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치 있게 야영장에 텐트 쳤는데... 이게 무슨 냄새지?

[국토대장정 ⑬] 9월 6일, 세종시 금강 자전거길을 걷다

등록 2012.09.07 11:59수정 2012.09.07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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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원규


어제보다 출발시각이 1시간 더 늦춰졌다. 오전 6시 30분 출발이란다. 덕분에 국토대장정 13일 차 아침시간은 지난 12일간에 비해 상당히 여유로워졌다. 그렇다고 아침 기상이 쉬워진 건 아니다. 지난 12일간의 강행군 탓에 쌓인 피로가 기상 시간이 1시간 늦어졌다고 연기처럼 사라져 주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어젯밤 잠자리에 들 때만 해도 1시간을 벌었다며 좋아했는데 막상 아침에 일어나려고 하니 몸이 천근만근인 것처럼 늘어진다. 두어 시간만 더 자면 좋겠다는 생각을 떨치면서 벌떡 일어났다. 어차피 일어날 것이라면 미련은 빨리 떨치는 게 좋다.

국토대장정 13일 차인 오늘(9월 6일)은 세종시 금남면 용포리 마을회관에서 출발해 금강 자전거 길을 거쳐 홍익대학교 조치원 분교 앞까지 26km를 걸을 예정이다.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더니 옛말 그른 것 없다. "37km를 하루에 걸었다고 26km쯤이야 산책 수준이지"라는 말이 들려온 것이다. 가뿐하게 걸을 수 있어. 완주 3인방 가운데 한 사람인 박승권 회장의 말이다.

이렇게 말하는 박 회장의 발 역시 채인석 화성시장 발 못지않게 상처투성이다. 박 회장은 물집을 방지하기 위해 발가락 양말을 준비해왔는데, 안타깝게도 물집은 발가락이 아닌 발뒤꿈치로 몰렸다. 진물이 질질 흐르는 발을 보면서 아프지 않느냐고 물으면 박 회장은 그냥 씨익 웃는다. 그리고 덧붙인다.

"사람인데 어찌 안 아프겠어요. 참는 거지."

세종시 금남면 용포리에서 금강은 그리 멀지 않다. 발돋움을 하면 보일 정도의 거리라고나 할까. 금강 주변에는 아파트 모델하우스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아파트 모델하우스 뒤로 보이는 금강에서는 물안개가 끊임없이 피어오르면서 도시를 뿌옇게 감싸 안고 있었다.

세종시를 돌아다니면서 가장 많이 본 것은 아마도 건설현장의 타워 크레인일 것이다. 새롭게 세워지는 새 도시이다 보니 여기저기 건설·건축현장이 널려있기 때문이다. 도시 전체가 아직은 건설 중이라서 그런지 금강에서 스멀거리면서 올라오는 물안개는 마치 공장지대의 스모그처럼 보인다.


하늘거리는 꽃들... 어떻게 때를 알고 피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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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어야 잘 걷는다. 도시락으로 아침식사를 하는 채인석 화성시장 ⓒ 정원규


날이 밝은 뒤에 하는 출발체조는 오늘이 처음이다. 오전 6시 30분에 시작된 준비체조는 다른 때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무지근하게 내려앉은 온몸을 추슬러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 준비체조에 참여한 사람은 10명. 출발인원은 금강변에서 갑자기 30여 명으로 늘어났다.

화성시 농민인 '화성시 햇살드리 생산자 협의회' 회원들이 예고 없이 채 시장을 응원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이들은 잠시라도 채 시장과 함께 걷고 싶다면서 대열에 합류했다. '햇살드리'는 화성시 농산물의 대표 브랜드다.

용포리를 출발한 채 시장 일행은 30분쯤 뒤 금강 자전거길 입구에 도착했다. 금강을 따라 길게 이어진 자전거길은 걷기 좋은 길이었다. 걷다가 돌아보니 굽이쳐 흐르는 금강이 보인다. 흙빛을 띤 강물이 거침없이 흘러간다.

이 자전거길을 12km를 걸은 뒤 조치원으로 빠져나갈 예정이다. 길은 강이 피워 올린 물안개 때문에 끝이 보이지 않았다.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자전거길이다. 이따금 안개를 뚫고 자전거를 탄 사람이 불쑥 나타나곤 한다.

맨 앞에 국토대장정 깃발을 든 박승권 회장이 섰고, 그 곁에 채 시장이 섰다. 걷는 속도는 이제 시속 5km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자전거길을 사이에 두고 한쪽에는 노란 금국이 지천으로 피어났다. 사이사이에 코스모스가 몇 송이가 하늘거린다. 계절에 맞춰 피어나는 꽃들을 보노라면 어떻게 때를 아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오른쪽 무릎이 자꾸 쑤신다. 며칠 전 넘어진 후유증이 쉽게 사라지지 않고 걸음을 더디게 하고 있다. 결국 얼마 걷지 못하고 걷기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나도 이런데 12일 동안 339km를 온전하게 걸어낸 채 시장은 어떨까? 그는 하루 평균 28km를 걸었다. 걷기만 했나, 이런저런 빽빽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그래도 새벽이면 출발시간을 한 번도 어기지 않고 제시간에 나타난다. 그것도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아침식사는 도시락이었다. 금강변에 앉아 도시락을 먹는 사이에 물안개가 흔적 없이 사라지고, 해가 높이 떠올랐다. 본격적인 땡볕이 시작될 참이다. 오늘도 걷는 일정은 낮 12시를 전후해서 끝낼 예정이다.

반창고가 덕지덕지... 그래도 활짝 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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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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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석 시장과 박승권 회장의 발이 가장 불쌍하다. ⓒ 정원규


금강 자전거길을 벗어나기 전, 잠시 길 위에 멈춰 쉬는 시간을 가졌다. 다들 걷느라 발에 땀이 나고 발바닥에서 열기가 푹푹 뿜어져 나온다. 신발과 양말을 벗은 발을 서로 비교하면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반창고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박승권 회장의 발이 가장 특색이 넘친다.

"기념사진 하나 남기자!"

누군가 소리쳤다. 정원규씨와 박성진씨가 비디오카메라와 카메라를 들고 달려와 길 위에 엎드렸다. 사진을 찍는 중년을 훌쩍 넘긴 남정네들의 표정이 개구쟁이처럼 천진난만하게 변하면서 웃음소리가 맑게 울려 퍼졌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런 경험을 해보겠나, 하는 표정들이다.

낮 12시 10분, 오늘의 목적지인 홍익대학교 조치원 분교 앞에 도착했다. 평소보다 늦게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끝나는 시간은 그다지 늦어지지 않았다.

걷기를 마친 채 시장은 힘든 표정으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13일 차를 무사히 잘 마쳤다는 안도감이 그의 얼굴에 감돌았다. 이제 남은 일정을 7일. 점점 서울에 가까워져 가고 있는 만큼 그의 입에서 힘들다는 말이 자주 나오고 있다.

걷는 일정은 끝났지만 채 시장의 일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후 3시, 행정복합도시건설청 앞에서 '자연사박물관 유치 퍼포먼스'가 진행될 예정이었던 것. 화성시의 자연사박물관 유치 의지를 확실하게 홍보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뜻밖의 변수가 생겼다.

행정복합도시건설청 앞은 건설노조에서 점거, 시위가 한창이었던 것. 전투복장을 갖춘 전투경찰들이 몇 겹으로 늘어서 있고, 입구는 막혀 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은 이런 때 하는 것인가 보다.

화성시에 퍼지는 '국토대장정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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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자연사박물관 유치를 위한 퍼포먼스에서 발언을 하고 있는 채인석 화성시장 ⓒ 정원규


퍼포먼스 장소가 급히 세종시청으로 변경됐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세종시청이 퍼포먼스 장소로 적합하네, 하지 않네 하는 의견이 여기저기서 오갔지만, 퍼포먼스는 예정대로 세종시청 앞에서 진행됐다.

이 자리에는 국토대장정을 하면서 화성시의 입장을 명쾌하게 밝히고 있는 채인석 화성시장과 하만용 화성시의장, 김홍성 화성시의원을 비롯해 화성시민 그리고 화성시 관계자 150여 명이 참석했다.

채 시장은 퍼포먼스를 세종시청 앞에서 진행하게 된 것이 마음에 걸린 듯 "세종시민 여러분 죄송합니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채 시장은 "해남 땅끝 마을에서부터 365km를 걸어서 이 곳 세종시에 도착했다"며 "자연사박물관 최적지는 공룡알과 공룡화석이 발견돼 자연사박물관에 전시할 수 있는 자료가 풍부한 화성시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채 시장은 "공정하고 합리적인 절차를 통해 자연사 박물관 유치가 결정돼야 한다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며 "간절히 원하면 이뤄진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이토록 간절히 원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사 박물관 유치, 매향리 평화공원 국비 지원, 화성호 해수유통은 꼭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고 소리 높여 외쳤다.

채 시장은 인사말을 하면서 감정이 격해진 듯 잠시 울먹이기도 했다.

채 시장과 함께 대장정에 참여해 함께 걸었던 화성시 관계자는 "시장님이 국토대장정을 하면서 고생하는 모습을 직접 지켜보면서 진정성을 느끼게 됐다"며 "발언을 하면서 울먹일 때 가슴이 울컥하는 감동이 왔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번 국토대장정을 통해서 채 시장을 이해하게 됐다"면서 "꼭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채 시장을 응원했다. 채 시장의 국토대장정 바이러스가 가깝게는 화성시청 공무원들에게, 멀게는 면적이 서울시의 1.5배가 넘는 화성시 전체에 퍼져 나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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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 치기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네. 걷는 게 더 쉬워... ⓒ 정원규


오늘 밤, 채 시장은 독립기념관에 있는 야영장에 텐트를 쳤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조치원의 어느 마을회관에 묵어야 한다. 하지만 숙박을 거절당했다고 누군가 귀띔했다. 이유는 묻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세종시와 자연사박물관을 놓고 경쟁을 하고 있으니, 아무래도 예민할 수밖에 없겠지.

해서 급하게 야영장을 물색, 숙박 장소로 정했다고 김근범 총무담당이 알려준다. 넓디넓은 야영장은 텐트를 치기에는 아주 좋은 것 같았는데 이런, 바람의 방향이 바뀌자 인근에서 돼지를 치는 농장이 있는지 고약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풀풀 심하게 날려 온다.

텐트를 치는 채 시장의 표정은 밝았다. 하루가 무사히 끝났기 때문이리라. 내일 일은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걱정해도 된다. 이 밤은 편안하게 잠을 이루고 싶다는 채 시장. 그는 내일도 26km를 걸어야 한다. 그에게는 걸어야 할 거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게 이 밤의 가장 큰 위안일 것이다.
#채인석 #국토대장정 #세종시 #자연사박물관 #야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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