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이 우거진 산점심 산행에서 만난 녹음이 우거진 산
신재호
말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나왔다. 후배 얼굴에 활짝 핀 미소 꽃을 바라보며 마음이 놓였다. 부서에 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박 대리는 초반에 밝은 모습과 달리 점점 시들어가고 있었다.
하긴 업무량이 많기로 소문난 곳에서 처음 근무하는 박 대리가 고전하는 것은 당연했다. 어느 순간 혼자 있는 모습이 자주 보이길래 내가 먼저 산에 가자고 권했다. 처음엔 망설이더니 참여하는 직원 모두 부서도 다르고, 크게 연관될 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용기를 냈다.
사실 나 역시도 처음 점심 산행 가기로 한 이유는 선배의 권유였다. 처음 부서에 발령 나서 전에 해보지 않은 낯선 일에 무척 힘들었었다. 무엇보다도 무능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마음이 땅끝까지 내려갔다.
밥맛도 없던 차에 점심때 그냥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회사 주변을 크게 한 바퀴 돌고 나니 힘이 났다. 그때부터 혼자 걷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옆 부서에 얼굴만 알던 선배가 다가와 점심때 산에 같이 가자고 했다. 어색할까 망설였지만, 평소 산을 좋아했기에 따라나섰다.
산에 가면서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사무실에서 말하기 힘든 고충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선배도 선배 나름의 고충을, 나도 내 나름의 고민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고된 회사 생활을 이겨냈다. 어느 순간 점심 때가 다가오면 심장이 쿵쾅거렸다. 체력도 눈에 띄게 좋아졌고, 활력을 다시 찾았다. 주변에서도 긍정적인 변화를 인지했다.
1년 전 선배는 다른 곳으로 발령 나서 떠났다. 이제는 선배의 빈자리를 내가 채우고 있다. 어떻게 알았는지 하나, 둘 함께 하는 사람이 늘었고 고정적으로 참여하는 직원만 10명 가까이 되었다. 그동안 개발한 코스도 다섯 개나 되어서 요일별로 새로운 곳을 가는 재미가 있었다.
어느덧 본사 근무도 3년이 넘었다. 주변에 힘들어 보이거나 어려움이 느껴지는 직원이 있으면 내가 먼저 나서서 산에 가자고 권유했다. 다들 처음에 망설이지만 가고 나면 그 맛에 중독되어 계속 가게 되었다. 물론 중간에 그만두는 일도 있지만, 그건 이제 살 만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점심 산행의 철칙이 하나 있었으니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기였다. 개중에는 산행을 발판으로 따로 마음 맞는 사람과 가는 일도 있었다. 그럴 땐 마치 독립한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 마음이 느껴지기도 했다.
남은 쓰레기를 봉지에 담았다. 시간이 남아서 폭포까지 가서 시원한 물줄기를 눈에 담았다. 박 대리는 카메라를 꺼내 연신 사진을 찍었다.
점심 산행이 동호회로 이어지다
내려오는 길에 차 과장님이 새로운 계획을 전했다. 인원이 열 명이 되었으니 사내 동호회 최소 기준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제안서를 작성해서 3월에 있는 신규 동호회 모집에 지원해 보겠다고 했다. 정식 동아리가 되면 지원금도 쏠쏠해서 간단한 등산용품도 살 수 있었다. 기존에 산악 동호회는 있어서 고민하다가 불쑥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우리가 관악산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으니 관악산 탐험대는 어떨까요. 혹여나 길 잃을 만한 곳이 있으면 노란 띠도 묶고, 새로운 코스도 개발해서 나중에 사람들한테 알리는 거예요."
"관악산 탐험대? 입에 착 붙네요. 좋습니다!"
모두가 동의해서 우리 동호회 이름은 관악산 탐험대로 정했다. 차 과장님의 기획 실력을 믿고 정식 동호회가 될 날을 기대해 보아야겠다. 날이 유난히 맑았다. 산 기운을 가득 받아서인지 사무실에 들어가는 발걸음에 힘이 넘쳤다.
1시간의 짧은 점심시간이지만, 하루를 살아내는 힘을 오롯이 받고 있다. 언젠가 퇴직을 앞둔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지나고 보니 회사에서 일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동료들과 즐겁게 지낸 추억은 가슴에 남아 있다고.
나 역시도 언젠가 다른 곳으로 발령 나서 떠나겠지만 함께 산에 가며 나눈 오늘의 시간은 오래도록 마음 한편에 묻어 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