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압선 감전사고 미군부대 항의시위

'전동록씨 피해보상 및 미군기지 규탄대회' 열려

등록 2001.11.18 18:19수정 2001.11.19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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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7일(토) 오후 2시 무렵 경기도 파주시 캠프 하우즈(Camp Howze) 정문 앞으로 몇무리의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정문 가까이에는 경찰들이 미리부터 대열을 짓고 서있었다. 동네 주민들도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구경나오고, 아이들은 마냥 신난다는 표정이다.

전동록 씨 고압선 사고가 발생한 캠프 하우즈 정문 앞에서 '전동록 씨 피해보상 및 주한미군 기지 규탄대회'가 있던 날. 집회에는 민주노동당 경기지부, 경기 민중연대를 중심으로 파주 환경운동연합,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등의 단체들과 단국대, 항공대 학생들 약 70여명이 참석했다.

알고 보니 미군문제를 가지고 미군기지 앞에 정식으로 신고를 내고 집회를 여는 것은 파주시 생긴 이래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집회장 주변에 배치된 경찰들은 다소 느긋한 분위기였다.

파주시 생긴이래 미군기지 앞 첫 집회

참가하는 사람들도 초행길이라 많이 헤매기도 해 본집회는 본래 예정시간인 2시를 훌쩍 넘겨서야 시작할 수 있었다. 사전집회로 단국대학교 사회과학토론회 '노둣돌'에서 한 명이 나와 발언을 했다. '노둣돌'은 전동록 씨의 막내아들 전민호 (23)씨가 가입해 있는 동아리다. 뒤늦게야 사고 소식을 듣고 동아리 차원에서 무엇을 도울 수 있을까 한참 고민하다 마침 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동아리 깃발을 펄럭이며 천안에서부터 이곳 파주까지 제일 먼저 달려온 것이다.

전민호 씨 동기로, 누구보다 이번 일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유정훈(단국대 97) 씨는 "사고 소식을 접하고 너무나 가슴이 아팠고, 사건이 잘 해결될 때까지 그리고 주한미군이 철거될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다"며 결의를 밝혔다. 다음 주 금요일엔 전동록 씨 치료비 마련을 위한 후원주점도 계획하고 있다.

이어 본집회에서 무엇보다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던 것은 가족 대표로 나온 전민수(25, 전동록씨 맏아들) 씨의 발언이었다.

"내가 바라는 건 아버지의 없어진 팔다리를 돌려받는 것"

"내가 바라는 건 돈이 아닙니다. 돈은 저도 벌 수 있습니다. 이번 사고로 우리 가정을 파탄낸 것, 그리고 아버지의 없어진 팔다리를 돌려달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미군은 떠나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전 씨의 발언이 끝나고, 차분하면서도 똑부러지게 자기 할 말을 다하는 모습에 모두들 한마디씩 했다. 하지만 그가 집회장에서 발언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것, 집회에 참석하는 것 역시 처음이라는 사실에 더욱 놀라와 했다. 집회가 시작되기 전 가족 대표로 누가 발언을 할 거냐고 묻자 형에게 미루는 동생 민호에게 "아 왜, 구호 외치는 것 보니까 폼나던데. 나는 시위에 한번 안나가 봤잖아"하며 짐짓 뒤로 빼던 그였다. 그러나 진실만큼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없다. 그의 이런 차분함 속에서의 당당함은 미군측과의 면담에서도 드러났다.

미군부대에 항의서한 전달

집회 마지막 순서로 대표단을 꾸려 미군부대측에 항의서한을 전달하러 들어갔다. 대표단은 전민수(가족 대표), 김종일(자통협), 이승헌(민주노동당) 그리고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대표 한 명 등 네 명으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처음에 나오겠다던 민사과장이 돌연 상부의 방침이 있었다며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상부에서 모든 서한은 파주시 당국을 통해 전달하도록 하고, 일체의 면담을 하지 말라는 지침이 있었다는 것이다. 파주경찰서 관계자는 계속 논의하고 있으니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더 이상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었던 집회 참가자들은 일어나 기지 정문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고 있다가 갑작스런 시위대의 급습에 놀란 경찰들은 우왕좌왕하며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몇차례 몸싸움이 벌어지고, 급하게 병력이 증강되면서, 화이버며 방패가 지급되었다. 그렇게 미군기지 정문을 바로 앞에 두고 시위대와 경찰들이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기를 30분여. 그제서야 미군측에서 당직자와 만남을 갖게 해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미군측은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

일개 사병을 내세워 항의서한을 전달받으려던 것을 대표단은 보다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을 보낼 것을 요청하였고, 결국 공병여단 본부 중대장을 맡고있는 박 대위(Park Andrew. Y)가 대표로 나왔다. 대표단이 요구한 것은 두가지다. 첫 번째. 항의서한을 여단장에게 전달하고 서면으로 답변해 줄 것. 두 번째는 이번 고압선 감전사고에 대한 부대의 배상방침이 있는지, 있다면 무엇인지를 알려달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 대위는 전동록 씨 사건에 대한 부대측 방침이 세워져 있진 않으나 부대에서도 조속한 해결을 바라며, 그것은 절차에 따라 시행될 것이다. 그리고, 항의서한은 사단장에게 분명히 전달할 것을 언약하였다. 끝으로 대표단은 항의서한을 받았다는 것을 확실히 해두기 위해 박 대위의 서명을 요청했으나 서명은 혹시 악용(?)될 우려가 있다며 끝내 거부하는 바람에 대신 박 대위의 신분증을 확인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마지막으로 전민수 씨의 한마디.

"집회하는 내내 미군들 계속 웃고, 장난치며 강 건너 불구경 하는 식인데 다음에도 이런 식으로 나오면 가만있지 않겠습니다. 그땐 그만큼의 대가를 치르게 할 겁니다."

미군들, 집회 내내 웃고 장난

실제로 미군들은 부대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저희들끼리 웃고, 장난치며 무슨 좋은 구경거리나 만났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들은 무엇이 그리도 재미있던 것일까. 미군기지 앞에서 싸울 때면 항상 느끼는 거지만, 미군측에 항의한다는데 한국인들끼리 싸우는 모습에 재미있어한 건 아닌가 싶어 마음이 착잡해졌다.

앞의 발언에서 "손해배상 소송도 미군에 직접 할 수 있는게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에 한다는 건 정말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던 전민수 씨. 그는 이번 집회에서 그러한 모순을 다시금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앞으로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번 집회를 계기로 전동록 씨 고압선 감전사고에 대해 보다 조직적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미군 고압선 피해를 둘러싼 길고 긴 싸움이 이제야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항의 서한

지역주민의 안전과 기본권을 침해하는 미군기지 즉각 반환하라!

지난 7월 16일 캠프 하우즈 후문 인근 공사장에서 미군 고압선에 감전돼 사지를 절단한 전동록씨를 보며 슬픔과 분노를 누를 길 없다.

당시 공사 관계자들이 공사 시작 전부터 수차례 미군부대에 고압선을 옮겨줄 것을 요청했지만 매번 묵살당했다. 심지어 사고 3일 전에도 미군부대 관계자가 나와 현장을 둘러보았지만 괜찮다는 말 뿐이었다. 그것이 결국은 큰 화를 부른 것이다.

우리가 더욱 분노하는 것은 사고 이후 미군측이 보인 태도에서다. 사과 한마디 없이 의례적으로 위로금 60만원과 배상서류만 건네주었을 뿐이다. 끔찍했던 사고의 기억이 아직 생생한 문제의 고압선은 지금도 철거되지 않고 방치되어 있다.

이번 사고는 미군측이 고압선 이설에 대한 요청을 묵살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단순한 안전사고라기 보다는 미필적 살인행위나 마찬가지다. 특히, 당시 고압선은 피복도 되어있지 않은 나선이라 피해가 더욱 클 수 밖에 없었음에도 미군측은 자체 규정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오만한 자세를 굽히지 않고있다.

그러나 우리는 미군 규정 이면에 고압선 철거 및 교체에 드는 비용 부담을 회피하려는 미군측의 숨은 의도가 있음을 알고 있다. 방위비 분담금이라는 명목으로 매년 수천억원의 국민 혈세를 받아가면서도 사람 죽이는 전쟁연습에만 쓸 줄 알았지, 한국민들의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취하지 않고있는 것이다.

한편, 최근 밝혀진 바와 같이 스토리 사격장 주변 산림 훼손 등 미군기지와 훈련장을 둘러싼 주한미군의 횡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왜 미군기지를 돌려 받아야 하는지, 왜 주한미군이 이 땅에서 나가야 하는지를 절절히 말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합의된 바에 따르면, 파주지역에서 반환 예정인 공여지에 다행히 이곳 캠프 하우즈는 포함되어 있지만 정작 그동안 민원이 끊이지 않던 스토리 사격장은 빠져있다. 이 사실 하나 만으로도 연합토지관리계획(LPP)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기만적인가를 알 수 있다.

우리는 미군기지가 이곳에 남아있는 한 주민들이 하루도 마음놓고 쉴 수 없는 현실을 규탄하며, 다음과 같이 요구하는 바이다.

<우리의 요구>

- 미군 당국은 전동록씨 고압선 피해에 대해 사과하고 배상하라!
- 미군 당국은 미군 고압선 나선에 대한 피복선으로의 전면 교체 등 지역 주민들의 안전에 최선을 다하라!
- 기만적인 연합토지관리계획(LPP) 폐기하고 스토리 사격장을 비롯, 전국의 모든 공여지를 반환하라!
-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안중에도 없이 전쟁연습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주한미군은 즉각 이 땅을 떠나라!

2001. 11. 17.

전동록씨 피해보상 및 주한미군기지 규탄대회 참가자 일동

덧붙이는 글 | 전동록씨 가족은 계속 늘어나는 치료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후원을 바랍니다.
농협 215088-52-114856 이명화

덧붙이는 글 전동록씨 가족은 계속 늘어나는 치료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후원을 바랍니다.
농협 215088-52-114856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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