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땐 폭동... 내가 전두환이라도"
전두환 생가 지키는 합천 주민들

[현장] '전두환 고향'서 열린 '현대사 바로알기'... '일해공원' 찬성 주민들로 긴장감

등록 2007.02.11 16:28수정 2007.02.19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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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전두환 고향에서 현대사를 바로 알자!"
"군민 정서에 반하는 행사 자제하라!"


어린이들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고향인 합천에서 '현대사 바로알기 놀이'를 벌였다.

참교육학부모회 경남지부와 '굴렁쇠'는 11일 오전 11시경부터 오후 3시까지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에서 이같은 행사를 벌였다. 최근 '일해(전두환 전 대통령 호)공원' 명칭 논란을 벌이고 있는 새천년생명의숲에서는 5·18 광주항쟁 사진전도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진주·창원·마산·김해에서 온 어린이 30여명과 어른까지 합쳐 50여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5·18사진들을 감상한 뒤, 새끼꼬기·못박기 등의 놀이를 즐겼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고향마을에도 갔다.

이날 어린이들이 새천년생명의숲에서 놀이를 하는 동안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고향마을 사람 10여명이 나와 시비를 걸었다. 또 고향마을에서 주민들이 마을 입구를 가로막는 바람에 어린이들은 생가 앞까지는 가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 행사가 알려진 지난 8일, 합천군청에서는 지난 9일 참교육학부모회 경남지부에 "충돌이 우려된다"며 철회 요청 공문을 보냈다. 이날 행사장 입구에는 새마을운동합천군지회에서 내건 '합천군민 정서에 반하는 행사 자제 촉구'라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어린이들 "부끄러워요, 새로 이름 지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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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학부모회 경남지부는 11일 새천년생명의숲에서 '현대사 바로알기 놀이한마당' 행사를 열었는데, 어린이들이 5.18광주항쟁 사진을 보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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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 대통령의 고향마을인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에 어린이들이 도착하자 한 주민이 나와 항의하면서 한중권(오른쪽) 참교육학부모회 경남지부장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고 있다. ⓒ 윤성효

어린이들을 태운 버스는 이날 오전 10시 40분경 합천 새천년생명의숲에 도착했다. 어린이와 어른까지 합쳐 50여명이 '현대사 바로알기 합천 놀이한마당' 행사에 참석했다.

이들이 도착하기 전부터 '새천년생명의숲 지키기 합천군민운동본부'는 5·18항쟁 사진을 전시했다. 사진은 새천년생명의숲 야외공연장 앞 나무 사이에 줄을 매달아 집게를 이용해 걸었다. 어린이들은 함께 온 부모들로부터 설명을 들었다.

이날 새천년생명의숲에서 어린이들은 ▲현대사 문제를 푸는 '보물찾기' '수수께끼' ▲경남의 자랑과 부끄러운 것 각각 10가지 현수막에 적어넣기 ▲역사를 바로 세운다는 뜻으로 나무에 못박고 모래탑 쌓기 등의 놀이를 했다.

어린이들은 넓은 천에 "전두환 싫어" "국민 세금 아깝다. 일해공원은 개인돈으로 조성하세요" "광주시민 아자아자, 전두환 아저씨 그러면 안 돼요" 등 각자 하고 싶은 말을 적었다.

또한 종이에 "새로 이름 지어주세요" "우리들이 부끄럽다" "저번처럼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등의 나무사이 새끼줄에 걸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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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 감상.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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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성효

[오전-생명의 숲] "광주에서 폭동이 나서... 나같아도 그렇게 했다"

이날 오전 행사장에는 '일해공원'을 찬성하는 일부 주민들이 나타나 간헐적으로 시비를 걸었다. 오전 11시경에는 40·50대 남성 10여명이 함께 사진전시장 주변에 나타났지만, 멀찍이서 전시장을 바라볼 뿐 가까이 오지는 않았다.

이 중 한 주민은 "그 당시에는 폭동이 일어나서 시민들이 경찰 초소를 부수고 했기에 그런 일(항쟁)이 벌어졌다, 나도 그 때 있었더라면 그렇게 (대처)했을 것이다"면서 "정치는 정치고 역사는 역사다"고 말했다. '일해공원이 부적절하다'고 밝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 대해서도 "박근혜 대표도 개인이다, 개인 입장 아니냐"고 말했다.

다른 주민도 "이런 일을 이슈화시키지 말고 합천에 맡겨주었으면 한다"며 "합천의 좋은 점만 나오면 좋겠다, 왜 바깥 사람들이 와서 왜 그러는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모두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에서 온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집안 사람들로 알려졌다.

또 이들은 "(참가자들이) 광주에서 왔느냐, 이게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냐"라고 말했다. 이에 참교육학부모회 관계자들이 "우리는 합천과 같은 경남에서 왔다"며 "광주항쟁은 교과서에도 나온다,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 온 것이다"고 맞받아쳤다.

또한 어린이들이 한쪽에서 '새끼꼬기'와 '못박기'를 하는 동안, 다시 일해공원 찬성 측의 주민들이 한두명씩 다가와 시비를 걸었다. 이들은 천조각에 쓴 어린이들의 글을 보고서 "이게 어린이들이 쓴 게 맞느냐, 어른들이 시킨 것 아니냐"라며 시비를 걸었다.

한 주민은 어린이들이 써놓은 글을 발로 가리키며 시비를 걸었고, 어떤 주민은 아이들이 써 놓은 글 옆에 "니나 잘 하세요, 아가씨"라고 써놓았다. 이에 참교육학부모회 회원들이 나서서 따졌다.

전 전 대통령의 고향마을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주민 10여명은 이날 낮 12시경 모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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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꼬기.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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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이 새천년생명의숲에서 천조작에 하고 싶은 말을 적어놓자 일해공원 찬성측으로 보이는 주민이 나와 시비를 걸고 있다. ⓒ 윤성효

[오후-전두환 고향] 생가 앞 막아선 주민들 "죄값 다 치렀다"

오후 행사에는 좀더 긴장감이 감돌았다.

어린이들은 점심을 먹은 뒤 이날 오후 1시경 버스를 타고 전 전 대통령의 고향마을로 향했다. 애초 방문 일정은 오후 3시였지만, 마을주민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행사를 앞당긴 것이다.

어린이들은 마을 입구 느티나무로 이동해 잠시 설명을 들었다. 이 느티나무 앞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친형인 전기환씨가 1984년에 기념식수한 것'이라는 표지석이 있었다. 일부 어린이들은 표지석 위에 발길질을 하기도 했다. 한중권 참교육학부모회 경남지부장은 "생가 앞에 가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침묵하자"고 당부했다.

그러나 시비는 피하기 어려웠다. 어린이들이 생가 쪽으로 향하자 기다리고 있던 마을주민들 20여명이 이들을 가로막았다. 이날 오전 새천년생명의숲에서 5·18사진전에 대해 시비를 걸었던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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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 대통령의 고향마을에 있는 전기환씨의 기념식수 표지석을 한 어린이가 발로 짓뭉개고 있다. ⓒ 윤성효

이들은 "전 전 대통령은 죄값 다 치루었다" "(일해공원은) 군민 과반수가 찬성했는데 왜 이러느냐" "더 좋은 데 가지 여기 왜 왔냐" "아이들한테 '살인자 전두환' 써놓는데 말이 되나"라고 말했다. 한중권 지부장은 "역사의 현장이니까 왔다, 이 길은 국가 땅인데 왜 함부로 가지 못하게 하느냐"라며 주민들에게 "너무 흥분하게 해서 죄송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참교육학부모회 경남지부 간부들의 입을 손으로 막으며 회원들에게 거칠게 항의했다. 카메라 기자를 가로막고 카메라를 손으로 치기도 했다. 몇몇 어린이들은 울기도 했다.

일부 주민들 "지금 이름 좋은데 왜"

그러나 모든 합천 주민들이 '일해공원'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었다. 새천년생명의숲에서 사진전을 감상하는 주민들도 눈에 띄었다.

이날 만난 유영수(75·합천읍)씨는 "지난 번에 군에서 했다는 설문조사는 엉터리다, 새마을지도자 몇 사람만 한 것이다"며 "군수가 괜한 짓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득(75·합천읍)씨도 "말도 안 된다"며 "새천년생명의숲이라는 좋은 이름이 있는데, 원래 이름으로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민(17·합천고 1년)군은 "괜히 이름 바꾼다고 난리를 치고 있다, 쓸데없는 짓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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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생가마을에 도착하자 주민들이 나와 항의하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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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전 대통령의 마을 주민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자 어린이들이 바닥이 잠시 앉아 있다. ⓒ 윤성효

이날 행사에 대해 정혜란 참교육학부모회 경남지부 정책실장은 "요즘 고대사가 문제가 되고 있는데,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하지 않느냐"며 "합천군이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은 역사왜곡이기에 아이들에게 바로 알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중권 지부장 역시 "역사는 우리가 살아가는 거울이다, 아이들에게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박현주 합천군의원(민주노동당)은 "합천에서는 '외부 사람들이 와서 왈가왈부한다'고 하는데, 실제 합천의 이미지는 외부인들이 평가한다"며 "전두환 전 대통령의 브랜드로 먹고 산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라고 비판했다.

행사에 참여한 정민찬(진주 천전초교 3년)군은 "기분 나쁘다, 사진들을 보고 분노를 느낀다"며 "앞으로는 대통령이 저렇게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날 어린이들은 이날 오후 3시50분경 합천을 나와 자기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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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읍내에 사는 두 어르신이 나와 사진전을 보면서 일해공원은 부당하다고 강조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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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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