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체, 정부 부처의 공보·홍보 담당자들은 평일 저녁 7시를 전후해 광화문 동아일보 신사옥 앞에 모여 다음날 나올 10여 종의 초판 신문을 훑어보는 게 일과였다.
미디어오늘 이창길
이들은 자기 부처 또는 기업 관련 기사가 나오는지 모니터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행여 부정적인 기사가 나오면 이를 아예 빼거나, 제목과 내용을 수정하기 위해 신문사로 전화하는 등 여러 대응조치를 취했다. 사실과 다르다며 열심히 설명하기도 하고, 제목만이라도 바꿔 달라고 읍소하기도 하고, 광고를 가지고 은근히 거래를 하기도 했다.
그 날짜 신문 최종판인 수도권 배달판에 기사가 실린다면, 기사를 빼거나, 제목과 기사 내용을 수정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러하다 보니 수도권 배달판에 실리기 전, 정부 부처 홍보실 공무원들과 기업의 홍보 관계자들은 아직 수정의 여지가 있는 이 가판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이 가판의 존재는 종이신문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한 사례다.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정부 부처와 경제 권력을 가진 대기업 등이 가판 신문의 보도에 크게 영향을 받았으니, 신문의 위력은 그만큼 상당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는 본격적인 디지털 시대가 열리기 전까지 신문들은 이 가판의 영향력과 매력에 중독되어 있었다. 그러다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는 시대가 열리자 이 가판의 힘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2000년대 초부터 가판의 필요성과 영향력이 크게 떨어지고, 오히려 가판 발매의 비용이 신문사에 부담이 되기 시작하면서 가판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신문사 내부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신문사들은 쉽게 그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서로 눈치를 보기에 바빴다.
그러다 2005년 봄, 마침내 가판이 사라지게 되었다. 종이신문 쇠락의 한 면을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디지털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언론환경이 근본부터 바뀌기 시작했으며, 종이신문의 여론시장 장악력, 조·중·동 카르텔의 집중력도 해체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조·중·동 카르텔과 동굴 속의 메아리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가능하다. 조·중·동 카르텔은 특히 2011년 말, 이명박 정권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 탄생한 종합편성 채널의 날개를 달고 더욱 강력한 힘을 갖게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나는 이와는 다른 평가를 해왔다. 설령 종편의 날개를 달았다고 한들, 과거 신문이 여론시장을 압도하고, 특히 조·중·동이 이러한 신문시장의 60~70%를 장악하던 시절과는 다르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당시는 여론시장 자체가 한쪽으로 크게 기울어진 운동장 같은 모습이었다. 그래서 대통령 선거를 비롯한 정치 상황에 막강한 힘을 가지고 깊숙이 개입했다. 한때는 말 그대로 '밤의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무수히 많은 매체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렇게 영향력이 떨어지면서 더 정파적 보도에 매달리게 되고, 기사 제목과 내용, 편집 방식, 사설, 칼럼이 더 자극적인 감정 대응으로 흐르다 보니, 합리적 비판을 기대하는 젊은 층, 중도층의 독자·시청자들이 떨어져 나가는 경향이 지속되어 왔다.
그 결과 지금은 극우나, 강경 보수 등 일부만이 주된 독자·시청자층을 이루는, 좁은 동굴에 갇힌 형국이 되어버렸다. 이들만의 입맛에 맞는 주장과 이런 주장에 환호하는 목소리가 동굴 속에 울리면서 확증 편향은 더욱 심화되어 가는 형태다. 동굴 밖은 다른 세상이고, 특히 젊은 세대층은 크게 다른데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