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 그리고 10만인클럽 회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 6월 14일부터 23일까지 일본 순회강연을 마치고 6월 24일부터 7월 9일까지 북녘의 수양딸을 찾아 북한을 여행했습니다. 또 지난 10월 초에도 북한을 한 번 더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새 연재 '수양딸 찾아 북한으로'를 통해 그 사이에 있었던 일을 전하려 합니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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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의 음악 라이브러리 '하나음악정보센터'. ⓒ 신은미
2015년 6월 26일. 오늘도 아침부터 우리 일행인 박 교수의 연구에 필요한 북한영화 DVD와 북한음악 CD를 구하기 위해 함께 나선다. 첫 방문지는 '하나음악정보센터'. 일종의 음악 라이브러리다. 일단 박 교수가 원하는 북한 음악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사실 이곳은 박 교수보다 내가 더 관심을 두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나도 하나음악정보센터 한쪽에 자리를 잡고 모니터를 들여다본다. 웬만한 음악은 다 갖춰놨다. 세계적인 테너들인 파바로티, 도밍고, 까레라스를 비롯해 심지어 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스의 노래들도 있다. 음악뿐만 아니라 영화도 소장하고 있다.
파바로티 등의 노래들은 이곳의 커피숍이나 맥줏집에서도 흔히 들을 수 있지만, 미국의 록 뮤직은 들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음악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위해 미국 대중음악들도 일부 소장돼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유럽의 노래나 영화들도 볼 수 있었는데, 해설원은 "이 모두가 예술을 사랑하는 장군님(김정일 위원장)의 배려"라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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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의 하나음악정보센터. 교원 혹은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영상물을 시청하고 있다. ⓒ 신은미
하나음악정보센터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주로 음악이나 영화를 전공으로 하는 교원·대학생들로 보인다. 이곳에는 30~40석 규모의 음악감상실도 있는데, 지금까지 구경해본 적이 없는, 그야말로 최고의 음향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이런 시설을 보통사람들이 마음대로 이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음악이나 영화를 전공하는 선생들과 학생들에게 이 시설은 더없이 좋은 라이브러리가 될 것이다. 남편은 헤드폰을 쓰고 옆 사람들을 의식하지도 못한 체 비틀스의 노래를 따라 부른다.
"I wanna hold your hand. I wanna hold your ha~nd."
아무것도 든 게 없는 김밥
'하나음악정보센터'를 나오니 뜨거운 햇볕이 내리쬔다. 전날 냉면을 먹으면서 식당 창가를 통해 물놀이 가는 아이들을 본 것을 기억해낸 박 교수가 안내원 김혜영 선생에게 물놀이 공원에 가자고 제안한다. 나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어떻게 물놀이를 가느냐고 이의를 제기한다. 김혜영 선생은 "물놀이장에 가면 수영복이며 뭐며 다 있다"라면서 걱정 말고 가자고 한다. 남편 역시 "여기까지 와서 애들처럼 물놀이장이나 가냐"면서 가지 않겠다고 펄쩍 뛴다. 어디 좋은 데 가서 시원한 맥주나 마시잔다. 박 교수가 남편을 겨우 달래 일정에도 없는 수영장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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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에 있는 '문수물놀이공원'.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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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문수물놀이공원에서. 평양시민들이 물놀이 기구 앞에 모여 있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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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문수물놀이공원. 한 할머니가 손자를 데리고 입장하고 있는 모습. ⓒ 신은미
물놀이 공원의 이름은 '문수물놀이공원'. 실내와 실외로 이뤄진 물놀이공원은 규모가 상당히 크고 시설도 훌륭하다. 외국인 입장료는 수영복, 비누, 샴푸, 린스, 타올 등을 포함해서 미화 10달러.
파도타기와 동굴 속에 흐르는 인공 물줄기를 타고 떠내려가기를 즐기던 박 교수와 나는 이 물놀이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놀이기구를 타보기로 했다. 드럼통 같은 것을 꼬불꼬불 연결해 놓은 롤러코스터 미끄럼틀이다. 막상 미끄럼틀 위에 올라가 보니 아래에서 본 것보다 훨씬 길고 경사가 가파르며 굴곡이 심하다. 속도가 빨라 보이는 데다가 낙차도 커 위험할 것 같다. 우리 차례가 돼 보트에 올랐다.
이후부터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치 악몽에서 깨어나려고 몸부림쳤던 것만 같은 감정만 남아있을 뿐. 어떻게 보트에서 내렸는지조차 모르겠다. 겁에 질린 박 교수는 내 옆에서 소리 내어 울고 있다. 몹시 놀란 모양이다. 무슨 일인가 싶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우리를 에워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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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문수물놀이공원 안의 간이 판매대. 우리 일행은 이곳에서 아이스크림과 단무지밖에 안 들어가 있는 김밥을 샀다. ⓒ 신은미
30분 정도 지났을까. 다행히도 안정을 찾은 박 교수는 배가 고프다며 매대(매점)을 찾는다. 박 교수를 파라솔 테이블에 앉히고 김밥과 아이스크림 그리고 생수를 샀다.
김밥은 허여스름한 단무지 같은 것 외에는 아무것도 들어간 게 없다. 잔뜩 실망한 박 교수가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 입 베어 물었는데, 갑자기 눈을 크게 뜬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던 내게 어서 먹어보라며 김밥 한 줄을 권한다.
맛이 고소하다. 김의 향기가 돋보인다. 밥에 참기름을 치고 맛소금으로 짐작되는 양념을 넣어 버무렸다. 함께 씹히는 달지 않은 짭짤한 짠지무가 훌륭한 반찬이 돼 입속에서 어우러진다. 오히려 여러 가지 재료를 넣으면 이 김밥의 고유한 맛이 없어질 것만 같다. 호들갑을 떨며 맛있게 김밥을 먹고 있는 우리에게 김혜영 선생이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다.
"시내 판매대에서도 많이 팝니다. 값도 여기보다 아주 눅습니다(쌉니다). 나중에 길거리 매대에서 사 드셔 보십시다."
이후 우리 일행은 길거리 매대에서 김밥을 사 들고 먹으면서 걸어 다니기도 했다. 젊잖고 격식을 많이 따지는 북한 동포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때로는 장난기 섞인 표정으로 우리를 힐끔힐끔 쳐다보곤 했다.
북한의 물가... 정말 궁금한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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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문수물놀이공원 서비스 사용료 현황. ⓒ 신은미
물놀이장의 프런트 데스크. 이발 750원(한화 약 110원), 미용 2000원(한화 약 295원), 미안(얼굴 마사지) 15000원(한화 약 2200원), 전신 안마 40000원(한화 약 5900원), 부분 안마 20000원(한화 약 2950원)이라고 적힌 가격표가 보인다.
특이한 것은 머리 미용료와 전신 안마비가 무려 20배나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대체 안마를 얼마나 오랫동안 하는지 알 수는 없으나 안마와 머리를 하는 데 드는 시간이 각각 1시간가량이라고 가정해볼 때, 안마의 가격이 미용료보다 무려 20배나 비싸다.
머리 미용에 필요한 기술이나 안마에 필요한 기술, 그리고 들어가는 재료나 도구 등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여겨진다. 그러니 북한에서 재화나 용역의 가치가 그것에 투입된 노동시간에 의해 정해지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수요와 공급에 의해 시장물가가 정해지는 것도 아닌 듯하다. 왜냐하면 전신 안마와 머리 미용이 동일한 노동과 물질이 투입되는 상품이라고 단순화할 경우, 전신 안마에 대한 수요가 머리 미용에 대한 수요보다 수십 배나 크다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궁금해진다. 대체 북한에서는 재화나 용역의 가치 또는 가격이 어떻게 정해지는 건지. 재화나 용역에 투입된 노동시간이나 또는 시장의 원리 이외에 또 다른 요인, 예를 들면 이념적인 요인 같은 것이 있을까? 전신 안마는 '봉건시대의 전근대적이고 비인간적인 서비스'라서 원하는 이는 돈을 더 내고 즐기라는 뜻인 걸까. 이런 분야에 대해 잘 모르는 나는 북한을 여행하면서 늘 궁금한 것 중의 하나가 '도대체 어떻게 물가가 결정되는가'라는 것이다.
북한동포들의 생활 수준
어찌 됐든, 여성의 머리 미용료가 한국 돈으로 295원이라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값이 싸다. 이는 물론 북한 주민들을 위한 가격이다.
한국언론에 의하면 북한 근로자의 한 달 봉급은 북한 돈으로 약 5000원, 그러니까 한국 돈으로 불과 735원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월급을 받아 미용실 두 번 가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과연 북한동포들은 어떻게 생존한다는 말인가?
그동안의 북한여행을 통해 관찰한 바에 의하면, 국가로부터 배급을 받는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봉급이 낮은 것은 사실인 듯하다. 그러나 공공요금이 거의 무료에 가까워 배급만 제대로 나온다면 그럭저럭 살아갈 수는 있을 것이다. 2011년 10월, 첫 북한여행 당시 북한동포들의 국립교향악단 공연 푯값이 북한돈으로 50원(한화 약 7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니 문화생활도 가끔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배급이 원활하지 못하다든가, 누군가 배급되지 않는 품목을 원할 경우 어려움을 겪을 것은 자명하다.
그러다 보니 가족 중 한 사람 정도는 외화식당이나 상점 같은 곳에 나가 일을 하거나, 아니면 장마당에 나가 장사라도 해야 보다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독립채산제로 운영되는 평양의 기업소 평균 월급은 미화 50달러(북한 돈으로 약 40만 원) 정도 되는 것 같다. 4인 가족 중 한 사람은 국가로부터 배급을 받는 직종에서 일하고, 다른 한 사람은 월 50달러 정도의 수입을 가져올 수 있는 일을 한다면, 북한의 싼 물가를 고려해볼 때 큰 어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아무리 국가에서 배급을 준다고 해도 한 달에 1달러도 안되는 봉급으로는 한 가족이 살아갈 수는 없다. 또한 국가가 개인이 필요로 하는 모든 품목을 배급할 수도 없을 것이다. 아마도 이런 연유로 장마당이 생성됐을 테다. 그리고 장마장이 퍼져나가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을 것이라 짐작해 본다.
주인 없는 식당은 문전성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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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에서 '맛대로촌닭'을 운영하는 최원호 사장이 평양에 연 닭고기 전문식당이다. 5.24 조치로 남한의 주인은 이곳을 관리할 수 없게 됐는데, 북한 주민들이 이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 신은미
'문수물놀이공원'을 나와 늦은 점심을 먹는다. 김혜영 선생이 안내한 식당은 '닭고기 전문식당'. 식당을 향해 걸어가면서 나는 깜짝 놀라고 또 반가워 어쩔 줄을 몰랐다. 왜냐하면 이 식당은 남한의 한 사업가가 평양에 문을 연 식당이기 때문이다. 이 식당의 정식 이름은 '락원 닭고기전문식당'인데 간판엔 그냥 '닭고기전문식당'이라고만 적혀 있다.
나는 2012년 5월 미국인 친구들과 함께 북한 관광여행을 왔을 때 이 식당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식당 주인이 남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건 한참 뒤 <오마이뉴스> 기사를 읽은 다음이었다(관련 기사 : "평양에 있는 치킨집, 한시도 잊은 적 없어요").
이 식당은 김포공항 근처에 있는 '맛대로촌닭' 사장님이 6.15시대라 불렸던 2007년 평양에 연 식당이다. 그러나 5.24 조치로 인해 교류가 중단돼 이 식당엔 더 이상 주인이 없다.
그래도 북한 동포들은 이 식당을 잘 운영하고 있다. 음식 맛도 여전히 좋고 식당은 손님들로 북적인다. 언젠가 5.24 조치가 풀려 남한의 사장님이 돌아오시는 날, 식당의 봉사원들과 모두들 얼싸안고 덩실덩실 춤추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사장님의 '민족 화합과 조국의 평화적 통일에 대한 염원'은 결실을 맺을 것이다.
평양에 신식 마켓이 생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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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의 슈퍼마켓인 '광복지구상업중심' 안의 모습.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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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의 슈퍼마켓인 '광복지구상업중심'에 진열된 이탈리이산 와인. ⓒ 신은미
점심식사를 마친 박 교수는 자료 수집을 위해 인민대학습당으로 향한다. 나는 북한의 물가를 더 자세하게 알고 싶어 김혜영 선생에게 마켓으로 안내해달라고 요청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광복지구상업중심'이라는 슈퍼마켓. 이 마켓은 외화가 아닌 북한돈만을 사용하는 곳이므로 북한돈을 소지할 수 없는 외국인은 원칙적으로 방문할 수 없는 곳이다. 그러나 간혹 외국인이 쇼핑하는 모습도 보인다. 아마도 장기 체류하는 외국인들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화폐교환소가 있어 외화를 소지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은 이곳에서 돈을 교환해 쇼핑을 한다.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1달러에 북한돈 대략 8000원 정도.
김혜영 선생에 따르면 이곳의 물가가 장마당보다 싸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재래식 시장인 장마당 대신 문화적인 시장인 이곳을 보다 많이 이용하게 하기 위해서란다. 그러나 야채같은 품목은 장마당의 물건의 유통이 더 빨라 싱싱하다고 한다. 추측하건대 국가가 이러한 현대식 마켓을 세우는 이유는 장마당에서 돌고 있는 외화를 흡수하기 위한 목적도 있을 것이다.
마켓에는 웬만한 물건은 다 있다. 이탈리아산 레드와인의 경우 브랜드에 따라 가격이 다양했다. 어떤 것은 북한돈 2만5900원(한화 약 3800원) 또 어떤 것은 11만3500원(한화 약 1만6500원).
이곳은 촬영이 금지돼 있는 곳이라 겨우 사진 몇 장만 찍을 수 있었다. 그래서 물가를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다. 다만 생활필수품인 식료품은 남한에 비해 5~10배 정도 싼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생활필수품이 아닌 경우에는 남과 북의 가격 차이가 줄어드는 경향이 있었다.
마켓을 들러보고 내린 결론은 4인 가족의 경우 국가에서 배급을 받고 50달러 정도의 수입이 있거나 또는 배급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100달러 정도의 수입이 있다면 그런대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통계에 의하면 북한의 1인당 GDP는 약 1200달러 정도라고 한다. 그러니 이곳의 싼 물가를 고려해 볼 때 북녘 동포들의 생활이 평소에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터무니없이 힘들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다만, 여기도 소득의 격차가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도시와 농촌 사이의 차이도 있어 이를 극복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기치료'를 받다
저녁식사를 마친 나는 김혜영 선생에게 조용히 물었다.
"김혜영 선생, 혹시 내일 병원에 갈 수 있을까요?"
김 선생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되묻는다.
"네? 병원이요? 오데가 안 좋습니까?"
"왼팔이 좀 아픈데 미국서 물리치료도 받고 했지만 좀처럼 낮지를 않네요. 팔을 들기가 좀 힘들어서요."
"오마나, 어쩐지 좀 이상하다 했습니다. 지금 친선병원의 의사들이 평양호텔에 나와 있습니다. 재일동포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와서 평양호텔에 있는데 친선병원의 의료진이 항시 대기하고 있습니다. 내가 연락해 보겠으니 오늘이라도 가시자요."
평양에 있는 친선병원은 외국인들 그리고 해외동포들이 이용하는 병원이다. 북한에서 15년 징역형을 받고 형기를 치르던 중 석방된 재미동포 배준호(미국명 케네스 배)씨가 친선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터넷으로 본 적이 있어 나도 알고 있는 병원이다. 전화로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김혜영 선생이 어서 가잔다. 마침 수기치료(지압 물리치료) 의사 선생님께서 계신단다.
평양호텔에 도착한 나는 리용호 운전기사에게 "갈 때는 택시를 타고 갈 테니 이제 그만 퇴근하시라"고 말했다. 그러나 운전기사는 "몸도 성치 않은 녀사님을 두고 갈 수는 없다"라며 한사코 함께 있겠단다. 나는 운전기사에게 "택시를 타보고 싶어서 그런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라"며 겨우 설득을 마친 뒤 호텔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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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평양에서 '수기치료'를 받고 있는 모습. ⓒ 신은미
치료를 받으니 되레 온몸이 더 뻐근하니 쑤시는 것 같다. 의사 선생님은 내가 평양에 있는 동안은 매일 오라고 하신다. 출국날짜를 물으며 그때까지는 꼭 치료를 받고 완쾌해서 가라고 강조한다.
지갑을 꺼내 치료비를 드리려고 하자 한사코 거절이다. 나중에 선물을 준비해 드리기로 마음먹고 치료실을 빠져나왔다.
호텔에서 나와 택시를 잡으려는데, 좀처럼 빈 택시가 없다. 1~2분가량 지났을까…. 나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 다음 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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