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 먹다 입안이 확 벗겨진 분과 야밤 통화

홍어찜 먹다 입안이 확 벗겨진 분께서 밤늦게 전화를 해왔습니다

등록 2003.07.15 10:53수정 2003.07.15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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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는 밤에 더 기승을 부린다. 아직 열대야는 아니어도 도시의 열기가 쉬 식지 않는다. 모기 때문에 방안에 꼼짝없이 갖혀 지내야 하기 때문에 더 그렇다. 그래도 낮에는 그늘에 들어가 있거나 부채로 부쳐주면 금방 땀이 마르고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수박 한 덩이나 시원한 음료를 가까이 하기에도 좋다.


a 서울 사람들이 몰려가 일산에서 촛불 켜고 야외에서 조용히 번개모임을 했던 풍경

서울 사람들이 몰려가 일산에서 촛불 켜고 야외에서 조용히 번개모임을 했던 풍경 ⓒ 김규환

호박잎쌈을 싸먹고 좀 쉴 생각으로 아이들과 놀다가 다시 컴퓨터 있는 방으로 옮겨갔다. 밤 11시 반쯤 된 시각이었다. 이 때 휴대폰 전화벨이 울렸다.

"홍어...김규환..."
"예, 그렇습니다만... 누구신가요?"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예. 맞습니다."
"지지직~"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또, 지지직~뚝."

전화가 끊겼다. 이번에는 찍힌 번호를 찾아 전화를 직접 했다.

"예, 방금 통화했던 사람입니다."
"홍어가..."
"지지지직~찍."

아이들이 만진 전화기 안테나가 부러져 소리가 엉망으로 들리고 이내 끊겼다. 전혀 알지 못하는 처음 대하는 분이었지만 '홍어'라는 말에 안심을 하고 일반 전화로 다시 걸었다.


a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홍좋사모>는 다음에 있습니다.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홍좋사모>는 다음에 있습니다. ⓒ 김규환

"전화가 자꾸 끊깁니다."
"네,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김규환 씨죠?"
"그런데요. 무슨 일 있습니까?"
"밤늦게 죄송합니다. 저는 000인데요, 오늘 영통에서 홍어 먹다가 제 입이 완전히..."
"입안이 헐어서 소송하시려고요? 하하하"

생면부지의 사람과 나누는 대화 치고 내가 너무 나간 건가? 대번에 입천장이 벗겨진 걸 알아챘고, 그에 얽힌 분쟁쯤이겠거니 결론지었다. 대뜸 소송할거냐며 물었으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찌 보면 그렇게 바로 알아차리니 일단 안심을 했을 수도 있다. 홍어 먹으러 다니는 사람들의 회장 체면치레를 한마디로 할 수 있었던 내가 대견하기도 했다.


"예, 입천장은 물론이고 혀도 확 벗겨졌어요.”
“무얼 드셨길래 그랬답니까?”
“영통에서 홍어찜을 먹었는데 그러네요.”
“종종 있는 일입니다.”
“상가에 가서 몇 번 먹어봤는데 전에는 안 그랬거든요.”
“하하 제대로 삭힌 걸 드셨나봐요. 보통 찜과 탕은 훨씬 더 삭힌 것으로 합니다.”
“그렇군요. 아무 일 없겠죠?”
“며칠 지나면 아무 일 없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그리고 소송해봤자 지니까 하지 마세요. 허허허.”
“알겠습니다. 언제 한 번 뵙죠.”
“예. 그런데, 제 전화번호는 어떻게 아셨습니까?”
“모임에 가입했습니다.”
“언제요? 어떤 이름으로 가입하셨는데요?”
“‘홍어미워’입니다. 오늘밤에 가입했구요.”
“그럼 제가 확인하는 대로 바로 정회원으로 바꿔 드리겠습니다. 그럼 안심하고 잘 주무세요.”
“네, 조만간 모임 있을 때 뵙겠습니다.”

a 부정기 번개를 일주일이 멀다고 있고 정기모임은 홀수 달에 한 번씩 합니다. 며칠 전 가졌던 2003년 7월 정기모임에서. 회원은 800명이 조금 안된답니다.

부정기 번개를 일주일이 멀다고 있고 정기모임은 홀수 달에 한 번씩 합니다. 며칠 전 가졌던 2003년 7월 정기모임에서. 회원은 800명이 조금 안된답니다. ⓒ 김규환

무더운 여름철이라 홍어 맛이 조금 떨어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 번 그 맛에 빠지면 헤어나지를 못한다. 요산에 중독된 것이니 남녀를 불문한다. 일주일에 세 번에서 다섯 번까지 막걸리와 함께 홍어찜, 홍어탕을 즐긴다. 이러다가 홍어와의 첫 대면에서 호되게 당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입천장이 벗겨지고 양 어금니 사이 약한 부분도 벗겨진다. 심하면 혀 마저 확 벗겨져 빨간 앵두에 가깝게 된다. 멋모르고 막 먹다가는 자신의 혀 껍질을 씹어 먹는 일도 발생한다. 몇 해 전 이런 일이 있어 실제 식당 주인을 상대로 소송을 했던 사례도 있었다.

뭐든 첫 걸음은 더디게 갈 필요가 있다. 확 당긴다고 덥석 물었다가는 복날 가히(멍멍이)처럼 뼈도 못 추리는 신세가 되고 마는 게 세상사다. 얼마 전부터는 나도 홍어를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홍어에 푹 빠져 지낸 것이 어느덧 7월 달이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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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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