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의 성공', 드디어 충청남도에 도착했다

[국토대장정 ⑩] 9월 3일, 30km를 걷다

등록 2012.09.04 10:52수정 2012.09.04 10:52
0
원고료로 응원
a

드디어 충남에 도착했다... 절반은 성공했다. ⓒ 정원규


드디어 충청남도에 도착했다. 전북 익산시를 넘어서니 논산시 연무읍이다. 전라남도 해남 땅끝 마을에서 출발해 전라북도를 거쳐 충청남도까지 왔다. 전라북도와 충청남도의 경계지에서 탐스러운 딸기가 그려진 논산시 표지판을 보니 괜시리 웃음이 나온다.

국토대장정 10일차, 522km 구간의 절반쯤을 걸었다는 안도감 때문일 것이다. 며칠 내로 충남 지역을 지날 것이고, 그러면 경기도가 바로 코앞이 아닌가.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더니 걷고 또 걸었더니 벌써 반을 훌쩍 지나게 되었다.

논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0년 1월 말, 2박 3일간 홀로 강경에서 논산까지 걸었던 적이 있다. 한 겨울의 추위가 채 누그러지지 않은 음산한 날이었다. 기차를 타고 강경역에서 내렸고, 강경을 걸어서 둘러본 뒤, 1번 국도를 따라 연무읍을 거쳐 논산까지 걸었다. 홀로 걷는 여행이라 서두를 게 없어 길을 에둘러 굳이 견훤의 무덤을 찾았고, 계백장군의 무덤에도 들러 인생의 무상함을 곱씹던 기억이 난다.

오늘(9월 3일)은 국토대장정 10일차. 전북 익산의 경계를 넘어 충남 논산에 들어서니 일정의 절반을 소화했다는 안도감이 느껴진다. 아직 걸어야 할 날이 10일이 남았지만, 지금으로서는 절반의 성공은 거둔 셈이기 때문이다. 채 시장도 그런 생각을 했는지, 지원차량 옆에서 아주 환한 표정으로 서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a

국토대장정 10일차, 끝냈습니다. ⓒ 정원규


지도를 들여다보면서 참 많이 걸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가끔 게으름도 피우고, 일부 구간은 지원차량을 타고 건너뛰기도 했지만 채인석 화성시장은 단 한 걸음도 건너뛰지 않고 고집스럽게 걸었다. 걷는 자세를 한 번도 흐트러뜨리지 않고, 전혀 힘들지 않다는 표정으로.

하지만 다 걷고난 뒤에 어깨에 얼음찜질을 하는 그를 보고 있으면 힘들었는데 책임감 때문에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욕심 때문에 참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젯밤에 머물렀던 고산자연휴양림은 조용하고 아늑했으나, 예상대로 휴양림 자체는 조금도 즐기지 못한 채 야반도주하는 것처럼 서둘러 빠져나와야 했다. 그것도 오전 3시 40분에. 출발예정시간이 5시일 것이라고 예상, 알람을 오전 4시 10분에 맞췄다. 한데 오전 3시 20분에 전화벨이 울렸다. 김진만 주사였다. 일어나세요, 출발합니다. 아, 그건 지옥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출발시간이 5시가 아니었나? 나중에 알고 보니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4시 반에 출발한다는 거였다. 태풍 볼라벤 때문에 지체된 하루 일정을 소화하려면 출발시간이 빨라지거나, 마치는 시간이 늦어지거나 해야 한다. 오늘 오후에 채 시장은 논산시장을 면담하고, 청주에 가서 서명운동을 하고 있는 화성시민들을 만나야하기 때문에 오후에는 걸을 시간이 없다. 새벽에 조금이라도 더 많이 걸어두어야 한다. 출발시간을 당길 수밖에.

고산자연휴양림에서 전주월드컵경기장까지는 30분 이상이 걸리는 거리. 그러니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몰랐던 것이다. 후다닥 일어나서 재빨리 짐을 꾸렸다. 그리고 서둘러 나갔다. 정말 어둡다. 휴양림은 숲으로 둘러싸였으니 어둠이 그만큼 깊을 수밖에 없다. 에고, 이게 무슨 고생이란 말인가. 제발 내게 새벽잠을 허하라.

서둘러 도착한 전주월드컵경기장 앞도 어둠이 깊었다. 낮이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해는 늦게 뜨고, 일찍 지고 있었다. 일교차가 점점 심해지고, 바람이 품은 서늘한 기운도 점점 차가워진다. 반소매 셔츠를 입었더니 으스스한 한기마저 느껴진다.

오늘은 전주월드컵경기장부터 논산 연무대 국군훈련소 앞까지 30km를 걸을 예정이다. 마치는 시간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오전 11시 즈음.

'도 경계' 넘은 발걸음 가벼워져... "어려운 걸음하시는데 서명해야죠"

a

가을은 수확의 계절. 채 시장 역시 국토대장정을 통해서 '수확'을 거두고자 하는 중이다. ⓒ 유혜준


채 시장의 걸음이 눈에 띄게 늦춰졌다. 국토대장정 10일차라 지친 탓도 있지만, 자꾸 빠르게 걷다보면 속도에 빠져들어 일종의 홀릭 상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페이스를 조절하는 것이다. 채 시장은 천안 지역부터는 시속 4km로 걷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어둠이 조금씩 걷히자 자욱하게 낀 안개가 드러났다. 옅은 어둠과 어우러진 안개는 세상을 온통 흐릿하게 만들고 있었다. 몽환적인 분위기마저 느껴진다. 2차선 도로 옆은 논이었고, 밭이었다. 키 작은 대추나무는 다닥다닥 열린 대추 무게 때문에 가지를 축 늘어뜨렸다. 길 가에 색깔이 제대로 든 붉은 고추들이 잔뜩 널려 있었다. 가을이 거리를, 들판을 물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오전 10시, 채 시장 일행은 전북 익산시를 넘어서 충남 논산시에 도착했다. 점점 더 서울에 가까워지고 있다. 도 경계를 넘는 채 시장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대장정 10일차이지만 채 시장의 걸음은 짱짱했다. 여전히 기운차게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그건 국토대장정 첫날부터 대장정 기를 들고 앞장 서서 걷는 박승권 회장도 마찬가지였다.

오전 11시 10분, 연무대 국군훈련소 앞에 도착했다. 안개가 걷힌 뒤에 본격적인 땡볕이 시작돼 후텁지근해졌다. 소나기라도 한 줄금 내려주면 시원할텐데,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걷기를 마친 채 시장과 일행의 옷은 땀으로 푹 젖어 있었고, 얼굴에는 땀방울이 가득 맺혔다. 그래도 오늘 걸어야 하는 30km를 무사히 끝냈다는 성취감에 다들 얼굴 표정이 밝았다.

a

황명선 논산시장과 채인석 화성시장 ⓒ 정원규


오늘 채 시장이 만날 사람은 황명선 논산시장. 황 시장은 시청현관까지 직접 나와서 채 시장을 맞이했다. 논산시청 계단을 채 시장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걸어 올라갔다. 막 30km를 걸은 참이니 다리 근육들이 아우성을 치고 있을 터.

시장실에서 채 시장은 국토대장정을 나서게 된 동기와 현재 상황을 설명했고, 황 시장은 "이렇게 어려움 걸음을 하시는데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드리겠다"며 흔쾌히 서명록에 서명을 했다.

자연사박물관을 유치하고자 희망하는 자치단체는 많다. 때문에 그 문제와 관련,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몇몇 자치단체장은 서명에 난색을 표명하거나 거부하기도 했는데 황 시장은 망설이지 않고 시원스럽게 서명했다. 자치단체장이 힘들여 걷는 것에 의미를 실어준 것이다. 채 시장이 쉽지 않은 일을 시작한 것만은 확실하다.

채 시장의 다음 행선지는 청주 고속버스터미널. 논산에서 청주까지 거리는 90km 남짓. 그곳에서 화성시 봉담읍과 정남면 주민들이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채 시장은 그들을 만나 국토대장정 현황과 향후 전망을 설명하기 위해 그곳으로 바쁘게 달려간 것이다.

a

물집이 아물면 새로운 물집이 생기고... ⓒ 정원규


버스터미널 앞에서 서명부스를 운영하며 청주시민들을 상대로 서명을 받던 화성시 주민들이 채 시장이 나타나자 반가운 표정으로 그를 에워쌌다. 그들을 향해 매향리 사격장 생태공원 문제를 설명하는 채 시장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

채 시장은 "매향리 평화공원 국비지원 확대는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 박지원 민주통합당 대표도 당 차원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며 "국토대장정이 힘들고 어렵지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신 때문에 열심히 걷고 있다"고 말했다.

채 시장은 화성호 해수유통도 마찬가지로 가능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새만금의 사례를 봐도 화성시의 주장이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채 시장의 설명이다. 하지만 자연사박물관 유치는 현재로서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채 시장은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자연사박물관 건립 예정지는 세종시가 가장 유력한 상황이고 큰 변화가 없는 한 조만간 세종시로 발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채 시장은 "공모와 같은 공정한 절차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위배된다"며 "만일 자연사박물관 유치가 실패로 돌아갈 경우 정부종합청사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말을 마치자 박수소리가 쏟아졌다.

a

화성시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 유혜준


채 시장의 국토대장정은 이제 절반이 끝난 상태다. 그래도 일정은 아직 10일이 남아있다. 채 시장은 지금까지 걸은 것만큼 더 걸어야 한다. 그 길, 쉽지 않은 고난의 길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더라도 채 시장은 천재지변이 없는 한, 522km를 다 걸어낼 것이다.

이런 기세로 간다면 자연사박물관 유치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무산될 경우, 그의 주장대로 정부종합청사 앞에 천막을 치고 1인 시위를 할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 채 시장은 한다고 마음을 먹으면 한다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걸은 길] 진주월드컵경기장 - 구덕리 - 갈전마을 - 익산 보석박물관 - 여산면사무소 - 연무대. 총 30km.
#채인석 #국토대장정 #자연사박물관 #논산 #매향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일본 언론의 충격적 보도...윤 대통령님, 설마 이거 사실입니까
  2. 2 '뉴욕타임스'가 소개한 농담, 김건희 여사 뼈 때리다
  3. 3 "그날, '윤석열 만세' 보냈고 바로 답장이 왔다, '이정섭 만세'"
  4. 4 버려진 옷 먹는 소의 모습... 더 불편하고 충격적인 사실
  5. 5 "'맘껏 풍자하라, 당신들 권리'... 윤 대통령 SNL 200만 영상은 뭔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