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 갯벌' 정치적 논란 누가 자초했나

[取중眞담] 대통령의 '장항 갯벌' 방문이 경솔했던 이유

등록 2006.12.04 19:06수정 2006.12.05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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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장항산단 '조속착공'을 요구하며 정부종합청사에서 단식 농성 중인 나소열 서천군수

장항산단 '조속착공'을 요구하며 정부종합청사에서 단식 농성 중인 나소열 서천군수 ⓒ 서천군

a 지난 8월 갯벌 매립 반대를 요구하며 장항갯벌에서 청와대까지 도보행진을 벌이고 있는 양수철 <뉴스서천>대표

지난 8월 갯벌 매립 반대를 요구하며 장항갯벌에서 청와대까지 도보행진을 벌이고 있는 양수철 <뉴스서천>대표 ⓒ 이정희


"18년은 안 된다, 차라리 죽여라"라는 '나소열 뚝심'이 충청권 여론을 한 데로 모으는 도화선이 되고 있다"

나소열 서천군수의 단식농성 소식을 전하고 있는 한 지역 일간신문의 보도내용 중 한 문장이다.

정부종합청사에서 7일째 단식농성 중인 나소열 서천군수의 농성요구는 '장항국가산업단지의 즉시 착공'이다. '장항산단 즉시 착공'은 '제2의 새만금'으로 불리고 있는 장항갯벌의 즉시 매립을 의미한다.

나 군수가 단식을 벌이자 여기저기서 지지·격려방문이 쇄도하고 있다. 충청향우회 김용래 총재를 비롯 재경서천군민회 회원 등 지역인사는 기본이다. 이완구 충남지사와 국민중심당 심대평 대표, 정진석 원내대표 등 정치인들도 농성장을 찾았다. 충남지역 지방의회와 자치단체는 조속개발을 촉구하는 특별결의문으로 동조했다.

지난 달에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장항갯벌을 방문하기도 했다.

언론도 그의 단식을 연일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대전일보>는 4일 1면 머릿기사로 '장항산단 전국 이슈 부상-나소열 서천군수 단식농성 계기 정치권도 주목'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즉시 착공' 단식과 '매립 반대' 도보행진을 보는 다른 눈

@BRI@그런데, 잠시 4달 전으로 거슬러 가보자.


8월 불볕 더위에 "갯벌은 생명이다"고 외치며 매립반대 깃발을 들고 장항갯벌에서 청와대까지 500km를 도보 항의 시위한 사람이 있다. 양수철 <뉴스서천> 대표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격려하기 위해 구간별로 도보행진에 동참했다. 하지만 대다수 언론은 그의 땡볕 도보행진 소식을 외면했다. 정치권도 지방의회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같은 사안에 대한 '극과 극'의 행보는 청와대도 예외가 아니다.

당시 양 대표는 지팡이를 짚고 물집잡힌 다리를 이끌며 열흘간을 걸어 청와대 앞에 도착했다. 하지만 항의서한조차 전달하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그는 청와대를 등지고 돌아서며 "자꾸만 희망을 잃는 느낌"이라고 자조했다.

반면 나 군수는 지난 10월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을 면담하고 '장항갯벌 조기매립'을 요구했다. 노 대통령은 즉석에서 "보고받은 내용과 다른 내용이 있다"며 현장방문을 약속했다.

그동안 해양수산부와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환경영향평가 검토협의회 등을 통해 "사업지구는 염생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고 갯벌이 잘 발달돼 있어 생태학적 가치가 높은 지역"이라며 "갯벌매립은 멸종위기 조류의 서식지 훼손은 물론 해양환경에 큰 영향이 예상된다"고 밝혀왔다.

나 군수 측은 같은 자리에서 "장항갯벌은 이미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고, 더 이상 보존가치가 없다"고 말해 왔다. 노 대통령이 '보고받은 내용과 다른 내용이 있다'고 언급한 것도 이 대목이다.

노 대통령은 나 군수와 면담 후 정확히 1주일 후 권양숙 여사와 함께 장항갯벌을 방문했다. 직접 장화를 신고 갯벌에 들어가 뻘을 파보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현장 확인 직후 "인접한 전북 군산과 균형적 발전을 이뤄야 한다, 서천군민이 일방적 정책의 희생물이 되면 안 된다"며 개발론에 힘을 실어주는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대통령의 갯벌 방문, 그 이후

a 매립예정지인 장항갯벌 전경

매립예정지인 장항갯벌 전경 ⓒ 오마이뉴스 심규상

결과적으로 노 대통령의 현장방문 뒤 찬반 갈등을 겪다가 조정국면에 있던 장항갯벌 논란이 수면 위로 급부상 했다. 갯벌매립에 부정적인 정부입장을 확인하고 주춤했던 개발론자들이 노 대통령의 행보에 다시 힘을 얻은 것이다.

실제 정부의 입장을 기다리고 있던 일부 서천군민들이 대정부 투쟁의 강도를 높인 것도 노 대통령의 현장방문 이후다.

노 대통령이 나 군수와의 개인적 친분 때문에 현장을 방문한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남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나 군수는 1998년 새정치국민회의 노무현 부총재 특별보좌역과 2001년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대통령후보 정무보좌역을 역임했다.

나 군수와 충남도의 산업단지 조성 요구가 거세지자 정부는 다시 찬반 단체를 고루 포함시킨 협의체를 만들자고 제안하고 나섰다. 결론을 내야 할 정부가 또 다시 뒷걸음질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 와중에 정부가 내놓고 있는 안이 '갯벌 매립사업 전면 재검토'라는 얘기도 있고, 갯벌을 축소해서 매립하려 한다는 설도 흘러나오고 있다.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더라도 정부 정책이 또다시 표류하고 있고, 정치적 결정을 했다는 논란을 불러올 판이다.

노 대통령의 장항갯벌 현장 방문이 성급하고도 경솔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런 연유 때문이다.

금강 하구 북쪽의 충남 서천군 장항읍과 마서면 서쪽에 이르는 374만여평 규모의 매립예정지(새만금 북쪽 10km 지점)는 17년 전인 지난 1989년 장항 군산국가산업단지 조성사업으로 계획됐다. 이후 사업추진이 미뤄지다 지난 2004년부터 사업지구에 대한 환경영향평가가 진행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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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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