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탕 그 독특한 맛에 흠뻑 빠졌다"

어디 홍어탕 잘하는 집 없소?

등록 2002.12.04 14:29수정 2004.01.30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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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젯상에는 갈치, 병치, 준치 등 '치'자 들어간 걸 안 올린다지요.병어, 준어는 몰라도

젯상에는 갈치, 병치, 준치 등 '치'자 들어간 걸 안 올린다지요.병어, 준어는 몰라도 ⓒ 김규환

얼마 전 어머니 제사 때 곡성 옥과장에 갔다. 새벽 같이 시제장을 봐서 원리에 사시는 집안 할머니께 갖다드려야 한다. 마침 그날이 음력 10월 보름이었기 때문에 점심때쯤 맞춰 산으로 가려면 아침 8시까지는 장을 봐다 드려야 했다.


병어며 준어, 전어와 낙지와 동태 전으로 쓸 포를 한 가게에서 모두 샀다.

"아줌마! 꼬막은 세꼬막 말고 참꼬막으로 줏쇼!"
여동생은 "손질하기도 힘들고 별 차이 없으니까, 그냥 세꼬막으로 주세요"한다. 어쩔 수 없이 물러섰지만 여간 서운한 게 아니었다.

"아줌마! 이따가 다시 우리 어머니 제사 장 보러 또 올랑께 잘 해줘야 됩니다."
"여부가 있겄습니까. 내가 꼭 기억하고 있을꺼요."
나는 이렇게 어물전 아주머니를 사귀게 되었다.

"그리고 아줌마! 이따 저 홍어뼈하고 홍어 내장 좀 구할 수 없을까요?"
"한 번 와 보싯쇼~. 홍어가 팔리면 좀 드릴 수 있제라우~"

이렇게 단단히 약속을 하고 시제장 본 것을 싣고 서둘러 고향길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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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왼쪽) 세꼬막은 양식 고막인데 줄이 더 촘촘하지요. (오른쪽) 참고막은 크기는 작지만 줄이 더 굵고 맛납니다.

(왼쪽) 세꼬막은 양식 고막인데 줄이 더 촘촘하지요. (오른쪽) 참고막은 크기는 작지만 줄이 더 굵고 맛납니다. ⓒ 김규환

한 시간쯤 뒤에 다시 나타나서 이젠 어머니 제사상에 올릴 장을 보기 시작했다.

건어물과 곶감은 형님이 지난 장에 미리 봐 뒀으므로 채소와 생물만 사면 되었지만 아까 시제 장에서 본 것보다 더 큼직하고 좋은 걸로 고르기로 했다.

어김없이 다시 그 생선 가게에 들러서 인사를 드리니 "정말 또 오셨네!"하며 아는 체를 하신다.

"제가 또 온다고 했잖아요."
"아줌마 아까 본 것 하고 똑 같은 종류로 해서 어머니 제산께 더 좋은 걸로 주세요."
"알았소."

이래저래 챙겨주시는 동안 나는 홍어가 정말 팔렸는가를 둘러 보았다. 세 차례 차까지 왔다갔다 짐을 나르고 마지막에 들른 생선가게지만 오전이라 아직 팔리지 않은 모양이다.

다시금 아주머니께 "아줌마! 그럼 이따가 또 올 일이 있응께 봉지에 싸서 저기 막걸리집 앞에다 좀 걸어 두시고 가세요."
"알았어요. 젊은 양반이 홍어 드실 줄 아나보네~"
"그럼요.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우리 아버님도 좋아하셨고, 우리 집에선 꼭 제가 끓인답니다. 우리 형수들 시집 와서 시켜 놓으면 홍어탕이 아니라 홍어국을 끓여 주거든요."

부탁을 드리고 다시 한 차 가득 싣고 집으로 왔다.

a 옥과장 홍어-다들 먼 곳 칠레에서 왔다는군요

옥과장 홍어-다들 먼 곳 칠레에서 왔다는군요 ⓒ 김규환

제주(祭主)인 형님이 서울에 어제 밤 차 타고 서울에 일보러 가셨기에 이번 장은 내 주도로 보았기 때문에 별미 중 별미인 홍어를 욕심내기에 충분했다.

우리 지역에선 홍어를 '홍어'라고도 하지 않는다. '홍애'라고 소리낸다. 국어 학자가 확인했듯이 '외할머니'를 '애할머니'라고 제대로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점심때쯤 되어 형님과 시제올릴 친척들이 모여 들었다. 시제를 지네고 형님 심부름으로 오일장에 또 가게 되었다. 작은 프라이드에 새끼줄 8통과 갈퀴, 대빗자루, 갈대 방빗자루를 사고 시장에 또 들렀다. 오후 4시가 넘어서인지 어느새 파시(波市) 분위기가 났다.

"아줌마 안녕하세요."
"어서 오싯쇼."
"홍애가 안 팔렸는갑소?"
내 입에서도 사투리가 질펀하게 흘러 나온다.

"글게 말이요. 지난 장엔 많이 팔렸는디 오늘은 시젠 날이라 통 안 사가구만!"
"그래도 내가 아저씨 생각 좀 해볼라요"하시며, 큼지막한 홍어 한 마리를 드시더니 뱃대기에다 칼을 툭 갖다대고 꼬리쪽으로 오려내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어~어~"하며 놀라 바라보고만 있었다.

홍어 내장과 꼬리뼈까지 한 뭉치 비닐 봉지에 담으시더니, "오늘 내가 한 턱 써버릴라요"하시며 세 근 정도 되는 홍어 한 마리까지 넣어 주셨다. 어안이 벙벙했지만 "감사합니다"를 연발하고 평정심을 찾았다.

a 흑산도 홍어가 제일이다. 홍어탕 잘 끓이는 분은 음식의 대가!

흑산도 홍어가 제일이다. 홍어탕 잘 끓이는 분은 음식의 대가! ⓒ 김규환

"아줌마, 어떻게 끓여야 맛있다요?"하고 다 알고 있으면서도 능청스럽게 물어보았다.

"조금 큰 양재기에다 쌀뜨물을 붓고 매운고추 쫑쫑 썰어 넣고 고춧가루 풀면 되지라~"
"채소는 무하고 또 뭘 넣어야 되는데요?"
"당근 조금하고 미나리 듬뿍 넣으면 향이 그만이지라우."

그렇다. 분명 홍어탕은 여름철에도 감자보다는 무가 최고다. 미나리도 들이나 냇가에 가서 돌미나리 뿌리채 뽑아 숭숭 썰어 넣으면 그 맛 시쳇말로 죽인다.

이렇다고 다 끝난 게 아니다. 말로는 쉽지만 한 번 해 본 사람은 홍어탕이란 게 보통 솜씨 가지고는 해내지 못한다는 걸 안다. 홍어탕을 끓일 때부터 신출내기 주부는 고역이다. 내 두 형수들이 손 들어 버린 게 홍어탕 아닌가?

먼저 손에 묻히는 것은 아무나 못한다. 냄새도 냄새지만 눈에 들어온 내장의 모습은 말 그대로 썩은 것, 또는 썩다만 것, 고름 같은 것, 감기철 농짙은 아이 코가 흐느적거리듯 볼썽사납다. 이 걸 만질 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몇 안될 정도로 괴상한 것이니 엄두가 날까?

널직하고 조금 큼직한 양은 냄비를 준비하고 재료를 씻는 둥 마는 둥 하여 채소를 준비하면 대충 준비 완료다.

꼬리 부분과 뼈, 내장을 넣고 양념하여 끓이다가 무와 홍당무를 조금 도톰하게 네모로 썰어 넣고 마지막에 미나리와 파를 썰어 넣으면 되는데 이 놈의 홍어탕은 옆에서 지켜보며 끓이지 않으면 끓으면서 암모니아를 발산하므로 한 눈 판 잠깐 사이에 모두 넘쳐 버리고 만다.

미리 불은 중불로 맞춰 놓고 숟가락 하나를 손에 들고 끓는 정도에 따라 서서히 저어줘야 한다. 과장도 않고 홍어탕이 끓으면서 글쎄 개 대여섯 마리가 개거품 흘린 침처럼 대단한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고춧가루를 이 만한 양이면 두 숟갈이면 충분하지만 이 놈은 고춧가루 다섯숟갈까지 잡아 먹는다.

또한 홍어탕은 절대 오래 끓이는 음식이 아니다. 보통 무나 홍당무가 들어간 찌개나 탕은 20분 가량을 끓여야 하는데 홍어탕은 화학반응 탓인지 그 두툼한 재료가 2∼3분이면 물렁물렁해지고 조금 더 끓였다가는 흐물흐물해져 형체마저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빨리 익는다.

드디어 홍어탕을 끓였다. 밥 한 그릇 푸고 소주 한잔 있으면 된다. 소주 안주로 토하탕과 쌍벽을 이룰 만하다.

아이들과 별미를 즐기지 않는 분들은 멀찌감치 물러나야 한다. 한 숟갈 떠 입에 넣기가 무섭게 코와 목구멍이 독가스에 콱 막히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렇게 두어 숟가락 떠 먹으면 이내 목에서부터 막창까지 확 뚫리는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먹는 암모니아 가스라 해도 별로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여름철 공중 화장실에 들렀다가 빠져나올 때 느끼는 숨 막힐 듯한 짜릿함!

이런 맛난 것을 나는 좋아한다. 내 입맛은 아버지를 닮았다. 민물고기를 냇가에서 몇 마리 잡아서 돌마리와 양념 식초에 찍어먹는 재미를 즐긴다. 아버지 토종닭 잡는 데 뽀짝 거렸다가 가슴살은 물론이고 칼 등으로 다져주신 닭발을 생으로 즐겼다.

이런 맛난 것을 어머니 제사 지내고 처가에 들러 이것 저것 싣고 오느라 깜박 잊고 그냥 두고 왔더니, 연변서 시집온 셋째 형수께서 콩 타작 이레째 하시는 동네 아주머니께 주고 말았단다. 시집 와 처음 이걸 먹어 보고 그리 맛있어 했던 아내에게도 미안하다.

마침, 아내가 외식을 한 번 하잔다. "그럼 보문동 보문사 근처에 홍어탕 잘 하는 집 있다니 그리 한 번 가봅시다"고 했다. 저녁 시간이 기다려진다.

덧붙이는 글 | 홍어탕 잘 끓이는 곳 있으면 꼭 알려주세요. 이참에 '홍어탕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하나 만들까요? 관심 있으시면 연락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홍어탕 잘 끓이는 곳 있으면 꼭 알려주세요. 이참에 '홍어탕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하나 만들까요? 관심 있으시면 연락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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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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