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주 후 사라진 과민성 대장 증후군술 마신 다음날, 소위 그부분이 헐때까지 화장실을 들락거리던 기억들이여, 안녕히!
이정혁
뱃살이 빠져나감과 동시에 과민성 대장 또한 평온함을 찾았다. 술 마신 다음날, 오전의 대부분은 변기 위에서 괴로워하지 않았던가? 어디 가서 하소연하기 힘든 배꼽 아래 부위 통증과 다리 후들거림은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심지어 수술로 이어지는 사람도 여럿 지켜봤다. 단주 후 한 달쯤 지나자 잘 먹고 잘 싸는 평범한 사람들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피를 역류 시키던 작열감은 이제 타인의 고통, 즉 나의 즐거움(?)일 뿐이다.
마지막 신체의 변화는 피부의 변화다. 대학 신입생 때부터 40대로 보이던 세파에 찌든 피부가 단주와 동시에 아기 피부로 재생되고 있다. 자려고 불 끄고 누워서 여섯 살 난 큰 아이의 얼굴과 내 얼굴을 번갈아 만져보면, 별반 다르지 않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애들 엄마는 굉장히 싫어 할 말이다, 애한테 저주를 내리는 거냐고). 지난 이십 년간 단 한 번도 느낄 수 없던 매끈한 피부. 단주 결심 후 가장 뿌듯한 부분이다.
이상의 신체적 변화들에 대한 의학적 근거를 요구하지는 말아주시라. 각각의 생리학적 기전(현상)은 설명가능한 것이지만, 논문 몇 개의 분량일 뿐더러 사실 그런 머리 아픈 얘기를 원치는 않으리라. 그냥 내가 느끼는 거고 내가 원해서 시작한 단주니까 본인만 느끼면 되는거다. 이렇게 좋게 변화된 모습을 찾는게 중요한 거니까.
이외에도 만성 피로와의 결별이나 업무 집중도 향상 등 상투적으로 표현되는 결과도 물론 있다. 상투적인 말들은 그만큼 확률이 높다는 말을 의미하니까. 나 또한 그 확률에서 벗어날 이유는 없으니까.
정서적 변화다음으로 단주 후 일어난 정서적 변화. 술을 끊고 가장 좋은 점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시간을 말한다. 애초에 술을 끊으려던 목적이 부족한 시간을 되찾기 위함이었기에, 매우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손에 넣게 된 것이다.
일단 술자리에 참석하지 않으니까 일찍 귀가하게 된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기 전 구연동화까지 서슴지 않는 아빠의 귀감으로 탈바꿈중이다. 슈퍼맨이 돌아오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일찍 자면 새벽녘에 눈이 떠진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건 꼭 새나라의 어린이만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그 시간을 활용해서 기사를 쓰거나 책을 읽는다. 단주 시작하고 3개월간 쓴 기사가 스무개쯤 되고, 2014년 새해 목표를 소설 한 편 쓰기로 잡았을 만큼 새벽과 오전 시간이 자유롭다. 행여 시간이 없어서 책 한 줄 못 읽는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에게 단주는 반드시 권하고 싶은 시간 활용(절약)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