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에 싸인 탐정, 그 탄생의 비밀

[장르소설의 작가들 ⑩] 더글러스 프레스턴 & 링컨 차일드

등록 2016.01.25 21:52수정 2016.01.25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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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소설, 그중에서도 범죄소설의 역사를 장식했던 수많은 작가들이 있습니다. 그 작가들을 대표작품 위주로 한 명씩 소개하는 기사입니다. 주로 영미권의 작가들을 다룰 예정입니다. - 기자 말

한 편의 소설을 누군가와 같이 쓴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집필하는 동안 서로 의지할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경계하게 된다. 성향이 다르고 문체가 다르니 아무래도 부딪히는 일도 발생할 것이다.


소설을 함께 집필하는 일은 예전에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앨러리 퀸이다. 사촌형제 사이인 두 명의 작가는 앨러리 퀸이라는 필명을 사용하면서 공동으로 수많은 명작을 만들어냈다. 주로 한 명이 전체적인 스토리를 구상하고, 다른 한 명이 그것을 구체적인 글로 옮기는 방식으로 작업을 했다고 한다.

공포소설의 대가인 미국의 스티븐 킹도 이런 경험이 있었다. 그는 역시 공포소설 작가인 피터 스트로브와 함께 <부적>을 집필했다. 작품의 전체적인 구상은 하지 않았다. 그냥 한 명이 글을 쓰다가 지겨워지면(또는 영감이 떨어지면) 상대에게 넘기는 식이었다. 그럼 그가 알아서 그 다음 이야기를 쓰다가 다시 집필을 넘기는 방식으로 작업을 하며 작품을 완성했다. 상대방이 쓴 글에 손을 대는 일은 절대 없었다고 한다.

'팬더개스트 시리즈'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FBI 수사요원 '팬더개스트' 역시 두 명의 작가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더글러스 프레스턴과 링컨 차일드가 그 두 명의 작가다. 이 두 작가는 1994년부터 현재까지 10편이 넘는 시리즈를 공동으로 써오고 있다.

두 명이 함께 만들어낸 독특한 탐정

a <살인자의 진열장> 겉표지

<살인자의 진열장> 겉표지 ⓒ 문학수첩

더글러스는 대학 졸업 후에 미국 자연사 박물관에서 일을 하며 정기적으로 박물학 관련 잡지에 칼럼을 기고하던 도중에 링컨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에 링컨은 한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근무하고 있었다. 이 두 명은 모두 박물관에 관심이 많았다.


어느날 밤 이들은 함께 미국 자연사 박물관에서 죽은 공룡들이 모여있는 방을 둘러보았다. 마침 링컨이 더글러스에게 박물관에 관한 이야기를 책으로 써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한 날이었다. 일반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박물관의 뒷이야기 또는 야사를 책으로 펴내보자는 이야기 였다.

날씨가 그다지 좋지 않은 날이었다. 밖에서는 무서운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고, 번개가 칠 때마다 고대의 티라노사우르스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포름알데히드의 냄새가 떠도는 방, 공룡의 뼈들로 가득찬 방이었다. 그때 링컨이 말했다.


"여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곳이야, 여길 배경으로 스릴러 소설을 써보자."

한밤중에 수많은 동물의 뼈와 함께 있다보면 두려운 느낌이 들 수도 있겠다. 이날 밤에 더글러스와 링컨은 함께 소설을 쓰기로 작정한 것이다. 더글러스가 몇 개의 장을 쓰면 링컨이 상당 부분 손을 보고 그 다음에 올 대략의 줄거리를 작성하는 방식으로 일을 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글을 썼다. 그리고 자신들의 글솜씨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스스로 '무책임하게 글을 썼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무책임하게 쓴 글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들은 동시에 시리즈를 구상하면서 '여태까지 누구도 보지 못했던 형사'를 만들자고 생각했다. 물론 대부분의 탐정들은 '누구도 보지 못했던 인물'일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두 작가는 팬더개스트라는 FBI 특별요원을 만들어냈다. 창백한 피부에 금발머리를 가진, 항상 침착한 태도와 말투를 유지하는 인물이다. 동시에 많은 점들이 베일에 싸여 있다. 처음에 두 작가는 팬더개스트라는 성만 떠올렸을 뿐 이름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작가는 "그러다가 조금씩 팬더개스트가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되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

팬더개스트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작품은 2002년에 발표한 <살인자의 진열장>이다. 작품의 배경은 현대의 뉴욕. 맨해튼에 있는 건축현장의 지하터널에서 우연히 36구의 유골이 발견된다. 유골들은 모두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다.

칼로 베인 듯한 자국이 있고 어떤 뼈는 쪼개져 있다. 오래 전에 누군가가 시체를 토막내서 터널벽 안쪽에 쌓아놓은 것이다. 팬더개스트는 한 고고학자와 함께 현장에 도착해서 수사를 시작한다.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팬더개스트

a <악마의 놀이> 겉표지

<악마의 놀이> 겉표지 ⓒ 문학수첩

이렇게 시작된 시리즈는 현재까지 10편이 넘게 이어지고 있다. 2003년 작품인 <악마의 놀이>에서는 연쇄살인범과 맞서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팬더개스트는 좀처럼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는 모든 것에 대해서 숨기는 경향이 있고 과묵하며,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다. 작품 속 한 인물은 팬더개스트에 대해서 '진짜 연방수사요원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라고 말을 할 정도다.

많은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링컨 차일드도 말한다. 자신들이 팬더개스트의 어떤 면을 만들어냈는지 모르겠다고. 우리가 팬더개스트에게 어떻게 하라고 지시하는 게 아니라, 팬더개스트가 우리에게 어떻게 하라고 지시를 내리는 것 같다고.

팬더개스트도 그렇게 스스로를 창조했다. 그리고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이런 시리즈가 이어지길 원하는 이유는, 작품 속의 사건보다는 등장인물이 궁금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살인자의 진열장 1

더글러스 프레스턴.링컨 차일드 지음, 최필원 옮김,
문학수첩, 2010


#팬더개스트 #악마의 놀이 #살인자의 진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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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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