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압선 이전 요구 묵살하더니..."

공사장 인부 미군 고압전기에 감전 중태

등록 2001.07.26 10:45수정 2001.07.27 13:44
0
원고료로 응원
ⓒ 오마이뉴스 노순택
글/김미선 기자
사진/노순택 기자


서울 대치동 순화병원 404호.
양손과 두다리, 가슴팍을 붕대로 칭칭 감은 50대 남자가 침대에 누워있다. 그는 9일전인 7월16일 앰뷸런스에 실려 이곳으로 왔다.

감전사고. 건설현장 인부였던 전동록(54.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 파주5리) 씨는 열흘전 공사현장 위를 지나던 미군부대 고압선에 감전됐다. 그러나 그는 사고발생 열흘이 지나도록 홀로 병상에 누워있을 뿐이다. 그는 어쩌다 이 엄청난 사고를 당했을까.

"전씨의 몸을 관통한 22800볼트"

7월16일 경기 파주시 조리면 뇌조리 캠프하우즈 미 제2사단 공병대대 후문 옆 대우제판 카메라 조립식 공장 증축현장.
열흘전부터 시작된 공사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전동록 씨는 마지막 지붕철판을 얹기위해 5.5미터 지붕위에서 작업중이었다.

채 1미터도 안되는 위치에는 미군부대쪽으로 들어가는 22800볼트 고압선이 흐르고 있다. 공장을 짓기 전부터 건물주와 이장이 미군측에 '공사를 해야하니 고압선을 좀 치워달라'고 수차례 요청했음에도 미군측은 "맘대로하라"는 식이었다. 때문에 고압선은 내내 공사장 인부들에게 골칫덩이였다.

오후 6시쯤 됐을까.
옆에서 일하던 인부가 마지막 철판에서 잘라낸 폭10센티 가량의 철판조각을 그냥 내려놓는다. 맘에 걸린 전씨, '혹여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싶은 마음에 그 철판조각을 받아들고 두 번 꺾었다. 지붕아래로 떨어뜨려 사고를 방지하자는 생각이다.

그런데... 그게 화근이었나.
쪼가리 철판을 두 번 접는 순간, 전씨는 몸이 확 쏠리는 느낌을 받았다.
철판이 고압선에 달라붙은 것이다. 본능적으로 철판을 잡으려던 전씨의 양팔이 딸려 올라갔다. 지붕위 철판에 딛고 있던 두발과 고압선에 달라붙은 철판을 잡은 양손사이를 전류가 관통했다. 무더위 탓에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전씨의 몸은 순식간에 타들어갔다.

"느낌에 10분쯤 지난 것 같아. 지붕위로 몸이 떨어졌지. 떨어지는 순간 정신이 들었는데 '몸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 다 타고 없어져서 머리만 남은 줄 알았어. 잠시후 엄청난 통증이 느껴지면서 '몸은 있구나' 생각했지."

ⓒ 오마이뉴스 노순택


철판이 녹고, 운동화가 녹고, 전씨의 몸도 급속도로 녹아들어가기 시작했다.

화상 4도, 그리고 아직 정도를 파악할 수 없는 내부손상. 1차진료 결과 전치 12주. 수십개의 링거를 꽂은 채 응급실과 중환자실에 누워있던 전씨가 일반병실로 옮겨진 것은 3일뒤 였다. 말이 일반병실이지 응급실에서 사용하던 치료기구가 그대로 일반병실에도 설치됐다. 몸속에서부터 타들어간 살들은 몸 내부의 열을 견디다 못해 전씨의 팔다리를 터뜨리며 분출했다.

다음주까지 팔다리에서 새살이 돋아나지 않는다면 최악의 경우 손발을 절단해야 한다는 의사의 소견은 큰아들 민수(25) 씨만 알고 있을 뿐, 전씨는 자신이 현재 어떤 상태에 놓여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그는 '예전으로 돌아가기 힘들다'는 정도만 파악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사고발생 후 10일이 다 되도록 누구하나 병원을 찾아오지 않았다. 하청업자 박씨가 두차례 병원에 들렀지만 도망치듯 되돌아갔다. 그외엔 오로지 부인과 아들만이 병상을 지킬 뿐이다. 아들 민수씨는 얼마전 입사한 직장마저도 열흘째 결근한 채 전씨의 병수발을 들고 있고, 부인은 엄청난 치료비를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망가진 몸, 누구의 책임인가

전씨 사고에 대한 책임소재는 두 축으로 요약된다.
첫 번째는 미군부대 캠프하우즈 미 제2사단 공병대대. 사전에 '공사시 사고우려가 있으니 치워달라'고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사고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군 고압선은 국내 고압선과 달리 피복을 씌우지 않아 감전사고의 가능성이 더 많았다. 두 번째는 건물주와 하청업자 박아무개씨. 공사현장에 고압선이 흐르고 있고, 이의 위험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공사를 강행했다는 이유다.

"현장을 알고, 내용을 아는 곳에서는 안전사고가 나지 않는 법이야. 거기가 개인 소공장이었기 때문에 현장을 속속들이 다 알고 있었지. 결국 한국행정이 문제야. 내 집앞으로 미군부대 고압선이 지나가는 걸 좀 치워달라는 데 우리나라에선 그게 왜 안되나. 끝내는 인명사고까지 난 것 아냐. 밑에 공장에서 전기돌아가지, 비와서 번개라도 치면 공장이 다 날라갈 수도 있었어."

사고당사자인 전씨 본인은 전자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혹시 공사현장에서의 안전소홀 때문일 수도 있지 않겠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전씨가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전사고라기보다는 '고압선을 치우지 못해' 발생한 예견된 사고라는 얘기다. 그러나...

"난 하루벌어 하루먹는 사람이야. 일당 10만원-15만원이 내가 버는 전부지. 근데 내가 열받는 건, 그래도 얼굴 맞대고 공사하던 사람들인데 슬슬 피하기만 하고, 코빼기도 안비출 수 있는 건가... 그 때 죽었으면 이 고생이나 않지..."

그는 사고발생 뒤 공사관계자들이 보여준 태도에 더 상처를 받았다. 원인제공자인 미군측은 물론이고, 공장건물주 또한 한번도 병원을 찾거나 사고에 대한 유감표명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엄청난 사고앞에서 관계자들은 '책임회피'에 급급할 뿐 '인간적 도의' 마저도 저버렸다는 게 전씨의 생각이다.


전씨는 '법으로해서라도' 자신이 억울하게 당한 사고에 대해 보상받겠다는 각오다. 십수년은 더 일할 수 있었던 53세의 가장 전동록 씨는 붕대로 감긴, 어찌될지 모르는 자신의 몸을 쳐다보며 애써 눈물을 삼켰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미군 앞으로 보상 요구 진정서 보내-김준회 기자

이곳은 지난 6월부터 조아무개 뇌조리 이장이 고압선 이전을 미군측에 수 차례에 걸쳐 건의했었고 사고가 나기 3일 전인 14일, 현장에 나온 미군측 전기 담당자 3명이 "아무 이상 없으니 그대로 공사를 진행하라. 추후 나와서 옮겨 주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고압선 이전을 미루다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미군측은 사고 발생 뒤 피해자와 가족 등과의 접촉을 피하며 오히려 담당의사에게 수 차례 걸쳐 전화를 한 것으로 확인돼 피해자와의 해결보다는 사건을 축소시키려 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게 하고 있다.

특히 이곳이 지난해 기름 유출로 주민들에게 피해를 입힌 부대로 아직 기름유출로 인한 피해에 대해 원상복구나 보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곳이어서 이번 사건 이후 주민들의 불만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사고를 당한 전씨는 현재 사비로 치료를 받고 있으며 해당부대인 캠프하우즈 공병대대장 앞으로 보상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보내고 조속한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미군측은 피해자의 진정서를 영어로 번역해 상부에 보고한 상태라고 밝혔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파주지역신문사에서 31년째 취재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농민신문에서 접하게 됐고 중앙일간지나 각종 언론에 많이 할애되지 못하는 지역의 소외된 이웃이나 진솔된 삶을 살아가는 이웃, 그리고 문제점 등을 알리고 싶어 접속하게 됐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10년 만에 8개 발전소... 1115명이 돈도 안 받고 만든 기적
  2. 2 김흥국 "'좌파 해병' 있다는 거, 나도 처음 알았다"
  3. 3 자식 '신불자' 만드는 부모들... "집 나올 때 인감과 통장 챙겼다"
  4. 4 23만명 동의 윤 대통령 탄핵안, 법사위로 넘어갔다
  5. 5 김건희 여사 연루설과 해병대 훈련... 의심스럽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