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살리고 싶다면 사람에 투자하라

[쌀사랑 릴레이기고 ⑧] 서울대 농생대학 이무하 학장

등록 2003.12.09 10:35수정 2003.12.09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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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을 제외하면 우리나라 식량자급율은 5%에 불과하다. 그나마 쌀이 있어 식량 자급율 30%가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내년이면 우리나라 쌀 시장은 전면 개방될 처지에 놓여있다.

<오마이뉴스>는 식량안보의 중요성을 환기하기 위해 '쌀사랑 릴레이기고'를 주1회 선보이고 있다.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학장인 이무하 교수가 농업인재 육성의 필요성을 알리는 글을 보내왔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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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무역센터에서 열린 '2003 쌀박람회' 조직위원장을 맡은 이무하 교수(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학장).
지난달 무역센터에서 열린 '2003 쌀박람회' 조직위원장을 맡은 이무하 교수(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학장).오마이뉴스 남소연
세상 모든 사물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한국 농업의 역사를 보면 이러한 사람의 중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한다. 60년대 식량자급화를 이룩하고 산림녹화를 성취한 업적을 볼 때 인재들의 역할을 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농업의 기본이라는 농업농촌기본법의 어디에도 우수한 인재 양성에 대한 언급이 없다. 단지 기술개발을 언급한 구절만이 있을 다름이다.

또한 최근 농촌·농업 발전에 향후 10년간 119조원을 투입하겠다는 내용을 들여다봐도 고작 기술인력 양성이라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이런 모습을 볼 때 농림부 공무원들과 관련 기관 공무원들이 농업에서의 농학교육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단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기술자만 양성하면 농업이 유지될 수 있다는 착각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농업과 농업경영인에 대한 투자는 많이 해왔지만 농업생명과학에 대한 투자는 소홀했다. 기술개발은 과학이 뒷받침되어야 된다는 것을 우리는 첨단기술을 개발하는 고급인력의 과학적인 배경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대학교육은 교육인적자원부 소관이라고 굳게 믿고 젊은이들에게 그냥 농사짓는 기술교육만 시키고 금전적인 지원만 해주면 농촌에 들어가서 농사를 지을 것이라는 어린애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니 농업이 이지경이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이제 농업생명과학계 대학들은 학생들이 기피하는 분야로 장기적인 고급 농업인력 공급에 빨간불이 켜져 있음에, 자연과학대학이나 공과대학들과 협력하여 이공계 분야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상황을 농림부는 강 건너 불 구경하듯 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을 금할 길이 없다.

농업농촌기본법 어디에도 농업 인재 양성에 대한 언급이 없다


농업은 타 산업과는 달리 공익적 기능이 훨씬 크다. 식량생산 부문이나 생명공학분야는 경제적이나 기술적인 측면을 고려하여 민간 자본의 투자를 기대할 수 있겠지만, 환경보존이나 국토보전, 나아가서는 동식물자원 보호 분야 등은 투자의 경제성을 따지기에는 무리가 있다.

선진국에서는 일찍부터 이런 분야에 투자를 하여 우리와 기술격차가 많이 벌어져 있다. 따라서 국가가 스스로 투자를 하지 않으면 다른 나라가 해 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머지않아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여도 해결할 수 없는 여러가지 환경문제나 생명자원 고갈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대부분의 국민들이 농업은 오로지 식량생산을 위해서 존재하며 식량생산은 경쟁력이 없는 분야라고 생각함으로써, 예전에는 농업생명과학에 뜻이 있고 열정이 있는 젊은이들이 입학하던 농학계 대학이 요즈음에는 실력이 모자라서 더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한 학생들이나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인식으로 인해 상당수의 학생들은 자긍심을 가지지 못한 채 열등의식과 좌절감으로 대학을 다니며 기회만 되면 다른 학문분야로 옮기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농업이 국가가 발전시켜야 할 지식집약 산업이며 미래 산업이라는 비젼을 심어주지 못한 대학과 관련 부처의 무관심에 기인한다.

이렇게 철학이 없고 비젼을 갖지 못한 젊은이들을 양산하여 무엇에 쓸 것인가. 우리는 어떤 시스템이 잘 안 돌아가면 규정이나 법을 고치고 조직을 재구성하여 개선을 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러한 조치로 구성원들의 정신상태에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 한 투입된 노력은 별로 효과를 보지 못한다.

열등감과 좌절감으로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에게 자긍심을 달라

요사이 많은 경영관련 서적들이 인간경영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도 다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세계적인 시장개방 추세에 국가적인 농업·농촌 대책을 세우는 데에는 반대할 사람이 없겠지만, 119조원을 투입하는 방법에는 많은 의견이 있을 것이다. 그 돈의 일부라도 농업분야에 고급인력을 키우는데 사용해야 한다.

농업생명과학기술 개발을 위해 국가적으로 엄청난 투자를 하는 중국이나 베트남을 보면 우리의 미래가 염려스럽다. 스위스는 생산비 측면에서 자국 식량이 경쟁력이 없음을 알고 식품가공업을 발전시켜 수출농업으로 경쟁력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것은 모두 고급 농업인력이 충분히 공급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정말로 한국 농업과 농촌을 살리고 싶다면 생산비 위주의 경쟁력 비교보다는, 농업을 살릴 수 있는 고급인력 양성을 통한 선진 기술개발로 승부를 거는 것이 장기적인 전략이 될 것이다. 우리 옛말에 10년을 보면 나무를 키우고 100년을 보면 사람을 키우라는 말이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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