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이 이런 곳에 있을 줄이야"

가족들이 얘기하는 윤락가 화재 희생자들

등록 2000.09.25 14:32수정 2000.09.26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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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의 방에서 나온 시집. 김소월, 이육사, 류시화의 시집이 잿더미 속에 있었다. 시를 좋아했던 한 젊음은 그렇게 꽃을 피워보지 못하고 잿더미 속으로 사라졌다.ⓒ 최경준


최경준 기자 군산 윤락가 화재현장 취재 6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의 딸이 윤락업소에서 일을 하다가 사망했다는 전화를 받는다면? 군산시 대명동 화재사건 희생자들의 유가족은 "내 딸이 이런 곳에 있을 줄 전혀 몰랐다"고 한결같이 입을 모았다. 사망자의 유가족들을 만나 보았다.

술을 전혀 못 마시는 아이

활발하고 씩씩한 성격의 임OO 양(20)은 3남매 중 둘째 딸이다. 그가 남긴 일기장에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리워했던 언니 임OO 씨(21)가 내성적인 성격인 반면, 임양은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성격이었다. 자연히 친구들도 많았다. 사망자 중 유일하게 친구 20여명이 찾아올 정도.

"웅변을 잘했고, 말재간도 좋아서 우스개 소리도 잘했죠. 그 애와 있으면 늘 즐거웠어요." 임양의 어머니 박OO(45) 씨는 아직도 딸의 죽음이 믿어지지 않는다. 박씨는 아직 딸의 시신을 확인하지 못했다. "이제 보면 그 모습이 영영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아 못 보겠더군요."

김OO 양(20)은 임양을 '자기 힘든 일보다 친구 힘든 일을 먼저 신경 써주는' 좋은 친구였다고 회고한다. "성격이 꼼꼼해서 일기도 많이 쓰고 친구들에게 편지도 자주 썼어요."

키가 작아서 '땅콩'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 임양은 학교수련회 때 친구들과 팀을 이뤄 춤을 출 만큼 춤솜씨도 뛰어났다.

"TV보고 혼자 춤을 배워서 친구들에게 가르쳐 줬어요. 연예인이 되고 싶어했어요. 특히 자기는 꼭 가수를 해 보고 싶다고 했죠."

임양은 가장 힘든 것이 술마시는 일이라고 일기에 적고 있다.
"OO이는 전혀 술을 못 마셔요. 그런데 어떻게 이런 곳에 와 있었는지 이해가 안 돼요."

김양은 임양이 쇠창살 때문에 도망가지도 못하고 너무 억울하게 죽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추운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앤데 지금 얼마나 춥겠어요. 빨리 해결돼서 좋은 곳으로 보내고 싶어요."
끝내 김양은 눈시울을 붉히며 급히 자리를 일어섰다.

추석날 보내온 백만원이 한으로 남는다

"돌아다니는 것 좋아하던 애가 그 속에 갇혀 있었으니 죽어서도 얼마나 한이 맺히겠노?"

대구에서 올라온 권OO 씨(55)는 자신의 딸이 친구 꼬임에 빠져서 이곳까지 왔다고 말했다. 2년전 몸이 아파 집에 들어와 살던 6개월을 제외하고 딸 권OO 씨(26)는 거의 집밖에서 생활했다. 그러나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전화는 자주하는 편이었다.

금년 4월 노동일을 하는 아버지 권씨가 뇌출혈로 쓰러져 수술을 받았을 때 권씨는 집에 오지 못하고 울먹이면서 전화를 했다.
"아빠가 돌아가셔도 내가 갈 형편이 되질 못한다."

그리고 한동안 연락이 끊겼다. 권씨로부터 마지막 전화가 걸려온 것은 지난 9월 9일.

"병 때문에 일도 못하고 힘들지? 돈 없지? 친구한테 빌려서 돈 부쳐줄게." 그렇게 추석날 1백만원을 보내고 권씨는 이제 영영 연락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권씨 부부는 딸의 시신을 확인하고 서둘러 장례를 치르려고 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투쟁' 중이다.

"어차피 자식 잘못 키운 건 내 잘못이고 그냥 죽은 놈만 억울하지 싶어 빨리 장례를 치르려고 했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얘들이 생죽음 당한 거잖아요. 비명 지르다 지르다 못 뛰쳐나와 죽었는데 지들도 죽으면서 얼마나 억울했겠어요. 그래서 다른 유가족들과 함께 수사가 제대로 될 때까지 끝까지 버티고 싸울 거예요. 앞으로 이런 애들이 또 생기면 안되잖아요."

직업소개소에서 온 사람들

1남 2녀 중 장녀인 김OO 씨(20)는 중학교를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집안 형편으로 가출을 했다. 그러나 그 뒤로도 며칠씩 집에 왔다가곤 했다.

그러던 중 지난 98년 자신을 직업소개소에서 왔다고 밝힌 몇 사람이 광주에 있는 집으로 들이닥쳤다.
"김OO가 우리한테 빚을 졌으니 부모들이 대신 내놔."

김양의 아버지 김OO 씨(53)는 "나도 OO파 OO와 잘 알고 지낸다"고 거짓말을 해 그들을 돌려보냈다. 그 뒤로 김양의 소식이 완전히 끊겼다.

김씨는 자신의 딸이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다방 정도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았지 이런 곳인 줄은 전혀 몰랐어요."

김양은 이미 오래 전부터 빚에 얽매여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빚 때문에 김양은 어린 나이에 꿈을 키워보지도 못하고 죽어갔다. 기자가 불타버린 그녀의 방에서 찾아낸 약 봉투에는 아직 하루 분의 약이 남아 있었다.

"그 어린 나이에 매일 밤 남자들을 상대했으니 얼마나 아팠겠어?"
유가족들의 원망 섞인 말은 조문객 없는 영안실에 메아리칠 뿐이었다.

사진 없는 두 영전

최OO 씨(22)와 박OO 씨(21)의 영전에는 향을 피울 사람이 없다. 사고가 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아직 가족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가족이 찾아오지 못한 두 영전, 이들의 외로움은 더 크다.ⓒ 최경준
"내 동생도 불쌍하지만 아직 연락 안 된 두 명이 더 불쌍해요."
임양의 언니 임OO 씨가 주로 이들의 향을 피워주고 있다.

"경찰은 고아라고 추정하는 것 같은데 두 명이 다 고아일 수는 없잖아요. 빨리 가족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빈소가 마련되어 있는 군산의료원 영안실의 한 관계자는 "이들의 유가족이 끝내 나타나지 않으면 시청에서 처리하게 된다"고 말해 "죽어서까지 외롭게 되었다"며 다른 유가족들을 안타깝게 했다.

현재 군산경찰서는 무허가 윤락 영업을 한 건물의 전세 임대자인 전OO 씨(63)와 그의 아들 박OO 씨(29)를 연행해 중실화와 윤락, 감금 및 과실치사 혐의를 추궁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윤락 영업을 한 포주로 지목되고 있는 전씨의 사위 이OO 씨는 구속하지 않고 있다.

경찰은 현장 검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망자의 일기 등 중요한 수사자료를 찾아내지 못했으며, 현장 검시가 끝나자마자 현장을 그대로 방치해 고물상이 화재 현장에서 전선과 철물을 수거해 가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유가족은 "경찰이 적극적인 수사를 펴고 있지 않다"며 거세게 비난했다.

또, 유가족은 화재가 발생한 2층의 방이 7개였으므로 사고를 피한 2명이 더 있었을 것이라고 판단, 3층에서 구출된 한 명과 함께 이들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가족인 권씨는 "함께 그 곳에 있었으니 애들이 어떻게 감금되었었는지 그 사람들이 잘 알고 있을 겁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경찰은 사고 발생 3일동안 3층에서 구출된 여인의 신변을 확보하지 못했다가 뒤늦게 그 여인을 찾아내 수사하고 있으며 2층에는 5명만 지내고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 '군산 여성의 전화'는 경찰의 적극적인 수사와 윤락업소의 근절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한편, 여성단체와 시민단체가 모여 '군산윤락가 화재사건 공동대책위'를 결성했다.


최경준 기자의 윤락가 화재 취재7
군산경찰 윤락업소 보여주기식 단속


최경준 기자의 윤락가 화재 취재1
최초보도-윤락가 화재 현장에 갔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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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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