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직원들이 오가고 있다. 2020.11.24
연합뉴스
"지금 한국의 기자실에서 기자들이 큰 소리를 내지만, 실제를 들여다보면 권력 기관의 울타리 안에 들어가 멍멍 짖으면서, 자기한테 힘이 있는 것처럼 보이려는 꼴이다. 실제로는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 것을 모른다. 기자들이 보도 자료를 제공받는 형식을 보면 (관공서가) 닭에게 모이를 주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 방식으로는 기자들이 자기도 모르게 (출입 기관에 의해) 콘트롤 당할 것이다."
-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사 출입처 제도와 취재 관행 연구' (박재영·허만섭·안수찬 공동연구. 2020.10. 97쪽)
<뉴욕타임스> 최상훈 기자의 말이다. 한국의 기자실, 출입처의 행태, 보도자료에 의존하는 보도 양태 등은 상식적인 기자라면 국적이 어디건, 기이하고 비정상적일 수밖에 없다. 보도자료를 베끼기 하는 한국 기자들 모습을 본 한 일본 기자는 "그게 기자인가"라고 되물었다.
"한국에 와서 가장 놀란 게 보도자료다. 보도자료 원고가 기사 형식으로 나온다. 심지어 어떤 기자는 보도자료를 '복붙'(복사 + 붙이기)해서 기사를 쓴다. 이거 보고 놀랐다. 그게 기자인가. 일본에도 보도자료가 나오지만 (기사) 원고 형식이 아니다. 기사는 우리가 직접 정리해서 쓴다. 그런 경우에도 보도자료에 없는 것을 찾아내서 쓰는 것이 기사의 부가가치이고 그만큼 특종이 되는 거니까, 남들 다 쓰는 걸 안 쓰려면 취재를 더 해야 한다. 전화하거나 찾아가거나 집에 가거나."
- 카미야 타케시 <아사히신문> 기자. (위의 책 99, 100쪽)
외국 기자들이 본 한국 기자
존 헨리 <가디언> 기자는 파리에 주재하는 교육 담당 기자다. 한국식으로 이야기하면 교육부를 출입하는 교육담당 기자인 셈이다. 위에 소개한 '언론사 출입처 제도와 취재 관행 연구' 팀이 영상으로 이 기자와 인터뷰하면서 "한국의 출입 기자들은 출입처 기자실에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라고 설명하자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우리는 전혀 그렇지 않다. 전혀 그렇지 않다"라고 두 번이나 강하게 부정을 했다고 한다.
"<가디언>의 교육 스페셜 리포터가 얼마나 자주 교육부를 가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교육부에서 특별한 발표가 있는 경우, 아마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그곳을 찾아갈 것이다. 그런 일이 없다면, 교육 스페셜 리포터는 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많은 시간을 교사, 부모, 학생들과 이야기하면서 보낸다". (위의 책 92쪽)
한국 기자가 보는 자신들 모습은 어떤 것일까.
"한국 언론의 비극이 여기 있는 것 같다. 기자는 엄청 많은데, 한 매체의 기자가 많은 게 아니라, 매체들이 많고, 각 매체의 기자는 적다. 그러니 120명이 넘는 국토교통부 출입 기자들이 부동산 기사만 쓰고, 기자단 전체를 통틀어 교통이나 항공 기사 쓰는 기자는 극히 드물다. 어느 출입처나 마찬가지겠지만... 이건 비극이다. 출입처마다 보도되지 않은 영역이 있다."
- 국토교통부 출입 기자 (위의 책 69쪽)
국토부 출입 기자들이 '부동산 기사'만 쏟아 내고, 교통이나 항공 문제는 거의 무시하는 이런 행태를 위의 책은 '뉴스 홍수' '뉴스 사막'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의 출입처 제도와 거기에서 만들어 내는 결과물은 언론이라 칭할 수 없는 수준의 것이 상당수다. 기사 '편식'에다 '복붙' '자판기'의 역할까지 하다 보니 기사 내용도 거의 비슷하다. 많은 경우 제목, 사용하는 단어, 문단의 배치까지 거의 똑같다.
한국에서 9년째 살고 있는 라파엘 라시드 기자(영국 프리랜서 기자)가 지난 3월 패션잡지 <엘르>(ELLE)에 기고한 '라파엘의 한국살이 #7 - 한국 언론을 믿을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는 한국 기자들이라면 꼭 읽어봐야 하는 글이다.
"팩트와 루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한국의 뉴스, '좋아요'와 클릭 수에 목매는 한국의 미디어와 관련한 다섯 가지 경험들"에 대한 글은 한국 기자들 모습이 어떠한지를 비춰주는 거울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언론은 형편없다! 뉴스를 아무리 읽어도 어떤 것이 진짜이고, 어떤 것이 가짜뉴스인지 도무지 구분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해도 한국 미디어는 정도를 넘어섰다. 독자를 기만한다고밖에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특히 다섯 가지 문제에서는 참담한 수준이다. 팩트 체크의 누락, 사실의 과장, 표절, 사실을 가장한 추측성 기사, 언론 윤리의 부재. 매일 뉴스를 읽을 때마다 적어도 이 중 하나의 문제와 맞닥뜨린다.
얼마나 부정확한 팩트들이 넘쳐나는지! 기사 곳곳에서 부정확한 인용구나 숫자들을 발견하는 건 굉장히 흔한 일이다. 정부나 기업이 주는 보도자료에 대한 의심 자체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냥 '복붙'이다. 팩트 체크가 없다."
폐쇄적인 통로 완전히 열어야
물론 훌륭한 기자, 좋은 기사도 많이 있다. '좋은 기사'로 뽑혀 상을 받는 기사들, 따뜻한 시선으로 사회의 아픈 곳을 보고, 사회 정의를 지향하면서 정확성과 공정성을 두루 갖춘 품격 있는 기사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라는 그레셤 법칙처럼 포털에 노출되는 압도적 다수의 기사는 거짓, 왜곡, 선정, 정파적 보도 등 '악화'가 넘쳐난다. 그게 한국 언론의 얼굴인 것처럼 비치게 되니 "한국의 언론은 형편없다"는 비판이 나오게 된다.
더군다나 법조기자단처럼 기자단, 출입처가 폐쇄적·배타적·독점적으로 운영되면서 권력 집단이 되다 보니 이런 행태가 외국 기자들 눈에 조롱거리로 될 수밖에 없다.
기자실, 출입처 제도를 개혁하는 하나의 방안은 기자단, 출입처라는 폐쇄회로 속에서 정보가 전달되는 통로를 완전히 열어 놓는 것이다. 참여정부가 2007년 시도하였다가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전 언론으로부터 융단 폭격을 당한 '개방형 브리핑' 제도다.
한국 언론의 오랜 악습이자 잘못된 관행인 지금의 기자단, 출입처 제도는 그렇게 열린 방향으로 가고 있다. 법조기자단 등 일부 출입처의 완고한 관행도 오래 가기는 어렵다. 디지털 혁명의 창조적 파괴가 온갖 장벽을 허물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시기에 구시대적인 폐습이 계속 남아 있기는 어렵다.
더군다나 '기자단이 기자실 출입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라는 법적 판단이 이미 19년 전에 내려졌다. 2001년 3월 개항을 하루 앞두고 인천국제공항 출입 기자단이 기자단에 등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오마이뉴스> 기자를 브리핑실에서 몰아냈다. 당시 상황을 <미디어스>가 최근 자세하게 전했다(<미디어스> 2020.12.04. '기자단, 기자실 출입 방해해선 안된다'는 19년 전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