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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 탕 탕."

지난 9월 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상임위 회의장. 폐회를 알리는 홍준표 위원장의 의사봉이 울리자 회의장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날 상임위에서 환노위 의원 6명은 국회법에 따라 반환미군기지 환경오염에 대한 자료 제출을 요구했지만 환경부장관은 "미군 측이 동의하지 않았다"며 "어렵다"는 서면 답변만을 내놓았다. 열린우리당 우원식 의원이 "미군측에 동의를 구하기는 했느냐"고 질타하자 상임위에 참석한 환경부 관계자는 그때서야 "미군 측에 요청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미군 허락 없인 국회 정보공개도 없다?

▲ 반환미군기지 중 한 곳인 캠프 게리오웬. 사진에 보이는 파이프는 오염물질을 방수한다고 의심되는 파이프다.
ⓒ 박신용철
'본 절차에 의한 어떠한 언론 또는 대중에 대한 정보 배포 또는 본 절차에 의하여 수행된 특정 정보 교환 및 조사 정보 배포는 환경분과위원회 양측 위원장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반환미군기지에 대한 환경오염 조사와 치유절차를 명시한 '환경정보공유 및 접근철자 부속서A'에 명시된 규정이다. 여기에서 '양측'이란 미군과 한국정부를 말한다. 때문에 이 규정에 따르면 반환 미군기지의 환경오염 정도나 치유 정도를 밝히려면 미군과 한국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 승인 조항 때문에 일반 국민뿐만 아니라 국회 또한 반환미군기지에 대한 정보 접근은 '하늘의 별따기'가 돼 버렸다.

반환미군기지에 대한 환경오염조사가 본격화되던 2005년 환경부 국정감사. 이 때 국감에서 가장 논란이 된 부분은 반환기지의 환경오염 실태가 아니라 바로 '환경부의 정보 비공개'였다.

2004년부터 반환미군기지의 환경오염 문제를 주요하게 다뤄온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실은 자료 제출을 놓고 환경부 담당자와 언쟁을 벌여야만 했다. 미군 측이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료 공개가 어렵다는 게 환경부의 답변이었다. 국회의 행정부 감시 기능이 '미군의 동의 불허'를 이유로 좌절된 것이다.

환노위 의원들마저도 "대한민국 국회가 언론이나 대중에 해당하느냐"며 반발했지만 환경부의 답변은 일관됐다. '미군이 동의하지 않아 공개할 수 없다'는 것. 환경부는 "국회에 자료를 제출하면 일반에 공개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군이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러한 정보 비공개 속에 정부와 미군은 1년 이상 반환미군기지에 대해 밀실에서 협상 아닌 협상을 벌였다.

2006년 7월 14일 한미양국은 제9차 한미안보정책구상회의(SPI)에서 미군 측이 지하유류저장탱크 제거, 불발탄 제거 등 8개 항목의 치유 조치를 완료했다고 통보한 15+4개 기지의 반환에 합의했다. 그리고 오염투성이 미군기지 19곳이 우리에게 돌아왔다.

이땅에 목숨 바칠 수도 있으니 환경오염 묻지 마라?

▲ 반환미군기지의 치유에는 최소 277억 원, 최대 1205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과천정부종합청사내 공정거래위원회,환경부,노동부 건물.
ⓒ 오마이뉴스 권우성
미군기지 반환 이후 환경오염에 대한 비판의 화살은 모두 한국정부에게로 돌아갔다. 우원식·최재천 등 여당 의원들도 "그나마 사회각계에서 미흡하다는 SOFA 규정조차도 정부협상팀은 이번 기지 반환에 적용하지 않음으로써 최악의 협상 결과를 초래했다"고 질타했다.

궁지에 몰린 정부는 7월 24일 국회 환노위에 환경오염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29개 기지 중 26개 기지가 국내 환경법상 오염 기준 초과. 그 중 14개 기지는 토양과 지하수 오염 국내 기준치 초과. 반환미군기지 치유하는 데 최소 277억 원, 최대 1205억 원 소요.

SOFA 환경규정에 따르면, 한미 양국 정부는 환경오염조사 이후 SOFA 환경분과위를 통해 적합한 치유 수준, 치유 방법, 사후관리 방안과 일정을 포함하는 치유조치에 관하여 '합의'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미군 동의 없는 정보 공개는 없다'며 시간을 버는 동안 미군은 SOFA 환경규정을 실질적으로 무력화해 나갔다.

주한미군사령부는 4월 7일 '토지반환을 위한 실행계획'이라는 보도자료에서 "지하유류저장탱크, 불발탄 제거 등 8개 항목의 오염제거가 완료되면 한국정부에 반환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밝혔다. 이는 치유 수준과 방법, 사후관리 방안 등 치유조치에 '합의'해야 한다는 SOFA 규정을 무시한 것이었다.

이어 주한미군 2사단 1지역사령관 포레스트 뉴튼 대령은 6월 28일 의정부 지역 행사에서 "의정부 소재 캠프 카일, 캠프 라과디아의 관리권을 7월 15일까지 한국 국방부에 넘길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때도 한미간 반환기지 환경오염 치유협상이 타결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명백한 SOFA 환경조항 위반이었다.

한편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은 4월 10일 예비역장성모임인 '성우회' 초청 대담에서 "국내 환경기준 적용 요구는 한미동맹 저해를 초래할 것"이라고 발언했다.

이어 그는 6월 5일 한국국방안보포럼 초청강연에서 "(한국 정부가) 당초 합의한 SOFA의 표준과는 다른, 많은 환경치유 및 한국전쟁 이전 상태로의 반환을 뜻하는 새로운 기지반환 표준을 요구한다"며 "이 땅과 국민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도 있는데 미국이 한국 토지에 대해 무책임하다고 하는 것에 대해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정부 자료도 공개 못하는 나라, 주권국가 맞나

▲ 55년이 지난 한국에 반환된 미군기지 중 하나인 캠프 콜번(경기도 하남시 소재). 환경부의 무책임 속에 이제 남은 것은 오염된 거대한 반환기지와 막대한 정화비용이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한국정부가 미군의 일방적 요구를 수용할 것을 우려한 많은 시민단체들이 우선 반환미군기지에 대한 정보라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정부가 나서지 않는다면 국민적 힘을 바탕으로 미군을 압박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녹색연합과 춘천시민연대는 6월 13일 환경부장관을 상대로 '정보비공개결정 취소'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춘천시민연대는 춘천에 위치한 캠프 페이지가 반환되기 전 환경오염도에 대한 정보공개를 요청했지만 환경부가 SOFA 환경규정을 근거로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환경부가 시간을 끄는 사이 미군은 SOFA 환경조항을 무시한 채 일방적 오염제거 수준을 통보하고 수용할 것을 종용했다. 그리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책임질 수 없는 미군기지가 한국 정부에 반환됐다.

결국 8월 7일부터 9월 8일까지 반환된 15개 미군기지에 대한 검증작업이 진행됐다. SOFA 환경조항에 따른 작업이었지만 미군은 참여하지 않은 채 한국정부가 단독으로 검증에 나섰다. SOFA 환경조항은 오염 제거 후 한미공동 검증절차를 거쳐 SOFA 환경분과위-시설구역분과위-합동위를 통해 미군기지를 최종 반환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자국 내 기지의 환경오염실태 및 처리내역을 일반인에게까지 공개하고 있다. 또 일명 '슈퍼펀드법'을 제정해 오염자부담원칙에 따라 정부가 환경정화를 하고 있다. 한국정부가 SOFA 환경조항을 근거로 자국 영토에 대한 정보공개를 거부하는 사이 미군은 막대한 환경정화 비용을 비롯한 미군기지 반환 이후의 문제를 한국 정부와 국민들에게 떠넘겼다.

이같은 현실을 개탄하듯 한 국회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장에서 다음과 같이 탄식했다.

"자괴감이 드는 것은 한국정부가 생산한 자료마저 미군과 관련한 것은 미군의 동의가 없으면 공개를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주권국가로서의 주권을 행사하고 있는가. 마치 식민지 국가에 살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2005년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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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2002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위원 2002년 3월~12월 인터넷시민의신문 편집위원 겸 객원기자 2003년 1월~9월 장애인인터넷신문 위드뉴스 창립멤버 및 취재기자 2003년 9월~2006년 8월 시민의신문 취재기자 2005년초록정치연대 초대 운영위원회 (간사) 역임. 2004년~ 현재 문화유산연대 비상근 정책팀장 2006년 용산기지 생태공원화 시민연대 정책위원 2006년 반환 미군기지 환경정화 재협상 촉구를 위한 긴급행동 2004년~현재 열린우리당 정청래의원(문화관광위) 정책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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