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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이라면 반 평생 쓰게 되는 생리대. 생리대값도 여성들에게는 만만치 않은 부담이다(자료 사진은 특정 사실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일회용 생리대가 여성들에게 생활필수품이라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생리대는 여성들이 '선택'하는 게 아니라 생리하는 여성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면 등으로 만든 '대안'적인 생리대가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것은, 이를 소금으로 닦으면 되지 굳이 치약으로 닦을 필요가 있느냐고 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다.

그런데 생리하는 여성이라면 불가피하게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 일회용 생리대에 부가세를 과세해야 한다는 주장이 또 불거졌다. 재정경제부가 중장기 조세개편방안에서 생리대에 10% 부과세를 매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지난 2003년 '여성들에 대한 지나친 특혜'라는 일부 남성들의 어이없는 반대를 무릅쓰고, 생리대를 부가세 면제품목으로 정한 지 2년 만이다.

생리대는 만들고 장례는 집에서 화장으로?

▲ 누리꾼들의 항의 글이 이어지고 있는 재정경제부 홈페이지.
학원 수강료, 장례식장 사용료, 아파트 관리비 등 부가세 품목으로 포함된 다른 항목도 마찬가지지만 생필품인 생리대마저 부가세를 징수하겠다는 정부의 세수정책은 사람들에게 '어이없다'는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재경부 홈페이지에는 수백 건에 넘는 항의글이 빗발치고 있다. '생리대는 집에서 만들어 쓰고, 죽으면 장례식장 가지 말고 집 앞에서 화장하자'는 냉소적인 반응에서부터 '촛불시위를 하자'는 분노 섞인 제안까지 나왔다.

한 누리꾼은 "기업에서는 생리휴가, 수당 나가는 것도 아까워 절절매고 아기를 낳으면 직장을 떠나야 하는 성차별도 시원찮아 이제는 기본적 생리현상에 필요한 용품도 세금을 부가한다고..."라고 분노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세상에 반이 여자인데, 생리를 한다는 건 아기를 가질 수 있다는 하늘의 축복입니다. 아기를 많이 낳으면 돈 준다고요? 그런 정책 쓰지 말고 세금이나 더 거두지 마소"라고 항변했다. '생리도 세금 내고 하란 말이냐'는 한 누리꾼의 말도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생리대에 부가세를 매기겠다는 정부의 입장은 "생리대는 생활과 밀접한 서비스 제품"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2003년에도 "부가세 면세 대상은 국민 대다수가 이용하고 있어 과세할 경우 가격 및 물가상승이 동반되는 재화나 용역에 국한한다"며 "여성단체의 주장대로라면 여성들의 속옷이나 화장품도 과세하지 말라는 얘기냐"고 주장한 바 있다.

생리를 하고 안하고...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인가

생리대는 대략 15~49세의 생리를 하는 가임 여성이라면 '누구나 필요로 할 수밖에 없는' 생필품이다. 양보해서 '사설 학원에 다니느냐 마느냐' '아파트에 사느냐 마느냐'는 어느 정도 선택이 가능하지만, '생리를 하느냐 마느냐' '생리대를 착용하느냐 마느냐'를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코미디다.

▲ 면으로 만든 대안생리대. 사회 생활을 하는 여성들이 대안 생리대를 사용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 피자매연대
혹 면 등의 천으로 만든 '대안 생리대'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너무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일갈하고 싶다. 대안 생리대는 환경이나 여성의 몸 등을 고려한 '대안'의 하나임은 분명하지만, 대다수 여성에게 효용성에 대한 공감을 끌어내기란 쉽지 않다.

만약 직장 생활 등 사회 활동을 하는 여성이 교체할 면 생리대를 일일이 꾸러미에 챙겨다니고 다 쓴 생리대를 봉지에 싸들고 다니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건 휴지 대신 수건을 가지고 다니거나 치약 대신 소금 주머니를 들고 다니는 것처럼 불편하고 어려운 일이다.

생리대가 속옷이나 화장품과 다른 점은 '가격 탄력성이 낮은 물품'이라는 것이다. 경제학에서는 가격의 변동에 무관하게 수요가 유지되는 것을 가격 탄력성이 낮다고 말하는데, 생리대가 그렇다. 생리대 가격이 오르거나 낮아져도 여성들은 변함없이 생리대를 구매하고 구매할 수밖에 없다.

또 한 가지 다른 점은 생리대는 '가격차가 크지 않은 제품'이라는 점이다. 누구나 속옷을 착용하지만 그 가격은 500원짜리 팬티에서부터 수만 원에 이르는 팬티까지 실로 다양하다. 화장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생리대는 약간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비슷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문제는 많은 여성이 우리의 생리대 가격이 다소 비싸다고 느낀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 2001년 한 여성 모임이 여성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여성의 77%가 생리대 가격이 비싸다고 응답했다. 생리대 가격이 상향 형성되어 있는 상태에서 부가세까지 매겨지면 여성들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계속되는 세금 논란, 아직 늦지 않았다

연초부터 우리는 때아닌 세금 홍역을 앓고 있다. 맞벌이부부 세금공제를 줄여 저출산을 막겠다는 정부의 야심 차지만 어처구니없는 정책은 국민의 강한 반발에 없던 것으로 됐다. 이 정책에서도 비난받았던 것 중의 하나가 없는 사람들 세금 떼서 없는 사람 돕겠다는, 정부의 안일한 인식이었다. 양극화를 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존중한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주머니가 얇아지는 노동자들의 주머니를 털어 없는 사람들을 돕겠다는 건,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아파트 관리비, 장례식비, 생리대에 부가세를 매기겠다는 이번 정부안은 어떤 운명을 겪게 될까? 이번 조세 개편안이 아직은 용역 보고서 수준이라고 하고 공청회 등으로 의견을 수렴할 거라고 하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정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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