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 유혹싱싱한 해산물은 술을 부른다
이정혁
여러 가지 진단이 끝나고 나면 그 내용을 토대로 본격적인 상담에 들어간다. 종합적인 진단 결과는 중등도 이상의 알코올 의존 및 남용. 흔히 사용하는 알코올중독이라는 용어는 정확한 것이 아니며 '알코올 의존 및 남용'이라는 표현이 적절한 것이라 한다. 가장 먼저 받게 된 질문은 센터에 오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요즘 들어 술 마시면 필름이 자주 끊깁니다. 종전에는 아파트 벤치에서 두 시간 정도 잠들었던 적도 있고, 아침에 일어나면 전날 집에 온 경위가 생각나지 않는 적이 많습니다."의학 용어로 블랙 아웃(black out)이라고 표현되는 필름 끊김 현상, 즉 단기 기억 상실이 내가 단주를 결심한 가장 큰 이유였다. 복잡한 설명은 질색이니 쉽게 설명하자면, 술을 급하게 빨리 마시거나 공복 시에 들이키면 혈중 알코올 농도가 급상승하고, 그에 따라 당황한 뇌가 일시적으로 기억을 저장하지 못하는 것이다. 몸 따로 머리 따로 놀다가 한 순간 비명횡사할 수도 있는 게다.
두 번째 이유는 술 때문에 무언가 마음먹은 일, 예를 들면 아침 운동이나 아침에 일어나서 인터넷 강의 보기와 같은, 규칙적으로 해야 할 일들을 술 마신 다음 날 놓아버리는 것이다. 일단 일어날 수조차 없이 '떡이 된' 육신에다, 가까스로 눈을 떠도 일이 손에 잡힐 리 없는 무력감, 그리고 하루 종일 머릿속에 똬리를 틀고 들어앉은 숙취라는 이름의 뱀 한 마리. 줄넘기도 3일, 뱃살빼기 프로젝트도 4일을 못 넘기고 주저앉고 말았던 것이다.
그 다음으로 여러 질문들과 답변, 설명들이 오고갔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다. 영어 나오면 긴장 타는 분들 계실 텐데, 이놈 하나는 기억해둘 만 하다. 왜냐면 이 녀석이 분비되면 즐겁고 행복한 기분이 드는데, 술을 마시거나, 당첨된 복권을 손에 쥐고 있을 때, <오마이뉴스>의 톱에 내 기사가 올라갈 때 도파민 분비가 급격히 증가된다.
도파민이 과잉분비 되면 환각 증상이 나타날 수 있고, 과잉분비 상태에 점차 길들여지면 평상시 분비되는 도파민의 양에 만족 못하고 우울해지게 된다. 따라서 술을 지속적으로 마시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우울 증세는 이 도파민과 연관이 있다.
이 도파민이라는 녀석이 술을 끊는 데 중요한 이유는, 술을 끊는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술을 대신하여 우리 몸에 도파민 분비를 촉진시킬 만한 무언가 즐겁고 기분 좋아지는 일을 찾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사 선생님의 말씀 중에 이런 표현이 있다.
"그 누구도, 그 어떤 약물도 선생님이 술을 끊게 할 수는 없습니다. 술을 끊겠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술을 끊음으로 인해서 내가 그동안 못했던 일들을 할 수 있다는 행복한 상상을 하십시오"참으로 가슴에 와닿는 말이다. 지난 20년간, 술로 인해 포기하고 좌절해야 했던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돌이켜보면, 슬플 때나 기쁠 때나, 화나거나 기분 좋거나, 날씨에 따라서,벗들과의 반가움에도 무조건 술과 함께했던 삶이었던 것 같다. 술을 빼고는 인생 자체를 논할수 없는 심각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누구도 어떤 약물도 술을 끊게 할 수는 없습니다"상담시간은 나의 술로 얼룩진 과거를 돌이켜보고, '앞으로 남은 삶을 알코올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보낼 것인가'라는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술을 멀리 한다는 것이 그만큼 나와 내 가족을 위한 기쁘고 행복한 일들에 가까워지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 술 말고 내 안을 도파민으로 가득 채울 새로운 무언가를 만나야 할 시간이다.
그리고 마지막 숙제의 시간. 앞으로 한 달 후, 술 끊고 무언가에 빠져 행복해하는 나의 모습, 그리고 1년 후의 모습 그려오기. 행복한 상상만이 알코올과 결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신다. 다음주에는 일주일간의 단주 경험을 통해 약물치료 여부 등에 대해 결정하기로 했다.
끝으로 술과 함께했던 나의 과거 중에서 유일하게 술 때문에 좋은 결과를 얻었던 일화를 하나 소개한다. 프롤로그에서 언뜻 비쳤던, 지금의 아내에게 구애하던 장면이다. 아내는 학교 동아리 후배로 10년간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10년을 후배로만 지내다가 어느날 문득, 여자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선후배 열댓 명이 모여서 부어라 마셔라 하고 있었는데, 아마 3차쯤으로 기억한다.
만취한 상태에서 마음을 표현한다는 것이, 꼬부라진 발음으로 "나 화장실 갔다 올 테니까, 그때까지 나랑 사귈 건지 말 건지 결정해라" 그러고는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잠깐 넘어진 기억이 나고, 다시 돌아와 술잔 앞에 앉았는데 순식간에 주위가 얼어붙으며, 좌중 모두 입이 떡 벌어졌다. 내 이마와 뒷덜미를 타고 흐르는 핏줄기들때문에. "결정했냐?" 그 말을 뱉고 난 뒤의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다음 날 눈 뜨고 보니 아내의 자취방이었고, 곁에 잠들어 있는 아내를 발견한 것으로 우리의 교제는 이미 진행 중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우리를 연결해준 술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는 오늘까지만 하려고 한다. 술 마시는 시간과 비용의 문제는 둘째로 치더라도,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의 줄어듦으로 인해 아내도 나의 단주를 간절히 바라는 중이니까. 술아, 이제 너를 놓아주려고 해. 술과의 행복한 이별의 과정, 나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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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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