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멀미와 싸우며 제주도 같은 벳푸에 도착하다

3박4일의 일본 여행- 14시간 만에 도착한 벳푸항

등록 2007.03.24 15:31수정 2007.03.24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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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수가 있는 거리
야자수가 있는 거리정현순
"야! 이젠 살 것같다. 배멀미로 어찌나 고생했는지... 속이 편해지고 아팠던 머리도 이젠 괜찮아지는 것 같다."

배멀미로 고생한 친구 두명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일본 벳푸항에 도착한 우린 관광버스를 타고 벳푸 시내로 들어왔다. 벳푸 시내라고는 하지만 한적하고 조용한 거리였다. 불어오는 바람과 깨끗한 공기가 배속까지 들어가면서 기분을 상큼하게 만들어 주는 듯했다. 크게 심호흡을 해본다. 물감을 뿌려놓은 것처럼 파란 하늘이 내 안으로 들어 오는 것 같았다.

벳푸항에 도착하기 전날 밤, 9시 30분쯤 오사카항에서 큐슈와 혼슈를 운영하는 관서기선에 올랐다. 13시간 예정이었지만 흐린 날씨와 파도로 14시간 만인 다음날 아침 11시경에 벳푸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간밤에 잠은 배에서 잘 수밖에 없었다.


배에서 우리가 묵은 방은 2층으로 된 침대가 두개 있는 4인용 방이었다. 밤에 잠을 잘 때 가끔씩 몸이 한곳으로 쏠렸는데 파도가 심할 때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예민한 친구는 새벽에 배가 흔들리자 잠이 깨면서 잠을 못 이루었다고 한다. 나도 잠깐 잠을 깼지만 피곤한 여행 중이라 이내 잠이 들 수 있었다.

벳푸항에 도착
벳푸항에 도착정현순
그래도 피곤한 탓에 일행들 대부분은 잠을 잘 자고 선내에서 아침까지 잘 먹었다. 아침을 먹은 시간에도 파도가 좀처럼 끝나지 않아 배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침을 먹고 난 후 커피까지도 아주 맛있게 마셨다. "배에서 마시는 커피의 맛이라니~" 이렇게 감탄을 하면서 말이다. 벳푸항까지 도착하려면 아직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우린 방으로 들어가 화장도 하고 짐을 꾸리며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화장을 하던 친구 두명이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변하더니 속이 미식미식 거린다고 했다. 얼굴엔 식은 땀까지 흘리면서... 배멀미가 시작된 것이다. 미처 멀미 상비약은 준비하지 못했다. 한 친구가 화장실로 급하게 뛰어간다. 토하고 싶다면서. 옆에 있던 다른 친구의 얼굴도 말이 아니다. 잠시 후 그는 등까지 땀이 났다면서 옷을 갈아입고 화장실로 뛰었다.

난리가 난 듯하다. 남은 일행들도 안절부절이다. 두 친구가 토하고 나더니 속이 좀 괜찮단다. 파도가 없었으면 그런 일은 없었을 텐데. 대충 준비를 마치고 우린 선실로 나갔다. 선실로 나가니 두 친구는 도저히 있을 수가 없다면서 갑판으로 나갔다. 시원한 바람을 쏘이면 괜찮아질 거라고 하면서. 그곳에서도 두 친구는 나머지 음식물을 모두 토했다. 그런 후 조금 안정이 찾아왔다. 그리고 30분 정도 가니 벳푸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난 그들의 고통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수년 전에 홍도로 가는 배를 타고 배멀미를 얼마나 했는지 여행의 고달픔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속으로 이번에도 배멀미를 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했다. 그때 몸에 면역성이 저축되었는지 이번에는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음~ 내가 무척 건강해졌구나'하면서 음미해 보기도 했다.

대형 페리호 안에 있는 자동판매기
대형 페리호 안에 있는 자동판매기정현순
배 안에 설치되어 있는 자동판매기를 보고 놀랬다. 아이스크림, 뜨거운 커피, 찬커피, 녹차, 음료수 등 종류도 다양했다. 일본은 자판기 문화가 잘 발달된 나라라고 한다. 버스를 타고 지나다 보면 작은 농촌 마을에도 2~3개 정도의 자동판매기가 설치된 모습을 흔하게 볼 수있었다.


오락실, 선물코너
오락실, 선물코너정현순
우리가 탄 배는 대형 페리인 만큼 오락실, 선물코너, 목욕탕, 매점 등 불편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시설이 잘 되어 있었다. 우리 일행은 '흔들리는 배에서 하는 샤워는 어떤 느낌일까'하는 호기심 반, 즐거움 반하는 마음으로 목욕탕을 들어갔다. 배가 많이 흔들리면 목욕탕 출입금지라고 하는데 그날은 약간의 흔들림이 있었기에 목욕탕을 들어갈 수가 있었다.

처음에는 이곳이 배 안일까 할 정도로 평온했다. 그러나 비누칠을 하고 씻어내기 위해 샤워기를 빼려고 하자 배가 흔들려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잠시 동안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래도 친구들은 일제히 "어머머 어머머, 이를 어째?"하면서도 웃음소리는 유쾌했다.


선실에서 바다를 보고 있는 사람들
선실에서 바다를 보고 있는 사람들정현순
선실에서 바다의 모습을 보는 재미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한동안 보고 있으면 저절로 잠이 올 정도로 평온해 보인다.

배에서 본 일출 풍경
배에서 본 일출 풍경정현순
'아니 이를 어째. 아까워서... 해가 벌써 떴잖아.'

배에서 멋진 일출을 보려고 기다렸는데 그 시간을 그만 놓치고 만 것이다. 새벽 6시쯤 일어나 선실로 나가니 주변은 칠흙처럼 어두웠다. 그곳이 바다 한가운데라 왠지 모를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선실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아 그냥 숙소로 가 버렸다. 20~30분 후에 다시 나와야지 하면서, 그러다 깜빡 잠이 들어 7시에 일어나서 나와 보니 해는 중천에 떠 있는 것이 아닌가. 정말 아쉬웠다.

잠시 정착한 페리호
잠시 정착한 페리호정현순
그래도 선실과 갑판 위로 올라가 주변을 구경했다. 다행히 날씨는 개는 듯했다. 그때 어느 항구인지 잠시 배가 서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배가 워낙 크다 보니 파도가 없을 때는 가는 건지 멈춘 것인지 아무런 감각을 느낄 수가 없었다. 무언가 내리고 올리려고 잠깐 정박한 모습이다. 어느 작은 항구의 모습이 한가롭고 평화스러워 보였다.

먹구름이 잔뜩 낀 흐린 하늘
먹구름이 잔뜩 낀 흐린 하늘정현순
그러나 잠시 후 다시 먹구름이 몰려왔다. 조금 걱정이 됐다. 바람도 어찌나 세차게 부는지 갑판 위에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갑판 위에까지 파도가 밀려 올라왔다. 어쩌다 입속으로 들어오는 파도의 잔재가 소금의 짠 맛을 느끼게 한다. 옆에서 사진을 찍던 다른 일행이 "어머머, 카메라에 바닷물이 튀었어"하면서 황급히 선실로 들어간다.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정현순
드디어 배가 벳푸항에 도착했다. 듣던 중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배멀미했던 친구들은 맨 앞에 줄을 섰다. 1분이라도 빨리 내리고 싶은 그 마음 알고도 남았다. 배에서 내리자 날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치미를 뚝 떼고 너무나 맑고 청명했다. 마치 우리나라의 가을 하늘을 보는 듯했다. 예정보다 1시간 정도 늦게 도착해서 일정에 조금씩 차질이 난다고 했다. 그래도 무사히 잘 도착했으니 그게 어딘가.

벳푸항에 도착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날씨가 좋았다. 벳푸항에 내려서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의 표정이 밝아 보인다. 맑고 신선한 공기가 몸 속으로 들어 오는 듯했다. 몸이 거짓말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친구들도 배에서 겪었던 짧은 고통을 모두 잊은 듯이 표정이 밝아졌다. 거리 양 옆에 탐스럽게 서있는 야자수, 일본에도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여행은 이래서 좋은 건가 보다. 견딜 수 없을만큼 힘들다가도 새로운 것을 만나면 금세 언제 그랬냐는듯이 기분이 새로워지고 좋아지니 말이다. 마치 우리나라의 제주도에 와 있는 것처럼 마음이 편해지고 푸근해졌다.

덧붙이는 글 | 3월 4일부터 7일까지 일본 오사카, 교토, 벳푸, 간사이 등등을 여행하고 왔습니다.

덧붙이는 글 3월 4일부터 7일까지 일본 오사카, 교토, 벳푸, 간사이 등등을 여행하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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