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한국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주장] 여수보호소에서 보낸 이주노동자 샤말 타파의 공개서한

등록 2004.03.08 17:51수정 2004.03.09 16:04
0
원고료로 응원
명동성당에서 이주노동자 천막농성을 이끌던 단장 샤말 타파씨가 8일 정병진 시민기자를 통해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전해왔다. 94년 한국에 온 샤말 타파씨는 지난 15일 연행된 뒤 여수 관리보호소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강제출국을 당할 경우 정치적 상황이 위험한 고국에서 희생될 지도 모른다고 한다...편집자 주

a 강제추방저지·미등록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 및 재외동포법 개정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지난해 11월 29일 저녁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달리는 지하철에 몸을 던진 다르카씨 등 고인이 된 동료들의 명복을 빌며 한국정부의 대안 제시를 촉구하고 있다.

강제추방저지·미등록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 및 재외동포법 개정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지난해 11월 29일 저녁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달리는 지하철에 몸을 던진 다르카씨 등 고인이 된 동료들의 명복을 빌며 한국정부의 대안 제시를 촉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노무현 대통령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생활 10년째 하고 있는 네팔인 이주노동자 샤말 타파입니다.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가다니, 저도 놀랐습니다. 처음 한국 올 때 이렇게 오래 있을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네팔에서 올 때 3년만 한국에서 고생하고 집에 돌아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현실과 꿈은 똑같이 되지 않습니다.

가족에 대해 또 저의 미래에 대해 아름다운 꿈을 안고 1994년 5월에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왔습니다. 어려운 경제, 실업자, 가난의 어려움 갖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한국에 가는 게 꿈이었습니다. 드디어 제가 꿈에 그리던 나라 대한민국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때 정말 너무 너무나 좋아하고 행복해 하였습니다. 이제 열심히 일하고, 돈 많이 벌어서 빨리 집에 돌아가 부모님과 행복하게 살아야되겠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저의 꿈은 얼마 안되어 깨졌습니다.

왜냐면 한국에 있는 연수생 관리회사가, 우리가 받아야하는 임금에서(전체임금 500$ =400,000₩) 210$ 깎이고 나머지 월급만 주셨습니다. 네팔에서 했던 계약을 우리와 물어 보지도 않고 자기들 맘대로 바꿨습니다. 그때는 한국말도 모르고, 아무것도 몰라서 참았습니다. 이렇게 7개월을 참았습니다.

이 때 집에 전화했을 때 아버지가 돈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관리회사에 이번 달 월급을 모두를 주시라고 부탁했습니다. "월급에서 한달 씩 마이너스하는 210$ 다음달 월급에서 같이 해주세요"라고 매번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안 된다는 게 관리회사의 답이었습니다. 정말 힘들게 주간, 야간 열심히 일하면서, 제가 받아야하는 저의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어려움 있을 때 상담해준다고 말하는 관리회사가 더 탄압하는 겁니다.

"연수생 생활은 노예... 위험해도 불법체류자"


이렇게 계속 있다가는 제가 돈도 벌지 못하고, 누구의 손가락 안에 있어서 노예처럼 있게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위험하더라도 자유롭게 일하고, 임금도 연수생보다 많이 받고, 편하게 살 수 있는 불법체류자를 선택했습니다. 한국에 온지 7개월 후부터 지금까지 불법체류자가 되면서 생활해 왔습니다.

산업 연수생 제도에서 받았던 인권침해, 탄압에서 벗어나고 불법체류자가 되었지만 불법체류자로 생활하는 것도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제대로 임금도 주지 않고, 일하다가 다쳐도 산재가 안되고 강제로 일 시키기고 여러 차별과 탄압을 받아야하고….


연수생제도에 따라 합법적으로 일하는 것도 어렵고 불법체류자가 되면서 일해도 너무나 어렵게 살 수 밖에 없는 우리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입니다. 저의 10년도 이렇게 흘러갔습니다.

98년 때 IMF 터져서 모두가 어려워지고, 1999년 3월에 신문 배달을 하다가 교통사고 나서 아주 많이 다쳤지만 돈이 없어서 수술하지 못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오랜 시간 일하지도 못했습니다. 한국에서 10년의 긴 시간 보냈지만 결국 어려움과 고통 밖에 없었습니다.

저와 같은 이주노동자들의 가슴아픈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하다가 다쳐서 죽어가고, 기계에 손가락, 다리 잘려서 장애인 되고, 여성이주 노동자들은 성폭행 당하고, 그런데 어디 가서 우리가 신고할 데가 없습니다. 보상과 보호받을 데가 없습니다.

a 지난해 12월 18일 오후 서울 종로타워앞에서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기념 및 사망한 이주노동자와 중국동포 추모제가 열렸다.

지난해 12월 18일 오후 서울 종로타워앞에서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기념 및 사망한 이주노동자와 중국동포 추모제가 열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한국생활 10년에 고통만 남아... 산업재해·성폭력에도 신고 못해

이 모든 것을 제가 설명 안 해도 대통령께서 잘 알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선거에 나오셨을 때 우리들의 인권과 노동보장을 할 수 있는 좋은 제도를 만들어서 합법화하겠다고 약속하셨죠. 그 말은 정말 우리를 기쁘게 하였고 많은 희망을 주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불법체류자라는 딱지에서 벗어나서 당당하게 일할 수 있구나"라는 기대감도 가졌습니다.

물론 2003년 7월 31일 국회에서 새로운 제도인 고용허가제가 통과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제도에도 산업연수생 제도처럼 '사업장 이동 자유 불가'는 여전합니다.

또한 3년 기간 있어도 매년 재계약 해야되고, 게다가 이 제도는 현재 한국에 있는 3년 미만자만 가능한 것입니다. 나머지 이주노동자(4년 이상자)들은 2003년 11월 15일까지 한국에서 떠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노동자라고 인정하면서도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고 또 1년씩 재계약 해야한다면 우리 이주노동자들은 다시 인권침해와 노동탄압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2003년 9월 15일부터 자진 신고를 받으면서 합법화 돼있는 3년 미만자들은 지금, 벌써 많은 어려움과 사업장 이동 자유불가 때문에 불법체류자가 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용허가제도에 이러한 문제가 있어서 불법체류자는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새 제도 통과되었지만 남은 것은 강제추방

대통령님, 우리 4년 이상 된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서 오랫동안 많이 힘들게 살면서 열심히 일해왔습니다. 많은 피해 받고, 일하다가 다치면서 장애인 되고, 형제, 친구들 일하다가 희생자가 되고, 죽어갔습니다. 무지 힘들어도 한국경제에 도움을 주면서 열심히 피땀을 흘렸습니다. 아마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대통령께서 하셨던 약속을 정말 믿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제도가 국회에서 통과되었지만 우리들은 한국에서 나가야하고, 강제로 추방시키고, 정말 억울합니다.

이제야 노동자라고 인정하는 세상이 올 때 우리들이 나가야한다면,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일했던 우리의 모습과 마음이 한국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어떠한 제도라도 먼저 우리가 주인공이 되어야 되는 거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사업주들도 우리가 말 잘하고 기술 있고 또 한국사회에 대해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생산, 경제, 또 사회에 대해 더 도움되는 노동자들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또 우리들의 숫자가 10만 명이 넘었습니다. 여기에는 우리만 아니라 우리들의 가족 생존권까지 걸려 있습니다. 그런데 법무부는 왠지 이 문제를 단속 추방하면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저희들은 이것은 해결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난 2003년 11월 15일 명동성당에서 80명 이주노동자들과 20명 한국 실무자들이 함께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우리들의 요구는 "단속추방저지, 이주노동자 전면합법화, 사업장 이동 자유"였습니다. 농성이 시작된 지 벌써 3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결과가 없습니다.

a 지난해 12월 서울 종로타워앞에서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기념 및 사망한 이주노동자와 중국동포 추모제에 참여한 중국동포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지난해 12월 서울 종로타워앞에서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기념 및 사망한 이주노동자와 중국동포 추모제에 참여한 중국동포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자진출국 연장하겠다며 농성단장 강제연행

잘하는 거 많이 없지만 제가 우리 농성단의 이주노동자 대표를 맡아왔습니다. 그런데 지난 2004년 2월 15일 서울 대학로(혜화동)에서 연행되었습니다. 갑자기 여기 저기서 3, 4명이 뛰어 오면서 저를 잡아 승용차에 집어넣었습니다. 누군지, 어디서 왔는지? 누구도 신분을 밝히지 않고 갑자기 이렇게 하는가, "납치"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2004년 1월 19일 법무부에서 2월말까지 자진 출국 연장을 하면서 단속 않겠다고 발표도 했습니다. 이러면서 저를 연행하는 것은 이해되지 않습니다. 저희들이 하고 있는 투쟁은, 그 동안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이제는 우리 이주노동자들을 차별과 탄압에서 벗겨주고, 노동자로 인정하면서 우리들의 인권과 노동보장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먼저 한국에 있는 모든 이주 노동자들의 합법화입니다. 우리 이주노동자들이 받고 있는 인권침해와 노동탄압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들이 이러한 활동을 했다고 연행하는 것은 또 다른 인권침해가 아닐까라는 생각입니다.

제가 저의 석방을 요구하면서 지난 2004년 2월 17일부터 단식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수 보호소에 21일째(3월 8일 현재) 단식 투쟁하고 있습니다. 또 저의 나라에 내전(마오군과 정부군)이 있어서 만약 이렇게 강제추방 되면 제 자신도 마오군의 희생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습니다. 왜냐면 해외에서 왔다는 사람을 많이 힘들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제가 여기 여수 보호소에서 투쟁하고 있으며, 화성 보호소에서도 깨비(네팔인), 헉(방글라데시)과 많은 친구들이 함께 투쟁하고 있습니다.

a 지난해 11월 오마이TV '김C의 시사콘서트' 프로그램에 출연한 샤말씨가 이주노동자들의 고용실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오마이TV '김C의 시사콘서트' 프로그램에 출연한 샤말씨가 이주노동자들의 고용실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대통령께서 저희 모든 이주노동자들의 문제를 다시 한 번 직접 효율적인 관심 가지면서 고용허가제 제도를 고쳐주시고 우리 모두를 합법화 해주신다면 40만 명 이주노동자은 새로운 희망을 갖고 살면서 한국경제를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노동자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들의 생존권을 살려줄 수 있습니다. 저도 앞으로 한국 사회에 있으면서 더 좋은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이주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시민들과 함께 따뜻한 사랑을 나누면서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대통령님께 많은 부탁과 기대를 합니다. 저의 편지에 많이 잘못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디에 잘못이 있으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04년 3월 8일
민주노총 평등노조 이주노동자지부 지부장 샤말 타파 드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AD

AD

AD

인기기사

  1. 1 "난리도 아닙니다" 농민들이 올해 벼 빨리 베는 이유 "난리도 아닙니다" 농민들이 올해 벼 빨리 베는 이유
  2. 2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3. 3 "자기들 돈이라면 매년 수억 원 강물에 처박았을까" "자기들 돈이라면 매년 수억 원 강물에 처박았을까"
  4. 4 "X은 저거가 싸고 거제 보고 치우라?" 쓰레기 천지 앞 주민들 울분 "X은 저거가 싸고 거제 보고 치우라?" 쓰레기 천지 앞 주민들 울분
  5. 5 지금도 소름... 설악산에 밤새 머문 그가 목격한 것 지금도 소름... 설악산에 밤새 머문 그가 목격한 것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