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정부가 지겨워 할 때까지
아내의 죽음을 밝힐 것입니다"

한국인 미군무원 의문의 죽음과 그 남편의 싸움

등록 2001.05.01 07:25수정 2001.05.03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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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를 하다보면 다양한 취재원을 만나게 된다. 물론 여러 취재원이 있지만 유독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더욱 다가서는 취재원도 있게 마련이다. 특히 안타까운 사연의 '주인공'이라면 그 마음은 더욱 더 심하다.

지난해 8월 대구 주한미군 제20지원단(캠프워커) 소속 군무원으로 일하다 미국 출장길에 숨진 고 박춘희(당시 36) 씨의 남편 남학호(42) 씨도 그 중 한 명이다. 꽤나 알려진 한국화가이기도 한 남씨는 남다른 면이 많았다. 그 느낌은 무엇보다 그가 쏟아내는 열정을 기자가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죄스러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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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짧은 기사를 실은 것을 빼고 나면 몇 번의 전화통화가 전부였다. 그렇게 해를 넘기고 이제야 그에게 전화를 했다.
'안녕하세요. 이승욱입니다.'
'이기자, 잘 지내셨어요.'
그는 밝은 목소리로 기자를 맞았다. 그리고 며칠 후에 한번 만날 약속을 잡을까했던 기자의 생각은 '지금 당장 만나자'는 남씨의 생각으로 뒤집혔다. 그리고 한 시간 후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박춘희 씨 사건은 자살이유가 분명하지 않고, 관련자의 증언에만 의존한 수사 등으로 각종 의문이 산재해 있지만 미국 현지경찰과 정부는 소극적인 자세로 자살과 사고사를 저울질하고 있을 뿐이다 - 사진은 사건현장에서 발견된 의문의 안경ⓒ이승욱
횟집에서 풀어놓는 9개월간의 생활

남씨는 집 근처에 있는 횟집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소주 한 병과 회 한 접시를 시킨 후 그는 5월초부터 시민단체와 계획하고 있는 '1인 시위' 소식을 먼저 꺼냈다.

지난 달 19일 부산지역 '주한미군철수운동본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이 <고 박춘희 씨 의문사 진상 촉구 성명서>를 발표한 후 대구지역에서도 미군기지땅되찾기대구시민모임(미시모) 등이 앞장서 박씨가 근무했던 미군기지 앞에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는 것.


"아내가 살해되고 난 후에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그러면서 시민단체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됐죠. 사실 지금까지 야속한 것도 많았죠. '왜 나서주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했지만 이제라도 대구지역의 시민사회단체가 도움을 주려고 하니 고맙기만 합니다"

슬픔에 고개숙인 남편ⓒ이승욱
지난해 8월 5일, 아내가 그다지도 기대하고 있던 미 국방성 업무교육을 받기 위한 출장길에서 죽음을 맞았을 때 미국 현지 언론은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동양인 여성의 자살'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당시 한국에서 그 소식을 접한 남씨는 전혀 믿을 수 없었다. '그렇게 생기발랄했던 아내가 자살이라니...'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그렇게 아내의 왜곡된 죽음을 밝히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9개월이었다.


그러나 바쁜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아내에 대한 슬픔은 잊혀지지 않는 것이었다. "9개월이 마치 십 년을 산 것과도 같이 느껴집니다. 집사람 이름으로 남겨진 유일한 거라고는 경승용차 하나가 전부입니다. 차마 팔 수도 없는 그 차를 타고, 아내가 죽었던 그 당시처럼 고속도로를 달릴 때면 눈물이 나서..." 끝을 흐리는 그의 말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하지만 남씨는 슬픔에만 잠겨 있지는 않았다. 미국 현지 경찰의 조사가 아직 미궁으로 빠져가고 있지만 방송매체를 통해 박씨의 죽음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미국을 두 번째 찾으면서 바쁘게 살아왔다. 그것을 입증하듯 작은 글씨로 빽빽한 그의 수첩은 빛이 바래고 너덜너덜해 있었다.

빛바랜 그의 수첩엔 그간의 세월이 고스란히 남아있다ⓒ이승욱
"3월 31일에 SBS <그것이 알고싶다>를 통해서 아내의 죽음에 대해 방송으로 나갔습니다. 그 방송 촬영을 위해 3월 15일부터 일주일 동안 미국을 두 번째 찾았죠. 무엇보다 이번에는 아내가 죽은 현장에 꽃이라도 남길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아내의 죽음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찾았던 지난해 첫 미국 방문 때 현지 경찰이 '현장이 공사 중이다', '고속도로이기 때문에 현장 출입이 불가능하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남씨는 현장을 직접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또 이번 미국 방문 때는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백악관 앞에서 자신이 직접 쓴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할 수도 있었다고 한다.

"씨랜드 참사로 이민간 부모의 심정을 이해하겠더군요"

그러나 정작 남씨가 분노하고 있는 것은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있는 미국 만큼이나 그에 대한 항변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는 한국정부에도 있었다.

ⓒ이승욱
"얼마 전 씨랜드 참사가 있었죠. 그 사고로 자식을 잃은 한 부모가 외국으로 이민을 간다고 하더군요. 나 역시도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학교 교과서에서 배워왔던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은 온데간데 없고, 한국인이 이렇게 초라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더욱 답답했죠"

지난해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의 손에 들려 있던 것처럼 이날도 역시 그에게 A4크기 서류봉투가 쥐여져 있었다. 그는 기자에게 서류봉투 속에 묵직하게 담겨있는 그 서류들을 건네줬다. 그가 김대중 대통령,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외교통상부(이하 외통부), 여야 의원들에게 보낸 각종 탄원서와 진정서였다.

"지금까지 이 사건에 대해 정부가 앞장서 밝혀달라고 보낸 서류가 얼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통령에게 보내는 탄원서며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 민주당 장성민 의원에게 보낸 진정서, 외통부는 물론이죠. 하지만 그에 대한 답은 항상 천편일률적이었죠. '외통부에 이첩하겠다', '외통부에서는 적극 노력하고 있다' 등이 전부였어요. 성의가 있기나 한지..."

이 대목에서 그가 전하는 '에피소드(?)' 두 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정치인들이 그렇게 의존하는 외통부와 관련한 이야기. "민주당 장성민 의원이 지난 2월 16일 국회 국제상임위원회에서 '박춘희 씨 사건'에 대해 외통부 관계자에게 묻자 무슨 사건인지도 모르고 있더군요. 그리고 얼마 전엔 '해당 경찰서'의 확인이 필요하다고 해서 제가 살고 있는 관할 경찰서에 진정까지 내야 했죠. 왜 아무 상관없는 그 경찰서 진정서가 필요한지 경찰서 관계자도 웃더군요"

ⓒ이승욱
"평범한 국민과 네티즌을 믿습니다"

하지만 남씨는 현실이 이렇게 그를 외면하고 있지만 그나마 희망은 국민과 네티즌에게 있다고 한다.

"얼마 전 방송이 나간 후에 택시를 탔는데 택시기사가 알아보셨어요.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하지만 성금 내는 셈치고 택시요금을 받지 않겠다고 하셔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잊혀지지 않습니다. 이제 저는 위정자는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웃과 시민들은 너무나 믿고 싶습니다"

또 지난해 10월에 마련한<박춘희 씨 사건해결을 위한 인터넷 홈페이지>(www.antiusa.ce.ro)에는 지금까지 네티즌의 조회건수는 3만여 건에 달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에겐 다시 뛸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 같았다. 지치면서도 주저앉지 않는 힘의 원천은 '아내에 대한 사랑'과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닐까. 그에게 이 싸움의 끝이 어딜까 궁금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떳떳해질 때까지 노력할 것입니다. 이 왜곡된 사건의 전말이 밝혀져 아내의 죽음이 서럽지 않게, 그리고 한국인의 끈기를 전세계에 보여줄 때까지, 미국과 정부가 지겹다고 할 때까지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을 요구할 것입니다"

얼마전 미 LPGA 박세리 골퍼의 우승을 축하하는 김대중 대통령의 축전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그와의 술자리는 다음을 기약했다. 다음엔 그와 '기분 좋게' 술을 한잔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뒤로 하면서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취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남학호씨가 '화난' 목소리로 전화를 했습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가 '현지 경찰당국의 수사결과가 자살도 아니고, 타살도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결국 사고사)'라고 했다면서... ... 하지만 외통부는 기자와의 통화에서는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해 '발뺌'을 하고 이후 현지 경찰의 부검결과와 공식적인 조사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외통부 관계자는 그 결과는 아직 알지 못하고 있다면서, 곧 유족들과 관계 당국에 국제우편을 통해 우송될 것이라고 합니다. 
 
현재 두 남매의 아버지이면서 화가이기도 한 남학호씨는 최근 바쁜 가운데에서도 작품활동을 하고 있으며 4월 29일부터 오는 19일까지 열리는 '한국화 10인 초대전'에도 참가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취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남학호씨가 '화난' 목소리로 전화를 했습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가 '현지 경찰당국의 수사결과가 자살도 아니고, 타살도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결국 사고사)'라고 했다면서... ... 하지만 외통부는 기자와의 통화에서는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해 '발뺌'을 하고 이후 현지 경찰의 부검결과와 공식적인 조사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외통부 관계자는 그 결과는 아직 알지 못하고 있다면서, 곧 유족들과 관계 당국에 국제우편을 통해 우송될 것이라고 합니다. 
 
현재 두 남매의 아버지이면서 화가이기도 한 남학호씨는 최근 바쁜 가운데에서도 작품활동을 하고 있으며 4월 29일부터 오는 19일까지 열리는 '한국화 10인 초대전'에도 참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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