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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서해성.
소설가 서해성. ⓒ 홍성식
고래로부터 술과 배짱은 동무처럼 다정스레 손을 잡고 한 길을 걸었다. 동서고금 어디를 둘러봐도 마찬가지다. 어느 배짱 두둑한 영웅호걸이 술을 마다했던가. 아이구, 따가워라! 대춧빛 얼굴에 멧돼지 털 같은 수염을 매단 <삼국지>의 천하걸물 장비는 고량주 한 항아리를 시쳇말로 '원샷'하던 술꾼 중의 술꾼이었다.

앙심을 품은 부하에 의해 목이 잘릴 때도 그는 만취해 있었다. 장팔사모를 거머쥔 채 필마단기(匹馬單騎)로 장판대교 위에 서서 위나라 80만 대군의 오줌을 지리게 만든 천하의 장비가 약삭빠른 제 졸개의 석 자 다섯 치 칼에 생을 마감했으니, 영웅다운 최후는 아니지만 무량대주(無量大酒) 술꾼의 마지막으로는 안성맞춤이다.

지금이라도 발걸음 쿵쾅대며 <수호지>에서 걸어나올 것만 같은 노지심 역시 마찬가지다. 그 술이 청주(淸酒)였는지 탁주(濁酒)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내쳐 서 말 닷 되를 자작(自酌)하고, 은거해있던 사찰의 서까래를 꺾어버리는 그는, 맨손으로 호랑이의 머리통을 작살냈다는 역사(力士) 무송과 더불어 <수호지> 최고의 호걸이자 쾌남아다.

술을 대하는 태도가 사뭇 다른 탓에 서양의 영웅호걸이 어떻게 술을 마셨는지에 대한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거기 또한 동양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돈과 권력에 취한 자가 주색잡기에 휘둘림은 부정할 수 없는 인지상정. 장비와 노지심 만큼은 아니지만 문단에도 술과 배짱이라면 '나도 한 가락 한다'하는 사람이 여럿이다.

소설가 K와 시인 S 그리고, 평론을 하는 H 등이 대표적인데, 그들의 술 실력과 배짱은 그야말로 놀랍다. 밤이면 밤마다 열리는 주석(酒席). 기자는 그들이 권하는 술을 마다하거나, 술값을 고민하거나, 집에 돌아간 새벽 돌아올 아내의 잔소리 걱정하는 것을 아직껏 보지 못했다. 하긴, 술이 가진 가장 큰 힘은 "될 대로 되라"는 배짱을 선물한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희한도 하여라. 맥주 한 잔에 얼굴이 붉어지는 알콜 알레르기 환자이면서도 배짱 하나는 태산을 옮기고도 남을 사내가 있으니 그가 바로 소설가 서해성이다.

요즘은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 사무처장과 MBC 오락프로그램 '느낌표'에 곧잘 등장하는 방송인(?)으로 더 유명하지만, 그는 1989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한 엄연한 소설가다.

몇 해 전에는 이렇다할 물주도 없이 'Ctv'라는 인터넷방송국을 만들려고 동분서주하더니, 지지난해에는 '세계작가 평화캠프' 실무를 맡아 국가의 예산지원도 받지않고 행사를 진행하고, 올 초에는 평론가 도정일, '느낌표' 프로듀서 등과 함께 어린이용 '기적의 도서관'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서해성.

쉽지 않아 보이는 일을 겁 없이 벌이고 그것을 밀어붙이는 서해성의 배포와 추진력은 그 또한 배짱이라면 장비와 노지심에 필적하는 소설가 황석영이 놀라워할 정도다.

그렇다면 서해성의 배짱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두어 달 전 인사동 한 식당에서 기자와 마주한 서해성은 '평양 어린이도서관 건립 프로젝트'를 지나가는 말로 은근슬쩍 비춘 적이 있다.

"통일되면 어차피 함께 살아갈 사람들인데, 도서관 부지를 두고 내 땅 네 땅 구분할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말하는 그의 눈빛은 신념에 차있었고, 그 신념을 설명하는 논리는 정연하고도 명확했다.

그랬다. 서해성의 두둑한 배포와 놀라운 추진력은 바로 이 신념과 논리에서 나온 것이었다. 서해성이 앞으로도 신념과 논리를 무기로 다수를 위한 사업을 배짱 좋게 추진한다면, 어느 누구도 그를 가리켜 '술 한 잔 못하는 샌님'이라 손가락질하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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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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