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억원대 BW를 소각한 까닭은?
두산 박씨 일가의 '이상한 뒷거래'

[집중기획 ④-두산] '부의 대물림' 과연 정직했나?

등록 2003.03.03 09:00수정 2003.03.11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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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그룹은 국민의 정부 들어 모기업이던 ‘OB 맥주’ 매각과 함께 이른바 ‘구조조정의 전도사’를 자처했다. 하지만 이같은 전도사의 이면에는 노동자들의 고통과 함께 박씨 지배주주 오너일가의 편법적인 부 대물림 의혹이 서려있다. 물론 이같은 의혹에 두산은 반발했다. 하지만 최근 검찰의 SK그룹에 대한 수사가 이어지자, 두산은 돌연 문제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소각하겠다고 발표했다. 시민사회단체를 비롯해 여의도 증권가의 반응은 차가웠다. <오마이뉴스>는 LG, 삼성, 현대자동차그룹에 이어 네 번째로 두산그룹 박씨 일가의 편법적인 부의 대물림과 부당한 내부자거래 의혹을 짚어본다....<편집자 주>

[특별취재팀: 김종철 이병한 박수원 황방열 공희정 기자]

"문제가 되고 있는 두산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전량을 소각할 방침입니다."

지난 2월 23일께 참여연대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주)두산 관계자의 전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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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주주일가의 편법적인 주식 대물림 의혹을 받았던 두산그룹 본사 사옥과 노동자 분신과 노조 감시 등으로 물의를 빚은 두산중공업 박용성 회장(아래 사진)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두산 신주인수권부사채(BW) 소각 결정은 의외였다. 두산은 지난해 참여연대가 박씨 지배주주 일가의 편법적인 BW인수에 강한 의혹을 제기하자, 같은해 10월 "우리는 합법적으로 업무를 처리했기 때문에 잘못이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었다. 그런데 최근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두산은 왜 150억원 상당의 주식을 소각하는 무리수를 둬가며 입장을 바꿨을까.

참여연대에 걸려온 전화

(주)두산은 약속대로 2월 24일 '대주주일가의 신주인수권 159만주를 전략 무상 소각한다'고 공시했다.

두산은 "지난 99년 7월 대주주들이 지배 지분 희석을 우려해 신주인수권 일부를 시장에서 인수했었다"면서, "주가 하락으로 신주인수권 행사 가격이 계속 내려가고 발행 예정물량도 늘어나 주가회복의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했다"고 소각 배경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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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설명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최근 들어 SK그룹 최태원 회장을 구속한 검찰의 칼끝이 오랫동안 묵인해 왔던 재벌 부당내부거래에 맞춰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두산이 알아서 '몸 낮추기'를 했다는 주장이 훨씬 설득력이 높다.

지난해 10월 24일 좋은기업지배연구소(www.cgcg.or.kr)는 '두산지배주주일가, 특혜성 신주인수권으로 지배권 확대 및 상속'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보고서 내용을 잠깐 살펴보자.

(주)두산이 지난 99년 7월 15일 유로시장에서 발행한 BW는 룩셈부르크 증권거래소에서 상장됐다. 미화 1억불 상당의 BW는 237만주 규모였다. 외형적으로는 외국자본 유치를 위해 BW를 발행한 것처럼 포장됐다. 하지만 나흘 뒤에 본색이 드러나고 말았다. 두산은 7월 19일 BW 237만주 가운데 68.8%(163만주)를 박용곤 명예회장 등 3세 8명(41.2%,97만 5951주)과 박정원 두산주류BG사장(박용곤 명예회장 장남) 등 4세 24명(27.6%, 65만 4296주)에게 넘겼다. 주당 평균 가격은 2200원이었다.

이 가운데 박용곤 명예회장 등 3명은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은 9월 3일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BW 대부분을 박정원 씨 등 4세 26명에게 다시 넘겼다. 결국 4세들이 보유한 BW는 159만 5056주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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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박씨일가가 BW를 행사했을 경우 소액주주의 지분은 낮아지고, 지배주주 일가의 지분은 크게 높아지면서 그룹 지배권을 강화하게된다. ⓒ 좋은기업지배연구소

막대한 시세차익과 그룹 지배권 강화 목적?

문제는 4세대들에게 넘어간 BW 행사 가격이 당초 발행당시 가격보다 크게 낮아졌다는 점이다. 두산은 BW를 발행하면서 계약서에 '행사가조정규정(Refixing Clause)'을 명시했다. 주가 하락에 따라 신주인수권행사가격이 자동으로 하락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99년 7월12일자 공시내용을 보면, 신주인수권행사가격 대해 '추후 유·무상증자, 주식분할 또는 병합 등으로 인하여 행사가격이 조정될 수 있음'이라고만 표시돼 있다. 정작 중요한 주가하락에 따른 행사가격 하향조정에 대해선 전혀 언급돼 있지 않다.

이에 대해 두산은 "공시에 첨부했던 이사회의사록에 행사가조정조항은 발행계약서에 따른다고 표현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발행계약서를 직접 확인할 길 없는 일반투자자는 이 내용을 알 수가 없다.

리픽싱 조항에 따라 4세 들에게 넘어간 BW 행사 가격은 크게 낮아졌다. 99년 7월 발행 당시 5만100원이었던 주식행사가격을 현재 주가(지난 21일 종가 7390원)로 조정하면 이 회사 전체주식발행수(2111만주)의 53.25%인 1100만주에 이른다. 그 결과 두산은 힘 안들이고 지분율을 70%이상으로 끌어올리는 효과를 거뒀고, 반면 소액주주 지분율은 40%에서 30%미만으로 낮아졌다. BW를 통해 지배주주의 권한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낳게 하는 대목이다.

여기다 두산 지배주주들은 주가가 오르면 막대한 시세차익까지 남길 수 있는 이점도 있다.왜냐하면 주가가 상승해도 신주인수권의 행사가격이 상향조정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두산은 BW발행을 통해 지배주주권도 강화하고, 엄청난 시세차익도 남기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 셈이다.

금감원이 두산 잘못 묵인?

참여연대는 두산BW 의혹을 제기하면서 금감원에 2002년 11월6일부터 여러 차례 조사를 요청했다.

참여연대가 두산에 대해 금감원 조사를 요청한 내용은 △해외공모발행을 가장한 국내발행△편법적 경영권 승계의혹△미공개정보를 이용한 불공정거래△리픽싱옵션 조항 미공시로 인한 증권거래법 위반 등이었다.

그러나 금감원은 회신을 통해 '리픽싱 조항이 빠진 것에 대해 미공시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을 반복해서 설명했다.
결국 금감원은 리픽싱 옵션에 대한 문제는 그대로 덮어두고 '두산 BW가 해외 공모를 가장한 국내발행'인 점만을 인정해 과징금 5억원을 부과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박근용 팀장은 "금감원이 리픽싱 조항에 대해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반복하는 것은 투자자 보호에 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 박수원 기자
두산은 복 받은 기업?

"국민의 정부에서 가장 특혜를 많은 받은 기업은 현대와 두산이다. 특히 두산이 실속을 많이 챙겼다."

재계 관계자들은 국민의 정부에서 가장 혜택을 많이 본 기업이 두산이라는 데 이견을 달지 않는다. 두산은 거대 공기업 한국중공업 인수를 통해 재계 순위 12위에서 8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구조조정 모범기업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두산을 자세히 뜯어보면 한국 재벌의 문제점이 그대로 응축돼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03년 2월 현재 두산그룹의 사실상 총수인 박용곤 명예회장의 두산 지분은 4.17%로 시가 70억원에 불과하다. 시가총액 순위 512위다. 두산의 총수 1인 지분율은 출자총액제한대상 12대 재벌기업 중에서도 가장 낮다. 친족 지분을 다 합쳐봐야 6%가 조금 넘는다. 반면 계열사 출자분을 합한 내부지분율은 60%에 이른다. 계열사 돈을 이리 저리 굴려 그룹을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두산건설이 두산의 1대주주(지분율 28.45%)이고, 두산은 두산중공업(지분율 38.2%)을 포함해 12개 계열사의 1대주주다.

두산은 99년 14개까지 줄었던 계열사 수를 현재 21개로 늘렸고, 업종 수도 29개로 삼성그룹에 이어 가장 많다. 전형적인 문어발식 경영이다. 두산그룹이 인수한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최근에는 두산메카텍(전 한중DCM)의 두산기계 인수과정의 부당내부거래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두산메카텍(대표 최승철) 2001년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01년 말 두산기계를 자산 2247억원에(장부가·토지 제외) 인수하면서, 프리미엄 212억원을 덧붙여 2459억원(부채 2148억원 인수 포함)을 지급했다. 메카텍은 이어 2002년 1월25일 경남 창원의 두산기계 공장부지를 498억원에 사들였다.

메카텍은 두산기계를 총 2967억원을 주고 인수했으나 메카텍과 두산기계가 작성한 계약서 제5조(양도대금) 2항에 따르면 "실사 결과 산정 되는 최종평가액이 양도대금과 현저한 차이가 발생하는 경우 상호 협의해 정산할 수 있다"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500억원이 넘는 금액을 부풀려 지급하고 1년 뒤 자산실사 결과 이러한 사실이 드러났지만 자금을 회수하지 않았다. 두산메카텍 경영진이 배임혐의로 처벌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두산메카텍의 경우 자산실사 전에 영업가치만 평가하는 방식으로 거래가 이뤄졌으나 회계업계에서는 자산실사가 없는 영업가치 평가는 무의미하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문어발식 확장과 이상한 기업 되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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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더욱이 두산중공업이 두 차례의 증자를 통해 메카텍에 출자한 800억원은 전부 (주)두산으로 넘어갔다. 부족한 인수대금 2148억원은 (주)두산의 부채를 떠안는 형태로 처리됐다. 이로 인해 메카텍은 부채 비율이 138%에서 566%로 급증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에 대해 두산중공업 측에서는 "법에 따라 투명한 절차에 의하여 사업을 양수도 했다"며 "한중DCM은 두산중공업에서 800억을 증자 받았고, 1300억 부채로 인수한 것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800억 현금만을 지급하고 두산기계를 인수했다"고 설명했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전문가들은 두산이 자산 4조원이 넘는 한국중공업을 3057억원에 인수해 1년이 채 되지 않아 한국중공업의 자회사인 한국DCM을 앞세워 2957억원을 주고 두산기계를 사는 '자기 주머니에서 또 자기 주머니'로 돈을 옮기는 내부거래를 진행했다고 보고 있다.

합병이 추진될 당시 두산기계의 규모와 경영현황은 두산이 인수자금 회수를 위해 부당 내부 거래를 진행했다는 의혹을 갖게 만든다. 두산기계는 자산이 2367억원이고 부채가 867억원에 불과한 회사였다. 한국중공업과 비교가 될 수 없는 작은 기업이다. 그런데 한국중공업 인수 가격과 두산기계 인수 가격은 비슷하다. 결국 두산은 몇 번의 되팔기를 통해 인수 자금을 회수하는 '엄청나게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다.

두산의 약속

두산 2월 24일 BW를 소각하면서 "지배구조 선진화를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러한 약속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소장 김주영 변호사는 "두산의 BW소각 방침은 환영할 일"이라면서도 "사내이사 대부분이 지배주주로 채워져 있고, 사외이사 7명 가운데 4명은 과거 두산그룹 임원인 점은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두산이 경영투명성 제고와 지배구조 선진화를 통해 신망 받는 기업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지, '구조조정의 전도사'인 두산은 지금 기로에 서 있다.

박정원 4세 경영체제에 들어간 두산
4세들 모두 계열사에서 한자리씩

▲ 두산박용곤명예회장(왼쪽)과 박용오두산회장
두산그룹은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41)씨가 2001년 두산상사BG대표이사에 취임하면서 본격적인 4세 경영체제에 들어갔다. 4세 CEO는 정원씨가 거의 처음이다.

정원씨는 두산 그룹 창업주이자 1세대인 고 박승직 회장, 2세대인 고 박두병 회장, 3세대인 박용곤 명예회장으로 이어지는 두산 그룹 가계의 장손이다. 그는 대일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고려대 상대 및 보스턴대 MBA를 졸업했다. 지난 85년 두산상사에 평사원으로 입사한 것을 시작으로 94년 OB맥주 이사, 상무에 이어 99년 두산상사BG 부사장으로 취임하면서 경영 일선에 나섰다. 정원씨의 두산상사BG 대표이사 취임은 두산그룹이 4세 경영체제로 넘어가는 신호탄이다.

이미 그의 동생인 박지원(38)씨 두산중공업 기획조정실장(부사장)이며, 박용오 (주)두산 회장의 장남인 박경원(39)씨는 두산건설 상무, 차남 박중원(35)씨는 두산건설 부장으로 있다.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의 장남 박진원(35)씨는(주)두산 전략기획본부 차장, 차남 박석원(32)씨는 정보통신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오너 4세들이 두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셈이다.

두산은 105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1894년 33세인 박승직 회장이 종로4가에 '박승직 상점'을 차린 것으로 출발했으며, 1915년 회사 이름을 두산으로 바꾸고 1960년대 건설,음료,기계부분에 진출하면서 오늘날의 두산그룹의 성장했다. 두산이 일찍부터 3,4세 역할분담을 적절하게 하고 있다는 재계의 평가도 있지만, 두산 BW사건에서 보여지듯 3,4세 경영을 위해 무리수를 두는 측면도 있다. / 박수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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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정신을 신뢰합니다. 2000년 3월, 오마이뉴스에 입사해 취재부와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2022년 4월부터 뉴스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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