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에 와서 '휴가 간다'고 보고하는데
그건 휴가비 달란 소리 아니냐"

한나라당, '촌지' 살포 물의... 중앙지 기자도 거의 받아

등록 2002.07.24 10:00수정 2002.07.24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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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한나라당이 최근 일부 출입기자들에게 휴가비 명목의 촌지를 나눠준 사실이 밝혀져 물의를 빚고 있다. 사진은 지난 15일 오전 당사에서 열린 한나라당 최고위원 회의 광경.

한나라당이 최근 일부 출입기자들에게 휴가비 명목의 촌지를 나눠준 사실이 밝혀져 물의를 빚고 있다. 사진은 지난 15일 오전 당사에서 열린 한나라당 최고위원 회의 광경. ⓒ 연합뉴스

<오마이뉴스>는 작년 8월 민주당이 상당수 출입기자들에게 1인당 30∼50만원씩 여름휴가비 명목의 촌지를 뿌린 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 대다수의 신문 방송들이 애써 이를 보도하지 않았지만 이른바 '언론개혁'을 부르짖는 집권여당이 출입기자들에게 촌지를 살포하며 개혁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은 여론의 즉각적인 지탄을 받았다.

<오마이뉴스>는 최근 한나라당이 올해 들어서도 기자들에게 계속 촌지를 지급하고 있다는 제보를 접수하고, 한나라당 대변인실과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확인 취재를 했다. 취재 결과, 제보는 사실로 확인됐고, 상당수의 '촌지 수수' 기자들도 이 같은 사실이 당 밖으로 새어나간 것에 대해 곤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휴가철을 맞아 한나라당이 친밀감의 표시로 출입기자들에게 '성의 표시'를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두 아들 비리'에 대한 국민적 공분을 등에 업고 반사이익을 톡톡히 챙기고 있는 한나라당이 '부패정권 심판'의 슬로건이 무색하게도 출입기자들에게 촌지를 뿌려댄 것은 지급 경위와 규모를 떠나서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는 자기 회사도 아닌 출입처, 그것도 감시대상인 정당으로부터 휴가비를 받아챙긴 기자들도 마찬가지다...<편집자 주>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부패 정권 심판'을 기치로 내걸고 압승을 거둔 한나라당이 대변인실을 통해 최근 일부 출입기자들에게 휴가비 명목의 촌지를 나눠준 사실이 밝혀져 물의를 빚고 있다.

한나라당의 촌지 살포는 당의 공식라인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8.8 재보선을 앞두고 출입기자들로 하여금 당에 유리한 기사를 독려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익명의 한나라당 내부소식통에 따르면, 22일 오전 출입기자들을 물리치고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한나라당 대변인실은 당 지도부에 "21일 현재 수령 거부를 밝힌 서너명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자들에게 1300만원 정도의 휴가비를 지급했다"고 보고했다.

이 회의에는 이회창 대통령 후보와 서청원 대표최고위원 등 최고위원들, 실장급 이상 고위당직자들이 참석했는데, 당 지도부는 촌지 수수를 거부한 서너 명의 기자가 누구인지는 특별히 문제삼지 않고 "가능한 모든 출입기자들에게 (촌지가) 골고루 배분되도록 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촌지를 받지 않은 '서너명의 기자들'중에는 <오마이뉴스> 정치팀 기자들도 포함됐는데, 휴가비는 각 회사당 중앙언론사 20만원, 지방언론사 30만원씩 지난 18,19일 양일간 집중적으로 살포된 것으로 밝혀졌다.

한나라당이 언론사마다 나눠준 봉투에는 1만원권 현찰 30장씩이 들어있었는데, 이와 관련 촌지를 거부한 익명의 출입기자는 "민주당이 더러 촌지를 수표로 주는 일이 있었지만, 한나라당은 철저히 '현찰 박치기'를 선호했다. 아마도 나중에 추적받을 것을 대비한 것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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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언론사의 경우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겨레> 등이 촌지를 거부한 가운데, 지방언론사는 52개 출입사중 3분의 2가 촌지를 수령한 것으로 확인됐다.

"<오마이뉴스>도 찍힌 것 같은데, 너무 튀지 마라"

<오마이뉴스>가 한나라당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확인에 나서자 대부분의 기자들은 "나는 모른다" "나는 안 받았다"면서도 당 차원의 촌지살포 자체는 부인하지 않았다. 일부 기자들은 "회사당 20∼30만원이니 나누면 정말 얼마 안 되는 돈이다. 그런 게 무슨 뉴스거리가 되냐?"며 짜증 섞인 반응을 보였다.

비교적 성의 있는 반응을 보인 출입기자들의 답변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취재원 보호를 위해 기자들의 소속사와 이름은 밝히지 않는다.

"내가 어느 회사인지 밝히지 않으면 아는 대로 얘기하겠다. 당 차원에서 정기적으로 나온 게 작년에는 6번이었다. 올해는 올초와 늦봄에 20만원씩 나왔으니 이번이 3번째다. 돈을 워낙 은밀히 나눠주니 돈이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도 모르는 기자가 있을 수도 있다. 나도 이번에 대변인실에서 전화를 해줘서 알았지, 어쩌면 출입반장이 모두 챙겼을 지 모른다."(A신문 이모 기자)

"대변인실에서 휴가비를 주면서 '절대 다른 기자들에게는 얘기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더라. 그러나 돈 얘기가 어디 제대로 비밀이 지켜지나? 출입 기자들사이에도 '누구는 얼마 주고, 누구는 아예 안 줬다'고 오해가 눈덩이처럼 커져 은근한 알력이 생겼다. 돈 몇 푼으로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현상이 만연된 것이다. 젊은 기자들 사이에서는 '이러지 말자'는 얘기가 나오지만, 선배들은 또 다른 분위기다." (B일보 최모 기자)

"모 부대변인이 '지방 선거때 수고했다. 휴가비 나왔으니 찾아가라'고 직접 전화를 해왔지만, 안 받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서 작년에는 얼마 정도 받아썼다. 올해는 월급도 제대로 나오고 해서 거절했지만, 작년에는 (거절 못한 게) 솔직히 부끄러웠다. 촌지가 하루아침에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나처럼 개별적으로 거부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없어지지 않겠나?"(C일보 임모 기자)

"김영선 의원이 수석부대변인 되면서 밥 한 끼 산다는 것도 거절했다. 내가 국회 밥 1800원짜리 먹으면 먹었지, 거지도 아니고... 작년 가을에도 대변인실로부터 발렌타인 17년산 2병(시중가 병당 12만원)을 택배로 받았는데, 포장을 푸니 30만원이 들어있더라. 이건 아니다 싶어서 다시 포장해서 반송했다. 10년 넘게 기자생활을 해온 내가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나? 참담한 기분이었다." (D신문 김모 기자)

"한나라당에는 대략 200여개 언론사가 출입하는데, 한나라당에서 특별히 이뻐하는 언론사는 대략 30∼40개정도 되는 것 같다. <오마이뉴스>도 찍힌 것 같은데, 너무 튀지 마라.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 몇 푼 받아도 비판 기사만 제대로 쓰면 양심에 꿀릴 일 없다. 이번 휴가비도 큰 부담없이 받았고, 내 기사에 영향을 주리라고 보지 않는다."(E신문 유모 기자)


'받은 사람들'이 고백한 이상 이제 '준 사람'의 실토만이 남게 됐다. 대변인실을 무작정 찾아가봤자 이런 일에 모르쇠로 일관할 게 불을 보듯 뻔했다. 결국 기자는 진실을 듣기 위해 '<오마이뉴스> 기자로서는 해서는 안될 억지'를 부려야만 했다.

한나라당 부대변인 "내가 사비로 휴가비 채워준 적도 있다"

22일 당사를 찾아간 기자가 "왜 <오마이뉴스> 출입기자들에게는 휴가비를 안 줬냐?"고 추궁하자 대변인실 관계자는 순간 당혹스러워하다가 결국 '오프더레코드'를 전제로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 한나라당 측은 '오프더레코드'를 전제로 해명했지만, <오마이뉴스>는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해명 내용을 보도하기로 결정했다.)

이 관계자는 "일부한테 한 것은 사실이지만, 다 주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된 듯 싶다. 우리가 굳이 안 줘도 되는데, 일부 기자들이 "휴가 간다"고 와서 보고를 계속 하길래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휴가 간다는 얘기가 돈 달라는 얘기 아니냐? 못 들은 척 할 수 없어서 얘기하는 회사는 휴가비를 줬다. 첫날 3군데인가 지급이 됐는데,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 주냐'고 항의하는 기자들이 있었다. 그 말 듣고 아차 싶었다. '<오마이뉴스>에 올리겠다'는 기자도 있었다"며 "모 지방지에서는 휴가비가 부족하다고 항의해서 내가 사비로 30만원을 더 털어서 지급하기도 했다"고 남모를 고충을 털어놨다.

그러나 출입기자들은 "누가 우는소리를 했다고 그러나?"라고 펄펄 뛰며 "한나라당에서 먼저 주겠다고 봉투를 준비했다더라. 지방선거 끝나고 8.8 재보선 앞둔 상황에서 격려 차원에서 마련한 것으로 안다"며 대변인실 해명을 정면으로 반박해 촌지 살포 배경을 둘러싼 진위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중앙지에 대한 휴가비 지급과 관련해서도 "한겨레, 조선, 동아 등 몇 군데는 아예 안 받는다"면서도 "25개 중앙언론사중 실제로 받은 곳은 몇 군데 안 된다. 지방지는 몇 개 더 있다. 전부 합치면 10군데는 넘는다"고 설명해 일부 중앙지의 촌지 수수를 사실상 인정했다. (* 이 관계자는 나중에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와 "중앙지 얘기는 <오마이뉴스>의 유도심문에 넘어가서 실언했다"며 진술번복과 함께 기사화하지 말아달라고 거듭 부탁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기자들에게 아예 돈을 안 주면 진짜 말은 없고, 대신 좀 다른 식으로..."라고 말을 흐려 당에서 촌지를 안 줄 경우 일부 기자들이 보복성 기사를 쓰는 경우도 있음을 시사했다.

이 관계자는 "왜 정당 예산으로 기자들에게 휴가비를 주느냐?"는 질문에 "우리가 여당일 때, 그런 관례가 있었다. 작년 민주당 촌지 건이 문제됐을 때도 어떤 출입기자가 "논평낼 거냐"고 물었을 때, 당에서는 '우리도 몇 년 전에 그랬다'고 답변한 적이 있다"며 "이것은 동양적 관행이다. 없어져야 할 구태는 맞지만, 많은 돈이 아닐 때 성의로 생각하고 주고받았다. 앞으로는 이런 관행이 없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계속 받다가 어쩌다 안 주면 욕하게 되더라"

독자들중에는 "총액은 1천만원이 넘지만, 출입기자별로 나누면 얼마 안 되는 돈인데, 너무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게 아닌가?"라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지 모른다. 그러나 취재중 만난 한 중견기자의 체험담은 <오마이뉴스>의 문제제기에 대한 적절한 부연 설명이 될 듯 하다.

"어느 당이건 당에서 주는 것과 별도로 개인적으로 친한 의원들로부터도 알음알음으로 촌지를 받는 경우가 있다. 초재선 의원들은 점차 이런 관행에서 벗어나고 있지만, 3선 이상 중진의원들은 인터뷰 한 번 하고 나면 30∼50만원씩 나눠주곤 한다. 인터뷰 끝나고 2진 기자와 카메라기자가 먼저 방을 나오면, 1진 기자에게 인사치레로 두툼한 봉투가 전달되는 게 보통이다.

한 번은 친한 의원과 인터뷰하고 나오는데, 의원이 '요즘 돈 쓰는 일 많아서 (촌지 못 줘서) 미안하다'고 양해를 구했다. 나는 그런가보다 생각하고 밖에서 기다리던 후배 기자들에게 사정을 설명했더니 후배들이 '그 동안 선배가 도와준 게 어딘데, 이런 날 안 준다'고 그 의원을 막 욕하더라.

자꾸 받다가 나중에 못 받으니까 기자들이 나서서 불평하는 것을 보고 액수가 많고적고 문제가 아니라 촌지는 정말 없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나라당과 일부 출입기자들이 촌지를 매개로 '한 식구' 의식을 두텁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 당장은 당사자들을 난처하게 할 수 있다. 그 동안의 촌지 적발 사례에서 보듯 힘있는 신문-방송사들이 담합, 아예 보도하지 않으면 여론의 비판을 피할 수 있으리라고 안이한 판단을 하는 기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마이뉴스>가 이 문제를 굳이 거론한 것은,'촌지'로부터의 해방이 출입기자들로 하여금 떳떳이 비판 기사를 쓰고, 한나라당으로서도 구태와 단절하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기 때문이다.

작년 '촌지 수수'로 홍역을 치른 민주당에서 한 출입기자가 "이제 촌지 안 주냐"고 질문하자 "주고 싶어도 몇몇 언론에서 하도 두들겨대니 무서워서 못 주겠다"는 당직자의 답변을 들었다는 얘기가 전해오고 있다.

국민들이 자당 출입기자들의 휴가비를 챙겨주는 정당의 '부패정권 심판' 구호를 어떻게 바라보겠는가? '깨끗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이회창 후보의 약속이 제대로 실현될 지 묵묵히 지켜보는 눈길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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