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 사랑받고 싶지 않으냐? 아버지도 사랑받고 싶다

사랑하는 딸에게 부치는 편지 | 2018년 4월 26일

등록 2018.04.26 13:51수정 2018.04.26 13:51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 조상연


'사랑하는 딸에게 부치는 편지'


1.
아버지와 영업부 부장님과 대화 한 토막이다.

일하다 말고 뒷주머니에서 시 한 편 적힌 메모지를 꺼내들고 중얼거리고 있는데 부장님 한 분이 멀리서 아버지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내가 뭘 잘못했나? 아니면 도움이 필요한가? 고개를 갸우뚱하는데 차 시동을 걸다 말고 내 쪽으로 오는 게 아닌가?

"선생님 참 로맨틱하신 분이에요. 제가 선생님 뒷조사 좀 해봤는데 하고 싶어 한 게 아니라 한동네 산다는 우리 부서 직원에게 선생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선생님 관련된 인터넷 사이트를 가르쳐주었는데 일주일을 두고 읽어보았습니다."
"오마이뉴스 덕분에 네이버에 제 이름만 입력해도 검색이 되기는 합니다만 그 정도는 아닌데요."
"아닙니다. 제가 항상 꿈꿔오던 로맨스의 덕목을 모두 갖추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아내도 선생님 팬이 되었습니다. 아침 출근길에 선생님의 웃는 모습을 보면 하루가 즐겁기도 하고요."
"?"

2.
함께 일하는 사람이 따끈한 캔커피를 들고 아버지를 찾아왔더구나.

"직원한테 인사를 해도 눈길도 안 주고 가네요? 좀 속상하기도 하고 그래서요."
"많이 속상해?"
"소장님은 직원들에게 친절하게 인사 잘하라고 그러지, 인사하면 눈길도 안 주지, 자존심이 좀 상하네요."


"내 이야기 잘 들어요. 소장님이 인사 잘 하라고 해서 인사를 하니까 안 받아주는 겁니다. 당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눈여겨보면 직원들한테 하는 인사조차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루에도 수십 번 마주치는 직원들입니다. 그들의 표정이 재미있지 않아요? 반갑지 않아요? 나는 아침에 회사 로고가 새겨진 영업 차량 수백 대가 줄지어 출근할 때 차량을 안전하게 유도하는 일이 얼마나 신나는지 몰라요. 왜? 반가우니까요. 그 반가운 마음이 차 안의 직원들과 눈을 마주치게 만들고 서로 말은 안 하지만 그 어떤 느낌을 만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선배님을 찾아온 거 아닙니까?"

"인사 안 받아준다고 맘 상할 일 없어요. 그 사람들 우리처럼 단순한 일 하는 게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라면 한 봉지라도 더 팔까 걸으면서도 생각, 밥 먹으면서도 생각, 똥 쌀 때도 생각, 그런 사람들이에요. 우리가 하는 인사 충분히 지나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가 위로를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들과 마주쳤을 때 그냥 조용히 미소짓는 인사만으로도 그들은 위로가 돼요. 우리가 직원들에게 하는 인사는 일이 아닙니다. 사람이 반가워 건네는 마음이지요. 지하철에서 어깨만 부딪혀도 눈인사를 하잖아요?"

3.
사랑하는 딸아, 사랑받고 싶으냐?

아버지도 몸서리쳐지도록 사랑받고 싶다. 그래서 아버지는 사랑한단다. 사랑을 받고 싶어서 사랑스럽게 행동을 한단다. 강아지도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용케 알고 꼬리를 세차게 흔든다. 사람은 강아지를 사랑하고 강아지는 그 사랑을 알아채서 또 사람을 사랑하고.

네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은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변한다. 너 역시 그 사람에게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지 않겠느냐? 악순환이 아닌 선순환이 될 수밖에 없다. 사랑은 더 이상 눈물의 씨앗이 아니다. 부처님과 하느님을 말하는 이가 있고 부처님과 하느님을 느끼게 하는 이가 있다. 부처님과 하느님을 말하지는 않지만 그의 행동과 삶의 과정에서 부처님과 하느님이 함께 있음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

아버지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이런 것이다. 시인 조동화 선생의 시 한 편 읽어보렴.

-

나 하나 꽃 피어

조동화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냐고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모이 #딸바보 #아버지 #딸사랑 #편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편안한 단어로 짧고 쉽게 사는이야기를 쓰고자 합니다. http://blog.ohmynews.com/hanast/

AD

AD

AD

인기기사

  1. 1 군산 갯벌에서 '국외 반출 금지' 식물 발견... 탄성이 나왔다
  2. 2 20년만에 포옹한 부하 해병 "박정훈 대령, 부당한 지시 없던 상관"
  3. 3 광주 찾는 합천 사람들 "전두환 공원, 국민이 거부권 행사해달라"
  4. 4 "개발도상국 대통령 기념사인가"... 윤 대통령 5·18기념사, 쏟아지는 혹평
  5. 5 '동원된' 아이들 데리고 5.18기념식 참가... 인솔 교사의 분노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