 냉면과 쟁반국수를 주문했다.
소고기를 보니 첫 북한 여행이 생각났다. 2011년 10월 북한을 처음 여행했을 때 북한에서의 첫 식사 메뉴가 불고기였다. 소고기가 어찌나 질긴지 도저히 씹어지지 않았다. 보다 못한 안내원(지금은 내 수양딸이 된 김설경)이 눈치를 채고 "뱉으십시요"라고 했을 정도였으니까. 나중에 들은 것이지만, 북한에서 국가가 소를 관리하며 식용으로 소를 도축하는 건 불법이란다. 그렇다면 아마도 당시 내가 먹은 소불고기는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늙은 소를 도축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그 후 여러 번의 북한 여행을 하면서 육회와 소적쇠구이를 맛있게 먹었다. 고기가 상당히 부드러워서 그 사이 법이 바뀌었는지 의아했는데 이번에 그 의문이 풀렸다. 종업원에게 "이 소고기는 국내산이에요?"라고 묻자 "뉴질란드 수입 소고기입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갈비는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위 'LA갈비'가 틀림없어 보였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 교역이 없으니 아마 제3국을 통해 들어왔으리라 짐작된다.
나는 북한이 외국으로부터 소고기를 수입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아마 국가가 수입하는 게 아니라 독립채산제로 운영되는 식당들이 무역업자를 통해 구입하는 것이라고 추측한다. 국가기관에 소속돼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사기업으로 운영되는 이런 비즈니스들이 전국에 퍼져있는 장마당과 함께 지금 북한의 민간경제를 주도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조국에 사랑의 묘약을
▲ 평양역 앞 스낵코너 풍경.
신은미
식당 밖 먹자골목은 사람들로 붐빈다. 예전에 봤던 체육복권 판매대도 그대로다. 역 앞에는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 차있다. 2012년 5월 이곳에서, 신병훈련을 막 마친 병사들이 더플백(duffle bag)을 깔고 앉아 임지로 가는 열차를 기다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키가 아주 작고 나이도 어려 보이는 병사들을 보고 얼마나 가슴이 아렸는지….
당시 나는 그 어린 병사들과 일부러 눈을 마주쳐 눈인사를 해주곤 했다. 어린 아들을 군대에 보내놓고 그 어머니는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눈시울을 적셨을까. 똑같은 심정으로 눈시울 적실 남녘의 어머니들을 생각하며 민족의 화합과 조국의 평화 통일 염원을 가슴에 새기는 순간이기도 했다. 즐거웠던 하루가 갑자기 우울해진다. 무기력한 발걸음에 허공을 바라보며 토하듯 기도한다.
"주여, 70년 분단의 상처로 피멍울진 우리 민족! 형제의 심장에 총을 겨눠야 하는 자식을 철책선으로 보내놓은 우리의 어머니들은 오늘도 먼 하늘 바라보며 앞치마 움켜쥐고 눈물을 흘립니다. 주여, 제발 자비를 베푸소서!"
▲ 평양역 앞의 모습.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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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음대 졸업.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 음악박사. 전직 성악교수 이며 크리스찬 입니다. 국적은 미국이며 현재 켈리포니아에 살고 있습니다. 2011년 10월 첫 북한여행 이후 모두 9차례에 걸쳐 약 120여 일간 북한 전역을 여행하며 느끼고 경험한 것들 그리고 북한여행 중 찍은 수만 장의 사진들을 오마이뉴스와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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