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지 촌지 수수는 빙산의 일각"

영화사로부터 돈 받은 4개사 기자 10명 사법처리

등록 2002.03.14 21:10수정 2002.03.14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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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성 촌지를 받아 기소된 기자들이 소속된 4대 스포츠신문. 위로부터 일간스포츠, 스포츠조선, 스포츠서울, 스포츠투데이.

영화제작배급사와 인터넷 성인방송사로부터 금품을 받고 홍보성 기사를 써준 4개 스포츠신문사 기자들이 무더기로 검찰에 기소됐다. 그러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이번 사건이 고질화된 뇌물성 촌지 수수를 근절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서울지검 컴퓨터수사부(한봉조 부장검사)는 14일 이모(53, 스포츠서울 전 편집국장) 씨와 신모(37, 스포츠투데이 차장) 씨를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강모(40, 스포츠조선 차장) 씨 등 7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해외로 도주한 이모(44) 씨를 수배하고 기소 중지 처분을 내렸다.

검찰에 사법 처리된 기자들을 소속사별로 나누면 스포츠서울 3명, 스포츠투데이 3명, 일간스포츠 2명, 스포츠조선 2명으로, 작년 9월 창간한 굿데이를 제외한 모든 스포츠신문 기자들이 이번 사건에 연루됐다. 직급별로는 10명 중 9명이 차장 이상 전현직 간부급 기자들로 밝혀졌다.

검찰은 또한 비교적 적은 액수(5백만 원 미만)의 금품을 수수한 기자 4명은 입건하지 않고 회사에 통보조치를 취했다. 이중에는 중앙일간지의 영화 담당 기자도 2명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검찰 관계자는 "각기 회사가 다른, 이들 일간지 기자들의 경우 협박성 금품 수수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아울러 이들에게 돈을 건네준 CJ 엔터테인먼트(4262만 원), 튜브엔터테인먼트(2000만 원), 명필름(1250만 원), 사이더스(600만 원), 태원엔터테인먼트(500만 원) 등 5개 영화사와 인터넷 성인방송업체 한국TV(2600만 원)의 관계자 6명을 배임증재 혐의로 불구속 기소 또는 약식 기소했다.

스포츠신문 기자들의 대거 기소로 일단락된 이번 촌지 수수 사건 수사는 우연한 계기로 이뤄졌다. 작년 11월부터 1월 사이 서울지검 컴퓨터수사부가 인터넷 음란 성인방송에 대한 일제 단속을 벌이다가 성인방송 업자와 스포츠신문 기자들간의 유착 루머를 내사하게 된 것.

컴퓨터수사부는 "내사 결과, 루머가 상당히 신빙성이 있고 기사 관련 뇌물성 촌지수수가 관행화되었다는 정황을 포착했다. 이는 언론의 공익성을 파괴하는 고질적인 비리라고 판단, 수사에 착수하게 됐다"고 발표했다.


컴퓨터수사부에 따르면, 이들 업체들이 시사회 등의 명목으로 기자를 만나거나 저녁식사 내지 술자리에 기자를 불러내 보도자료와 함께 돈봉투를 건네는 등의 방법으로 촌지를 전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컴퓨터수사부는 "영화의 주관람층인 20∼30대 초반의 성인들이 주로 영화에 대한 정보를 스포츠신문에서 얻고, 신문기사가 영화 흥행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인지한 영화배급사들도 자사에 유리한 기사가 나오도록 접대 및 촌지를 제공하는 방법으로 기자들을 '관리'해온 것"이라고 밝혔다.


CJ 엔터테인먼트의 경우 단순 교제의 범위를 넘는 액수(한해 평균 2천여만 원의 촌지비와 2억여 원)의 접대비를 기자들에게 제공했음에도 불구, 기자들은 이를 기사를 써주는 대가로 당연시하고, 제공업체도 이를 흥행 성공을 위해 당연히 치러야 할 비용으로 간주했다.

컴퓨터수사부는 "이와 같은 분위기에서 입사초기 촌지를 거부한 일부 양심적인 기자들도 '왕따' 취급을 받고 기사를 써도 편집 과정에서 삭제를 당하는 등 불이익을 받자 결국 이런 관행에 굴복, 촌지 수수 관행에 젖어들었다"며 "이는 스포츠신문의 공익적 기능을 스스로 포기하고, 기자와 신문기사에 대한 불신만을 가중시킬 뿐"이라고 전했다.

수사 과정에서 이 같은 촌지 수수의 악순환 고리가 발견되기도 했다. 연예문화부의 일부 기자들이 편집국 간부로 승진한 후 휘하의 후배 기자들에게 촌지 상납을 요구하거나 아예 업체와 직거래를 통해 후배 기자들에게 관련 기사를 쓰게 한 경우도 있었다.

또한 일부 기자의 경우 관련 업체에 유리한 기사를 썼는데도 촌지를 주지 않을 경우 노골적으로 촌지를 요구하거나 '두고 보자'는 협박성 촌지수수의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한봉조 부장검사는 "짧은 시간에 밝혀진 사실일 뿐, 이번 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촌지 수수 기자들이 소속된 스포츠신문들과 이들을 자회사로 두고 있는 일간지들은 그 동안의 검찰 수사 기사를 거의 다루지 않아 촌지 수수 보도에 관한 한 '끈끈한 동업자 의식'을 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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