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춘희씨 의문사 사건>
"장시간의 비행으로 인한 사고사"?

미국 현지 경찰, 최종 부검보고서 유족에게 전달
유족들, "사고사라니...믿을 수 없다"

등록 2001.05.05 02:41수정 2002.04.01 21:50
0
원고료로 응원
미국 출장길에서 지난해 8월 의문의 죽음을 당한 주한미군 한국인 군무원 박춘희(당시 36) 씨에 대한 현지 경찰의 부검보고서가 지난 2일 유족들에게 전달됐다.

A4용지 7장 분량인 이 '부검보고서'(REPORT OF AUTOPSY)에는 비교적 상세하게 사체에 대한 부검결과가 기술돼 있다. 또 박씨의 사망원인에 대해 '두개경부'(Craniocervical: 머리와 목 부분) 손상으로 인한 사망으로 밝혔다. 하지만 지금까지 현지 경찰과 언론이 사건 발생 초기에 주장했던 '자살'과는 달리 일단 '사고사'(accident)로 결론짓고 있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부검의 캐롤린 레버콤은 "목격자 진술과 차량을 조사한 결과에서는 사망자가 택시의 문을 열었다는 것이 일치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자살을 암시할 만한 증거도 없었다"고 밝히고 있어 자살에 대한 가능성을 배제했다.

그러나 "광범위한 조사를 거쳤지만 타살 증거를 찾을 수는 없었다"고 말해 유족들과 일각에서 주장하고 있는 '타살 가능성'에 대해서도 일축하고 있다.

보고서는 사고사의 원인에 대해, "14개의 시간대를 통과하는 장시간 비행이 신체리듬 방해(jet lag: 시차로 인한 피로)와 피곤, 행동장애, 혼동을 수반했고, 친숙하지 않은 (미국 현지) 환경으로 (불안한 가운데) 정신적인 혼란을 일으켰다"고 밝혔다.


지난달 16일 작성된 보고서가 공개되고 현지 버지니아주(7관구)경찰이 이 부검보고서를 받아들임으로써 결국 박씨의 의문사 사건과 관련한 현지 경찰의 수사는 '사고사'로 사실상 종결됐다. 이후 별도의 수사결과 발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현지에서 이번 사건을 담당한 주미한국대사관 이성호 영사는 "연방수사국(FBI)의 수사나 정치인 등 유명인들이 연루된 사건의 경우 예외적으로 수사 결과 발표가 있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에는 부검 보고서만으로 대체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보고서의 '사고사 결론'에 대해 유족들이 여전히 의문을 가지고 재조사를 촉구할 경우에 대해선 '사견'임을 전제로 "수사과정에서는 정황적으로 자살로 결론 짓고 있었지만, 여러 가지 종합적인 조사 결과 최종 결론으로 사고사로 나왔을 것"이라면서 "사고사를
뒤집을 만한 (살인사건에 대한) 명백한 증거가 나오지 않는 이상 재조사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말해 재조사 촉구 등의 움직임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족들과 '박춘희 의문사 진상촉구를 위한 후원회'(이하 후원회)는 자살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일단 안도를 하면서도 이번 사건을 단순 '사고사'로 처리한 것에 대해선 수긍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후원회 최우식 대표는 "초기에 자살로 이번 사건을 은폐하려고 했던 것이 유족들과 국민들의 노력으로 자살 가능성이 없다는 쪽으로 결론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고에 대한 원인이 불분명하고 타살의혹이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승욱
특히 박춘희 씨의 남편인 남학호(42) 씨는 "이번 (사고사) 수사결과는 단 1%도 수긍하지 못한다"고 반발하면서 "앞으로는 더욱 강도 높게 진상규명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남씨는 "지금까지 주장해왔던 타살 의혹에 대해선 일체 그 조사결과가 나오지 않았고, 애매하게 장시간 비행으로 인한 사고사로 몰고 가는 것을 어떻게 수긍할 수 있냐"고 되물었다.

남씨는 "이번에 전달된 부검보고서는 작년에 직접 경찰에 요청해서 받았던 초기 부검결과와도 별반 틀리지 않고 단지 사건 결과에 대한 '요약'부분만이 삽입돼 있어 성실한 조사가 이루어졌는지 인정하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 동안 미국 현지 경찰과 미군범죄수사대(CID)에서 조사한 박씨의 주변인물에 대한 조사와 사건 당시 증인(택시기사)들에 대한 수사내용과 그 동안 제기된 타살의혹도 포함되거나 첨부돼야 하지만 이 보고서엔 그러한 내용이 제외돼 있다.

이에 대해서 최종민(경북대 의대) 법의학 교수는 "검사의 지휘를 받아 부검을 시행하는 국내 사정과는 달리 미국은 부검의의 주도로 부검이 이루어진다"면서 "부검 이후 경찰이 조사한 각종 자료와 증거를 바탕으로 사건 결과에 대한 추론이 부검의의 부검보고서를 통해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최종보고서엔 첫 부검보고서와 크게 다르지 않고 단지 '사고사'를 추론하는 A4용지 한장이 삽입돼 있다ⓒ이승욱
하지만 최교수 역시 "이번 조사보고서만으로는 사고사로 결론짓기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특히 타살을 부인할 만큼 충분한 입증내용을 갖춘 부검보고서라고 보기엔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현지의 한인교회에 목사로 일하고 있는 최상진 목사도 "일단 경찰이 수사종결을 하고 자살도 타살도 아닌 사고사로 처리하면서 이 사건에서 한발 물러서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주장했다.

최목사는 "주한미군에 대한 압박을 가해 미군범죄수대(CID)가 직접적으로 이번 사건의 핵심인물로 거론되고 있는 숨진 박씨의 상사인 미국인 군무원 M씨에 대한 수사를 가능하도록 해 타살동기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남씨를 비롯한 후원회 관계자들은 이후에 미국 현지의 형사변호사를 선임해서라도 박씨의 의문사를 다시 조사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2억원 이상 소요되는 변호비 마련이 난관으로 남아 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구경북 오마이뉴스(dg.ohmynews.com)


AD

AD

AD

인기기사

  1. 1 유인촌의 문체부, 청소년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유인촌의 문체부, 청소년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2. 2 "손님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다"는 사장, 그럼에도 17년차 "손님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다"는 사장, 그럼에도 17년차
  3. 3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에 '조선일보' 왜 이럴까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에 '조선일보' 왜 이럴까
  4. 4 "주변에 주식 투자로 5천만원 이상 번 사람 있나요?" "주변에 주식 투자로 5천만원 이상 번 사람 있나요?"
  5. 5 윤 대통령 측근에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의 불행입니다 윤 대통령 측근에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의 불행입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