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해공원', 정치인 눈엔 어떻게 비쳤나

생뚱맞은 이명박, 뒤늦게 '부적절' 견해 밝힌 박근혜

등록 2007.02.09 09:07수정 2007.02.09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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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합천군은 새천년생명의숲을 '일해공원'으로 바꾸었다.

합천군은 새천년생명의숲을 '일해공원'으로 바꾸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일해(日海)공원'에 대해 정치인들이 한 마디씩 하고 있다. 특히 대선 주자들이 어떤 발언을 하는지 국민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일해공원'에 대한 견해로 정치인의 역사의식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아직 '일해공원'이 적절하다고 나서는 정치인은 없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만 '모른다'는 정도지, 대부분 '반대'나 '부적절' 등의 입장을 나타냈다. '일해공원' 반대 단체들은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는 것 자체가 '암묵적 동의 아니냐'고 지적한다.

@BRI@'전두환(일해)공원 반대 경남대책위'는 대선주자들이 경남을 방문할 때마다 찾아가서 입장을 묻겠다며 벼르고 있다. 처음에는 '모르겠다'고 했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7일 창원을 방문했다가 경남대책위로부터 '공개질의서'를 받은 뒤 '일해공원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박 전 대표는 "(공원 명칭 결정은) 지자체의 고유권한이긴 하지만, 지역 정서를 넘어서는 면이 있고, 전체 국민도 관심을 갖고 있는 만큼 국민 정서도 생각해야 한다"면서 그 이유를 설명했다.

민주노동당은 박 전 대표의 이 같은 입장이 '부적절하고 무책임한 면피성 발언'이라고 비난했다. 민주노동당은 "박 전 대표는 '일해공원'이 적절하지 못하다고 했는데, 간단한 립 서비스로 정치적 책임을 다하려고 하는 태도야말로 부적절하다"며 "박 전 대표는 부적절한 태도를 버리고 전 대표답게, 한나라당 유력 대선주자답게 현명한 태도를 보이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이명박 '일해가 일본 바다냐', 손학규 '아쉬움 남는다'

a '전두환(일해)공원 반대 경남대책위'는 지난 1월 심의조 합천군수 비서실을 찾아가 전두환 전 대통령이 1심 선고를 받았을 때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선물로 전달했다.

'전두환(일해)공원 반대 경남대책위'는 지난 1월 심의조 합천군수 비서실을 찾아가 전두환 전 대통령이 1심 선고를 받았을 때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선물로 전달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이에 대해 아직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 이 전 시장이 한 대답을 놓고 말이 많다. 이 전 시장은 정치현안으로 부상한 '일해공원' 논란에 대해 '두루뭉술·동문서답' 전략을 선보이고 있다.


이 전 시장은 지난 1일 KBS 라디오에 출연해 "깊이 내용을 몰라서 답변을 잘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예산을 지원해준 사람들의 뜻을 모아서 해야겠죠"라고 대답했다. 같은 날 기자들이 묻자 이 전 시장은 "일해라고 해서 나는 처음에는 일본 바다라고 한 줄 알았다"며 농담조로 받아넘겼다.

다음날 이 전 시장은 "기초단체장이 하는 일까지 논평을 해야겠나, 그러면 나라가 너무 복잡하다. 논란이 되는 건 좋고 그래야 발전한다"고 말했다. 이 전 시장은 지금까지 '일해공원'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은 3일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이 전 시장의 이런 태도를 비난했다. 김 전 장관은 "'일해공원' 추진은 아물어 가는 상처를 덧나게 하는 것이며 국민을 살해한 자를 위한 '살해공원'을 만들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마땅히 중단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김 전 장관은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대선 주자가 요즘 한창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일해공원'이 뭔지 모른다고 한다면 답은 둘 중 하나다,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바보다, 만의 하나 그런 분이 대통령이 된다면 결국 '바보 대통령' 아니면 '표리부동한 대통령' 둘 중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아쉽다'는 말로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손 전 지사는 지난달 31일 기자들과 만나 "우리나라는 민주주의를 이뤄내는 과정에 상처가 있다, 과거사를 반성하고 사죄해야 하는데 좀 더 신중하게 국민적인 정서를 생각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또 손 전 지사는 "이해는 가지만 신중을 기했어야 했다, 역사는 현실에 엄연히 살아있기 때문에 미래를 향해서 나가되 미래를 향해서 오늘의 역사를 조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a '전두환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은 지난 1월 합천에서 일해공원 지지 집회를 열기도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은 지난 1월 합천에서 일해공원 지지 집회를 열기도 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원희룡 '역사 상처 아무는 데 역행', 고진화 '개탄'

원희룡 의원은 언론과 한 인터뷰와 광주 방문 등을 통해 '일해공원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원 의원은 "전 전 대통령이 생존해 계시고, 12·12나 5·18에 대한 사법적인 판단도 있었다"며 "호남주민들이나 피해자분들의 입장에서 (상처가) 충분히 치유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 전 대통령을) 기념해 공원이름을 붙이는 것은 시기상조이고 역사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데 역행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고진화 의원은 한나라당 소속 정치인 가운데 가장 강도 높게 '일해공원'을 맹비난했다. 고 의원은 합천군이 '일해공원'으로 확정 공고한 다음날인 지난달 30일 성명서를 발표했다. 고 의원은 성명서에서 "일부 5공화국 추종세력들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소위 '일해공원'이 끝내 확정되었다는 소식에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독재와 지역주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합천군수와 일부 군 의원들의 결정은 준엄한 역사와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고 의원은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을 향해 "분명한 태도를 표명하라"고 다그쳤다. 고 의원은 "당 지도부도 올바른 역사인식을 국민들께 제시해야 하고, 당 윤리위원회는 즉시 공원추진에 찬성한 합천군수와 군 의원을 대상으로 철저한 조사를 실시해 국민모독·역사파괴·헌법정신 위배에 의거한 준엄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나라당 소속 김태호 경남도지사는 "부적절하다, 합천군이 국민들의 정서를 수용하기를 바라고 되돌리는 것이 순리다, 합천군민의 시각에서 보면 자기 고장 출신의 어른이고 정서적으로 이해가 가지만, 5ㆍ18항쟁 아픔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의 아호를 따서 시민공원으로 만든다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대선주자는 아니지만 합천이 지역구인 김영덕 한나라당 국회의원은 '일해공원'에 대해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김 의원 측은 "우리는 제3자"라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a 경남대책위는 합천군청 앞에서 '일해공원' 반대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경남대책위는 합천군청 앞에서 '일해공원' 반대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정동영 '시대착오도 유만부동', 노회찬 '한나라당 집권 후 예고편'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은 '일해공원'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이 전 시장의 발언을 문제 삼았는데, "'일해가 일본의 바다냐'고 동문서답하는 것은 정치지도자로서의 모습이 아니다, 이 전 시장은 일해공원 문제에 관해 언젠가는 광주 망월동을 방문해 5·18유족들에게 분명히 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국민의 세금을 들여 만든 공원에 '일해공원'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시대착오도 유만부동이다, 애향심과 애국심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면서 "'일해공원'으로 이름 붙이는 것은 국민 세금에 대한 모욕이며, 2007년 선진민주화를 향하는 데 있어 역행"이라고 말했다.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은 8일 "'일해공원' 명칭은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는 주장하는 것과 같으며, '이등박문 추모공원'을 세우는 것과 같은 짓"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노 의원은 "광주학살 책임자인 전두환 전 대통령을 기려 '일해공원'을 만드는 것은 5․18정신을 짓밟는 행위요 광주영령을 다시 한 번 죽이는 행위"며 "이번 '일해공원 사태'는 한나라당 집권 후의 상황을 미리 보여주는 예고편"이라고 말했다.

유종필 민주당 대변인은 "대한민국 안에서 어떻게 이렇게 다른 인식을 지니고 있는지 충격적이고 놀라울 따름이다. 합천군이 대한민국 안에서 섬처럼 따로 떨어져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라고 밝혔다.

또 "전 전 대통령은 광주 5·18 학살의 책임자이자 군사 쿠데타의 주동자이고 권력형 부정축재로 단죄 받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기리는 행위는 광주 5·18 영령에 대한 모독이자 동서화합에 역행하는 처사다, 합천군 당국은 잘못된 결정을 즉각 취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남대책위 "정치권, 부적절한 명칭 없어지도록 나서야"

'일해공원' 논란은 지난해 11월 시작됐다. 경남 합천군이 경남도비 등을 들여 2004년에 조성된 새천년생명의숲의 명칭을 바꾸기로 하고, 새마을지도자와 마을이장 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이면서부터다. 합천군은 지난 1월 29일 군정조정위원회를 열어 '일해공원' 명칭을 확정짓고 공고했다.

정치권에서는 '일해공원' 명칭이 부적절하고 철회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한나라당 소속 심의조 합천군수는 '일해공원 명칭을 바꿀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전두환(일해)공원 반대 경남대책위' 김영만 공동대표는 "특히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이 '일해공원'에 대해 부적절하다는 등의 입장을 밝힌 만큼, 입장 표명에 그치지 말고 실제 부적절한 명칭이 없어지도록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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