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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경부 출신 의원들은 여당 내 정책 라인에서 매번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04년 5월 벌어진 여당 원내대표 선거. 두 원내대표 후보 모두 재경부 출신 국회의원인 홍재형 의원과 강봉균 의원을 정책위의장 러닝메이트로 지목했다. 특히 강 의원은 최근 선출된 김한길 원내대표 체제에서도 정책위의장을 맡았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지난 1월 26일 MBC < 100분 토론 >은 '양극화 해법 및 세금논쟁'을 주제로 다루었다. 그 토론에서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은 '2년 전 한나라당이 저소득층의 겨울나기 지원을 위하여 2조원의 예산을 긴급 편성하자고 제기했을 때에는 관심도 안 보이다가 이제 와서 양극화 해소를 하겠다고 호들갑 떨며 세금을 올리겠다고 하니 그 배경이 의심스럽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필자는 한나라당이 서민복지에 진정으로 관심이 있다고 믿지 않으며, 이한구 의원의 발언 역시 서민복지를 무기로 한 정치공세의 성격이 짙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한구 의원의 발언이 비록 정치공세에 불과하더라도 정부여당은 그 빌미를 제공하였으며,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려면 이에 대하여 충분히 반성할 필요가 있다.

소설과 거짓말의 결과, 법인세 인하

2003년 2월 참여정부가 출범한 이래 그 해 12월까지 경제 분야에서 가장 큰 이슈는 '법인세 인하'였다. 한나라당은 '27%(과세표준 1억원 초과)~15%(과세표준 1억원 이하)'였던 당시 법인세율을 '26~13%'로 각각 1%P, 2%P씩 인하하는 법인세법 개정안을 2003년 8월에 제출했다. 이는 한나라당의 정체성에 딱 들어맞는 개정안이다.

정부여당 내에서는 견해가 나뉘어 1년 내내 설왕설래하였다. 법인세 인하를 주장하는 측의 논리는 '법인세 인하는 가처분소득을 증가시키므로 투자를 활성화한다'와 '우리나라는 국제적으로 법인세율이 높다'는 것이다. 전자는 소설에 불과하고, 후자는 거짓말이다.

법인세 인하가 가처분소득을 증가시키는 것은 맞지만 이것이 투자로 이어질 지, 배당을 통한 주주들의 돈 잔치로 이어질 지는 모른다. 일부에서는 적어도 투자에 악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법인세 인하가 재정수지에 미치는 악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미시적 사고에 불과하다.

법인세 변화가 GDP 성장에 미치는 영향에 관하여 Roeger와 in't Veld라는 학자가 'QUEST II' 모형을 이용해 실증 분석한 결과를 OECD 보고서가 소개한 바 있으며, 최근 각종 연구보고서에서 이를 신뢰성 있는 연구 결과로 많이 인용하고 있다. 이 연구 결과에 의하면, GDP의 1%에 해당하는 만큼의 법인세 부담을 줄이고 같은 금액만큼 재정지출을 줄이는 경우 60년 후의 GDP를 2.02~5.28% 정도 성장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연평균으로 환산하면 0.034~0.088%이다.

당시 2003년 기준으로 볼 때, GDP의 1%는 7.2조원이고 이는 전체 법인세수의 약 30%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또한 같은 금액의 재정지출을 줄여야 하는데, 이는 2003년 사회개발비 예산(14.6조원)의 약 50%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그 결과로 얻는 대가는 연평균 0.03%~0.09%의 경제성장이다. 한편, 산업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산업경제정보> 236호), 교육보건 부문에 1조원을 재정 지출할 경우 0.124~0.227%의 경제성장 효과가 있다고 한다.

사회개발비 예산의 50%에 해당하는 금액을 줄이는 고통을 감내하고 최대 0.1%도 안되는 경제성장을 누리는 선택과 교육에 1조원을 재정을 지출하여 최대 0.227%의 경제성장을 누리는 선택 가운데 어느 것이 현명한가?

우리나라의 법인세율이 국제적으로 높아 투자유치에 방해가 된다는 것은 완전 거짓말이다. 당시 주로 홍콩과 싱가폴을 비교상대로 하였는데, 이들은 도시국가로서 무역항과 금융중심지의 기능 때문에 세율이 낮을 수밖에 없는 경제구조를 지니고 있다(이들은 우리나라보다 법인세율이 낮은 몇 안 되는 국가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선진국은 물론 중국보다 오히려 법인세율이 낮았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투자하는 특정 외국자본에 대하여는 5년간 법인세를 100% 감면해주는 등 파격적인 세제혜택을 주고 있다. 그런데도 법인세가 높아 투자유치에 방해가 된다니!

2003년 11월 5일자 <서울경제> 기사에 따르면, 당시 정세균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 주도로 법인세 인하 반대의 당론을 확정지으려 했으나 홍재형·강봉균 의원 등 경제부총리 출신들이 반발하고 나섰다고 한다. 그리고 그 해 12월 정부여당은 한나라당 법인세법 개정안보다 한술 더 떠서 25~13%로 법인세율을 인하하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한나라당은 그래도 눈치가 보였는지 과세표준이 1억원을 초과하는 기업(주로 대기업이 해당)에 대하여는 1%P만 인하는 개정안을 제출하였는데, 정부여당은 화끈하게 대기업에게도 2%P를 인하해준 것이다.

그 결과, 매년 약 2.3조원의 세수입이 감소하였고 대부분은 대기업의 주머니에 들어갔다. 2조원 이상을 대기업의 주머니에 퍼주었으니, 재정여건상 서민층에 2조원을 지원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부자들에 대한 러브콜 소득세 인하와 특소세 축소

2003년이 대기업을 위한 한 해였다면, 2004년은 부자들을 위한 한 해였다.

한나라당이 소득세율을 3%P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여당은 협상 카드로 소득세율을 1%P 인하했다. 그 결과 자영업자의 경우 상위 10%가 세감면액의 75%를 가져갔다. 근로자의 경우에는 상위 10%가 세감면액의 62%를 가져갔다. 이에 대하여 한나라당과 당시 여당의 입장은 부자들이 소비를 해야 경제가 살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골프채·귀금속·PDP TV·프로젝션 TV 등 24개 고가 사치품에 대하여 특소세를 폐지하는 내용의 특소세법 개정안을 여당이 제출하였다(여론 악화로 이중 11개 품목만 폐지되었다). 이 개정안의 취지로는 부자들이 소비를 해야 경제가 산다는 논리에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한 것이라는 이유를 덧붙였다. 예를 들어 골프채를 제조하는 회사는 대부분 중소기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심상정 의원실에서 조사한 결과, 소비되는 골프채의 90%는 외국제라고 한다.

부자들은 여행을 해도 해외여행을 하고 물건을 사도 고급 수입품을 사며, 술을 마셔도 수입 양주을 마신다. 반면 서민들은 주머니가 비어 생필품도 못사는 처지에 있다. 누구의 주머니를 채워주어야 국내 소비가 살아나는지는 뻔하지 않은가?

소득세율 인하로만 약 1.4조원의 세수입이 감소하였다. 이 감세안 역시 재경부 출신 의원들이 주도하였다.

청와대는 부동산 투기 억제, 국회는 부동산 투기 조장

2005년에 들어서자마자 대통령이 "부동산 투기는 반드시 잡겠다"고 천명하고 나섰다. 그리고 그 방안의 하나로서 양도소득세 산정 기준을 기준시가에서 실거래가로 전환, 개발이익 환수의 재시행 등이 언급되었다. 그런데 2004년 12월 31일에 이상한 법안 2개가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조세특례제한법 제85조가 신설된 것이다. 소득세법상 부동산 양도차익은 원칙적으로 기준시가로 산정하나, 투기지역에서 발생한 양도차익에 대하여는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산정하도록 되었다. 신설된 이 조항은 '공익사업을위한토지등의취득및보상에관한법률' 또는 그 밖의 법률에 의하여 당해 사업시행자에게 양도(수용되는 경우를 포함)하는 경우에는 기준시가에 의해 양도차익을 산정하도록 예외 규정을 둔 것이다.

한 쪽에서는 양도소득세를 실거래가 과세 원칙으로 전면적으로 전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다른 쪽에서는 기존에 있던 실거래가 과세기준 대상조차 축소하는 법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를 본 부동산 투기꾼들이 청와대의 엄포에 코웃음을 치지 않았겠는가?

조세특례제한법 제121조의 17도 신설되었다. 이는 기업도시개발사업시행자가 기업도시개발사업으로 인해 발생한 소득에 대하여는 3년간 법인세 또는 소득세의 50%를 감면하고, 그 후 2년간은 25%를 감면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것이다.

한 쪽에서는 부동산투기 대책의 일환으로 개발사업자에 대한 개발이익의 환수를 재시행하겠다고 밝히고, 다른 쪽에서는 막대한 개발이익을 보장한 기업도시 사업시행자에게 법인세를 감면하는 법을 만들었다.

이 역시 여당의 재경부 출신 의원이 주도했다.

여당이여, 진정 전투를 할 의지가 있다면 내부단속부터 철저히 하라

2004년까지는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감세론에서 손발이 척척 맞았다. 아니, 법인세율 인하에서는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보다 오히려 한 발 더 앞서 나갔다. 그러다가 갑자기 감세론 비판, 증세론으로 돌아섰으니 이한구 의원이 보기에는 생뚱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열린우리당이 진정으로 한나라당의 감세론과 전선을 형성하고 전투를 할 의지가 있다면 일단 내부단속부터 철저히 해야 한다. 전투가 벌어진 상황에서 내부 반란이 일어난다면 필패이기 때문이다.

▲ 윤종훈 회계사
열린우리당의 재경부 출신 의원들은 한나라당의 '트로이 목마'다. 겉으로는 한나라당과 대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들만이 갖고 있는 재경부 인맥과 정보·자료를 무기로 대기업 위주의 성장 지상주의, 감세론(또는 조세개혁 및 증세론 무력화)을 조금씩 여당 내에 전파시키고 있다. 이들이 열린우리당 내에서 어떠한 위치를 갖느냐를 보면 향후 열린우리당의 미래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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