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막는 쇠창살만 아니었어도..."

군산 윤락가 화재참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등록 2000.09.20 11:55수정 2000.12.23 15:54
0
원고료로 응원



























"쇠창살만 아니었어도 그렇게 몽땅 죽어 나오지는 않았을 텐데..."
최 아무개(48,상업)씨는 19일 오전 집 앞에서 벌어진 화재를 보고 난 후 하루종일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흰 천에 둘러싸여 소방수의 손에 들려나오는 어린 시신들을 보고 속이 울렁거리고 울화가 치밀었기 때문이다.

"방범창을 만들어 놓았다고 하는 것 같은데 사실은 저게 얘들 도망 못 가게 하려고 만들어 놓은 거야."

그가 가리키는 3층 건물은 흰 타일로 된 외벽이 불로 인해 온통 시커멓게 그을려 있고, 2, 3층 4개의 창문에는 부셔진 쇠창살이 흉하게 매달려 있다. 쇠창살은 창문 안쪽으로 만들어져 있고, 열리지 않았던 창문은 완전히 부서져 있다. 화재가 난 건물 양쪽 옆에 있는 4층 건물 어디에도 '방범창'은 보이지 않았다.

19일 오전 9시15분께 군산시 대명동 무허가 3층 건물에 화재가 발생했다. 2층 출입구에서 시작된 불은 순식간에 3층까지 번졌다. 굳게 닫힌 창문은 열리지 않은 채 '사람 살려'라는 외침이 간간이 들려왔고 창문 틈으로 검은 연기와 함께 유독가스가 새 나오기 시작했다.

마침 20여 미터 떨어진 맞은편 건물에서 전기 공사를 하고 있던 인부들이 이를 발견, 카크레인(전봇대를 들어올리는 기중기) 운전사는 차를 화재가 난 건물 앞으로 몰았다. 그리고 기중기를 움직여 2·3층의 창문을 깨고, 다시 쇠창살을 부수었다.

오성교(45,중석전설)씨는 소방차가 오기를 기다릴 수가 없었다. 기중기의 쇠갈고리에 자신의 허리를 묶고 다시 3층으로 향했다. 검은 유독 가스를 뚫고 창문으로 머리를 내밀고 있는 여성을 끌어안아 내렸다. 그러나 2층은 이미 늦었다. 2층에서 잠을 자고 있던 6명 중 임아무개(20,윤락여성)씨 등 5명이 질식사했다. 소방차가 5분만에 화재 진압을 끝낼 만큼 화재는 크지 않았다.

"기껏해야 20여평 되는 곳에서 이렇게 작은 불에 5명이나 죽었다는 것은 한심한 일이야."
최씨는 2층이 별로 높지 않아 이불하나 뒤집어쓰고 뛰어내렸다면 기껏해야 다리정도 부러졌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가만히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저 쇠창살 때문에 못 뛰어내린 거라고."

그 건물은 작년 10월 전 아무개(63,포주)씨가 임대했다. 전씨는 상가로 쓰이던 2·3층을 합판을 이용해 칸막이 방으로 불법 개조했다. 2층에는 7개의 방이 있었고, 이날도 새벽 4∼5시까지 영업을 한 윤락여성들이 잠들어 있었다.

이번 화재는 그 규모가 작았음에도 불구하고 유독가스가 많이 나왔다. "건물 밖으로 새어나온 연기가 바닥에 2∼3센티미터는 쌓였어. 각 방에 침대 하나, 티브이 한대 정도 있었는데 이렇게 연기가 많이 나온 것은 합판을 붙여놓은 아교 때문이야."

화재가 난 건물 옆에서 전파상을 운영하는 김 아무개(45,상업)씨는 쇠창살이 아니었으면 창문을 열고 도움을 청해 한 명이라도 살았을 것이라며 "대한민국 공무원들 각성해야 돼"라고 호통을 쳤다. 화재 위험이 많은 무허가 건물에서 윤락 여성들을 가둬놓고 윤락 행위를 하는 것은 비단 군산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김씨의 주장이다.

화재가 난 건물은 대명시장 옆에 위치해 있다. 군산 역과 마주보고 있는 대명시장 주변에 밀집되어 있는 30여 개의 여인숙이 주로 뱃사람을 상대로 윤락행위를 하는 곳이라면 이 곳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속칭 '감뚝'이라고 하는 곳은 군산시민보다 타지인에게 더 잘 알려진 윤락거리이다.

"주로 충청권 사람들이 많이 오고, 익산, 전주, 정읍에서도 젊은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한 택시 기사는 이곳을 찾는 손님들을 자주 태운다고 말했다.

'감뚝'에는 모두 35개 업소가 영업을 하고 있으며, 240여명의 종업원이 윤락행위를 하고있다. '감뚝'을 관할하고 있는 파출소의 한 경찰은 "'감뚝'은 중소기업 크기여서 군산의 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감뚝'은 신고가 된 곳이기 때문에 미성년자나 불법영업을 단속하고 있지만 대명시장 여인숙들은 경찰이 단속을 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뱃사람을 상대로 하는 여인숙만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화재가 난 곳처럼 젊은 여성들이 윤락행위를 하고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고 말했다.

피해자가 안치되어 있는 군산의료원 영안실에는 이날 오후 10시까지 5명중 단 두 명의 유가족만이 찾아 왔다. 영안실의 한 관계자는 "이런 경우 20∼30여일 정도 기다렸다가 그래도 유가족이 나타나지 않으면 시청의 주관으로 화장을 하게 된다"며 안타까워했다.

군산경찰서는 화재가 나자 달아났던 포주 전씨와 그의 아들 박아무개(29)씨를 연행해 감금, 윤락행위, 업무상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11시 30분, 다시 '감뚝'을 찾아왔다. 대부분의 상점은 간판을 내린 채 어둠이 깔린 거리 입구에는 '포주'로 보이는 30대의 건장한 남자들이 10여명 서성거리고 있다. 안으로 10여 미터 들어서자 원색으로 코팅을 한 큰 유리벽이 환하게 불이 켜진 채 늘어서 있었고 그 안은 보이지 않았다. 이 날 오전 화재를 의식한 탓인지 윤락여성들은 밖으로 나와있지 않았다. 그러나 유리벽 안으로 5∼6명의 그림자가 비쳤다.

다시 10여미터를 가자 한 업소의 문이 살짝 열렸다. 문틈으로 여고생 교복을 입은 윤락여성 두 명이 보였다. 조금 더 길을 걷자 문 가까이 앉아 있던 윤락여성 하나가 유리문을 열었다.
"오빠, 놀다가세요."

골목마다에는 여전히 '포주'로 보이는 남자들이 지키고 서 있다.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등으로 코팅한 유리벽의 불빛만 거리를 메우고 있을 뿐 조금 이른 시간이었는지 '손님'들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검은 그을음이 채 가시지 않은 화재 건물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원래의 모습 그대로였다.

화재가 난지 하루도 지나지 않은 군산시 대명동 윤락가의 풍경이다. 또 어디에선가 누가 감금되어 있을지 모르겠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AD

AD

AD

인기기사

  1. 1 [단독] 대통령 온다고 축구장 면적 절반 시멘트 포장, 1시간 쓰고 철거
  2. 2 플라스틱 24만개가 '둥둥'... 생수병의 위험성, 왜 이제 밝혀졌나
  3. 3 '교통혁명'이라던 GTX의 처참한 성적표, 그 이유는
  4. 4 20년만에 포옹한 부하 해병 "박정훈 대령, 부당한 지시 없던 상관"
  5. 5 남자의 3분의1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다고?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