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원님, 522km 걷는 '개고생' 왜 택했나

[국토대장정 ①] 8월 24일, 첫날 25km를 걷다

등록 2012.08.24 19:14수정 2012.08.24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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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시에서 발견된 화석이 발견된 공룡의 이름은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 한국 화성에서 처음 발견되어 코리아와 화성이 이름에 들어갔다.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 캐릭터를 붙인 차량 옆에 선 채인석 화성시장. ⓒ 유혜준


어제(23일)부터 끈질기게 내리던 비는 아침에도 그치지 않았다. 국토대장정 첫발을 내딛는 순간, 바람을 동반한 비가 세차게 쏟아졌다. 잿빛으로 진하게 흐린 하늘에는 비를 머금은 구름이 잔뜩 진을 치고 있어, 하루 종일 비를 퍼붓겠다는 작정을 단단히 한 것처럼 보였다. 배낭에 방수커버를 씌우고 비옷을 꺼내 입었다. 그리고 신발끈을 조였다. 드디어 출발이다.

오늘부터 해남 땅끝 마을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522km의 거리를 21일 동안 걷는다. 심장이 세차게 고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한 번쯤은 작정을 하고 국토대장정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기회가 없었다. 물론 찔끔찔끔 우리나라 이곳저곳을 걷긴 했다. 동해안을 물치항에서 삼척 아래까지 걷기도 했고, 섬을 떠돌아다니기도 했지만 이렇게 작정을 하고 국토대장정을 나서기는 처음이다. 당연히 설렐 수밖에.

이번 국토대장정은 내 몫은 아니다. 이번 국토대장정의 주인공은 채인석 화성시장이다. "원님 덕에 나팔 분다"는 옛말이 있는데, 그 말을 떠올리면서 옛말 그른 것 없다더니 맞는다. 하고 싶어 했던 국토대장정을 정말로 원님(채인석 화성시장) 덕분에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채 시장은 지역의 현안을 널리 알리고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국토대장정을 계획했다. 대체 무슨 현안이기에 기초자치단체장이 522km를 빡세게 걷는 '개고생'을 선택했을까? 지역 현안은 지역에서 해결해야 맞는 게 아닐까? 정말로 기초자치단체장이 지역구를 비우고 국토대장정을 할 수 있을까?

궁금한 게 많았다. 해서 같이 걸으면서 동행 취재를 하기로 했다. 걷는 건, 빨리 걷지는 못해도 오래 걷는 건 자신이 있으니, 나만이 해볼 수 있는 일이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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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마을과 마을을 지나면서 이어진다. 이 길을 걸었다. ⓒ 유혜준


채 시장은 국토대장정을 앞두고 빡세게 훈련을 했다고 한다. 새벽 5시에 일어나 걷거나 산에 오르면서 체력을 다졌고, 일요일에는 집에서 화성시청까지 걸어서 출·퇴근을 해보기도 했단다. 채 시장의 집에서 화성시청까지의 거리는 얼추 30km. 속보로 걸으면 다섯 시간 안에 다 걸을 수 있다는 게 채 시장의 주장.

실제로 같이 걸어보니 채 시장의 주장은 '뻥'이 아니었다. 발바닥에 모터를 단 줄 알았다. 달리듯이 걷는 채 시장의 뒷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면서 나는 뒤로 자꾸만 처졌던 것이다. 이러다가 같이 걷는 게 아니라 뒷모습만 실컷 보다가 돌아가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가 생길 정도였다.


채인석 화성시장이 국토대장정을 결심한 이유는?

채인석 화성시장이 국토대장정을 결심한 것은 지역 현안을 해결하기에는 기초자치단체장의 힘이 너무 미미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채 시장이 해결하고자 하는 현안은 '중앙정부'와 연결되어 있는 사안이고, 중앙정부에서 힘을 실어주어야 하는 것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채 시장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채 시장이 해결하고자 하는 지역현안이 무엇일까?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채 시장은 3가지 지역현안 문제를 거론했다. 첫 번째는 화성시에 국립자연사박물관을 유치하는 것이다. 현재 국립자연사박물관 후보지는 세종시가 가장 유력하다.

"화성시에서 한반도 최초의 뿔공룡 화석인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가 발견되었다. 화성시에 있는 480만 평의 공룡알 화석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화성은 수도권에서 접근성이 아주 좋기 때문에 자연사박물관의 최적지라고 생각한다. 한데 정부는 정치적인 논리를 앞세워 세종시로 결정하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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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맞으며 걷고 있는 채인석 화성시장 ⓒ 화성시


두 번째 지역현안은 매향리 미군 사격장 자리에 생태공원을 조성해달라는 것이다. 국비지원 요청이다. 정부에서 국비를 지원해서 매향리에 평화 공원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채 시장의 주장이다. 이 문제와 관련, 채 시장은 "반환된 용산 미군기지는 전액 국비를 지원하면서 50여 년 동안 사용되다 반환된 매향리 생태공원 조성에 전액 시비를 대라고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세 번째 지역현안은 바다를 막아 만든 화성호의 담수화를 중단해달라는 것이다. 바닷물이 가득 차 있는 화성호를 담수화 하면 제2의 시화호가 될 것이라는 게 채 시장과 화성시의 주장이다. 때문에 채 시장은 환경오염을 방지하고 수질 악화를 막기 위해 바닷물이 자유롭게 드나들게 놔둬야 한다고 강조한다.

채 시장은 화성시만의 이익을 얻기 위해 국토대장정을 하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전국의 240여 개의 기초자치단체의 현실이 화성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고, 때문에 화성시의 현안을 알리고 동참을 호소하기 위해 길 위로 직접 나서기로 했다는 게 채 시장의 설명이다.

시장이 21일간이나 시를 비우면 시정은 누가 책임지나? 이런 질문들이 당연히 쏟아졌다. 채 시장은 한 번에 세 마리의 토끼를 잡기로 했다. 하루에 평균 28km를 빡세게 걷고 중간에 쉬는 시간을 활용, 인터넷으로 시정을 처리할 예정이다. 그리고 그가 지나는 구간의 기초자치단체장과 도지사 등을 만나 현안을 호소하고 의견을 나눈다는 계획이다.

특히 채 시장은 "이번 국토대장정을 통해서 도시와 농촌, 그리고 어촌까지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는 화성시의 단합을 꾀해 한 마음 한 뜻이 되게 한다는 구상도 더불어 하고 있다"고 밝혔다.

"화성시 위해서, 화성시민 위해서 522km 끝까지 완주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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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으로 아침식사를 하는 채인석 시장 ⓒ 화성시


채 시장의 이런 행보에 일부에서는 "화성시장은 할 일이 없어 한가한 모양"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하지만, 걸어본 사람은 안다. 하루에 평균 28km를 21일 동안 걷는 건 결코 한가하거나 쉬운 일이 아닌 '개고생'이라는 것을.

일종의 이벤트나 퍼포먼스를 하는 것으로도 할 일을 다 했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채 시장은 자신의 진정성을 끄집어내서 보여주기 위해 국토대장정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진심은 통한다는 신념을 줄곳 지켜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화성시를 위해서, 화성시민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면서 끝까지 522km를 완주할 것이다. 그러면 내 진정성을 알아줄 것이라고 믿는다. 좋은 결과를 기대하겠다."

채 시장은 각오를 단단히 다졌고, 오늘 그 첫발을 내디뎠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가운데 땅끝마을에서 '국토대장정 출정식'을 간단하게 치른 뒤, 채 시장은 해남 땅끝 마을을 출발했다. 이번 국토대장정은 채 시장 1인 종주다. 물론 혼자만 걷겠다는 건 아니다.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이들은 막지 않는다. 단, 비용은 본인 부담이다.

국토대장정 출발 전 날인 23일 밤, 채 시장은 땅끝 마을에 도착했고 송지면 송호리 마을회관에서 하룻밤을 잤다. 그리고 새벽 6시 10분, 여명이 조금씩 밝아오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첫 출발에는 10여 명의 화성시민들이 동참했다. 나 역시 꽁무니에 따라붙었다. 아마도 자발적 참여자들 때문에 날마다 걷는 인원은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채 시장은 522km를 온전히 걸을 예정이며, 동행 취재를 하는 나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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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를 한 뒤, 출발하기 전에 몸풀기 체조를 하는 일행. ⓒ 유혜준


77번 국도를 따라 걷는 길은 빗물로 푹 젖어 있었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다 못해 나중에는 폭우로 변했다. 폭우 때문에 도로에 고인 물을 도로를 달리는 차들이 물보라를 만들면서 걷는 이들에게 물벼락을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걷는 걸음은 가벼웠다.

걸은 지 채 한 시간도 되기 전에 신발부터 푹 젖었다. 신발 안에 고인 물 때문에 양말까지 젖었고, 바지 끝자락을 타고 올라온 물기는 종내는 온몸을 푹 젖게 만들었다. 그래도 빗속을 걷는 건 즐거운 일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불타오르는 태양이 온 세상을 다 태워버릴 것처럼 기세를 떨었지만 흔적 없이 사라지고, 하루 종일 세찬 바람을 동반한 비가 내리고 또 내렸다.

오전 7시 30분경, 길 가의 파고라에서 도시락으로 아침식사를 해결한 채 시장의 표정은 밝았다. 채 시장은 길 위로 나설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몇 번이나 거듭해서 강조했다. 꼭 한 번은 국토대장정을 해보고 싶었는데 이번 기회에 소원을 이룰 수 있어서 그렇다면서 채 시장은 소년 같은 웃음을 얼굴에 피워냈다.

발바닥에 모터를 단 것처럼 빠르게 걸음을 옮기는 채 시장을 따라잡다가는 숨이 꼴까닥 넘어 갈 것 같아 일찌감치 뒤로 처졌다. 오랜만에 보는 비 내리는 해남의 풍경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푸른빛을 머금은 벼가 패기 시작하고 있었고, 참깨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길, 길, 길. 거침없이 쏟아지는 빗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걸음을 내딛는 이들의 표정은 즐거워 보였다.

내일은 어떤 길이, 어떤 날씨가 우리를 기다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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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산리 마을회관 어르신과 작별인사를 하는 채인석 화성시장 ⓒ 유혜준


송산리 마을회관에서 점심 역시 도시락으로 때웠다. 송산리 마을회관에는 마을 어르신들이 나와서 채 시장을 반겼다. 어르신들은 힘든 길을 나섰다며 꼭 좋은 결과를 얻으라는 덕담을 채 시장에게 했다. 채 시장은 어르신들께 건강하게 오래 사시라면서 손을 꼭 잡기도 했다.

새벽 6시 10분에 출발한데다가 걸음이 빨라 오늘 걸어야하는 25km 구간을 다 걷고 목적지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 반경. 물에 푹 젖은 발바닥이 부풀어 오르던 참이었다.

지금 채 시장 일행과 내가 도착한 곳은 화산면 마을회관. 오늘 밤도 마을회관에서 숙박을 할 예정이다. 화산면 마을회관은 정말이지 아주 잘 지었다. 내부 시설이 훌륭할 뿐 아니라 공중목욕탕까지 갖췄다. 내부를 둘러보면서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런데 이 마을회관이 앞으로 우리가 숙박할 그 어느 곳보다 시설이 좋은 곳으로 꼽힌단다. 그럼 내일부터는?

채 시장은 마을회관 입구에 앉아 물에 푹 젖은 양말을 쥐어짰다. 물이 주르르 흐른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25km를 무사히 즐겁게 잘 걸었다는 안도감에 마음이 푹 놓인다. 내일은 어떤 길이, 어떤 날씨가 우리를 기다릴까?

[오늘 걸은 길] 해남 땅끝 마을(송지면 송호리) - 안호리 - 백포리 - 송산리 - 화산면 마을회관 총 25km
#채인석 #화성시장 #국토대장정 #자연사박물관 #매향리 사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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