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 촌지 안 받으면 못사나
금감원, 기자단에 촌지 살포 물의

'세미나 참가비' 명목 20만 원씩 돌려...골프 접대도

등록 2002.04.18 09:33수정 2002.04.19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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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오마이뉴스>의 기사제보란에 한 통의 제보가 날아들었다. 제보자는 현직기자 신분인 자신의 가족이 얼마전 한 행사에 취재차 참석했다가 주최측으로부터 접대와 함께 촌지(현금)를 받아온 사실을 알게 됐다며 <오마이뉴스>가 이를 취재, 보도해 줄 것을 요청했다.

<오마이뉴스>는 제보자의 제보내용을 토대로 문제의 행사를 추적한 결과 촌지 살포 기관이 금융기관의 분담금 등으로 운영되는 국가기관(금융감독원)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특히 이 기관은 매년 관행적으로 기자들에게 수 백만 원대에 달하는 돈을 '세미나 참가비' 명목으로 사실상의 촌지를 제공해온 사실도 밝혀냈다.

언론계의 촌지수수 관행은 이미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또 누차에 걸쳐 언론계 내부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아직도 시정되지 않고 있어 언론계의 대대적인 자정노력이 시급하다 하겠다. <오마이뉴스>는 언론계의 '촌지 관행' 타파를 위해 자신의 가족의 부끄러운 면까지도 기꺼이 제보해 주신 제보자의 고발정신을 높이 평가하며 거듭 제보에 감사드린다. <편집자 주>


▲기자들의 촌지 수수 문제가 다시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사진은 최근 금감원 출입기자들이 세미나 행사 취재후 받은 촌지 액수인 20만 원을 펼쳐보인 모습. ⓒ 오마이뉴스


금감원, 출입기자단에 수백만 원대 촌지와 골프접대 물의

정부의 주요 경제정책 기관인 금융감독원이 최근 세미나를 명목으로 출입기자단을 강원도 콘도에 초청, 참가비 명목으로 수백만 원대의 촌지를 뿌리고 폭탄주 등의 향응과 함께 일부 기자들에게는 골프 접대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최근 일부 영화홍보사의 스포츠 신문 등의 기자에 대해 무차별적인 촌지를 뿌린 이후 정부 주요기관 역시 기자들에게 거액의 촌지 살포가 확인돼 언론계의 고질적인 촌지 문화와 기자 윤리가 또 다시 도마 위에 오르게 됐다.


특히 금감원은 이같은 세미나를 매년 봄과 가을에 걸쳐 두 차례씩 정례적으로 실시해 오고 있으며 그때마다 기자 한사람에게 20만 원의 촌지성 참가비와 함께 식사, 골프 접대 등을 관행처럼 해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관련기사]
삼성전자, 홍보행사 취재기자에 거액 향응접대-김종철 기자


16일 금융감독원과 일부 언론사 기자 등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 12~ 13일 1박2일 일정으로 강원도 한솔오크벨리에서 출입기자단을 대상으로 '신용카드 시장의 건전화 및 효율화 방안'이라는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금융연구원의 김병덕·이건범 박사가 현행 신용카드시장 진입제도에 대한 주제발표가 있었고, 이같은 내용은 월요일자 대부분의 신문 경제면에 주요하게 실렸다.

"우리는 이슬 먹고 산다"
금감원 출입기자단, 거칠게 항의


18일 <오마이뉴스>의 '금감원, 출입기자단 촌지 살포 물의' 기사가 나간 이후 금융감독원 출입기자단 소속의 일부 기자들은 "촌지가 아니며 이번 기사는 기자단 전체의 명예에 큰 상처를 주는 것으로 유감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자신을 금감원 출입기자로 밝힌 A기자는 "금감원 기자단은 다른 어떤 경제부처나 기업들의 출입기자단보다 깨끗해 '이슬을 먹고 사는 기자단'이라고 말할 정도다"면서 "이번 기사로 기자들이 매우 격앙돼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A 기자는 이어 매우 흥분되고 떨리는 목소리로 "촌지가 아니고 분명히 패널 참가비로 받은 것이다. 촌지라고 무슨 근거로 단언하면서 제목을 뽑는가. 제목이라도 빨리 바꿔라"고 요구하면서 "이 문제를 쓰려면 다른 경제부처, 재계나 기업(출입기자단) 등 썩어 빠진 곳이 얼마나 많은가. 그쪽과 형평에 맞는 취재가 이뤄지고 기사가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B기자는 "기사를 잘 봤으며 일부 기자들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사실상 촌지라고 생각한다"면서 "문제는 이곳 뿐 아니라 경제 관련 부처나 단체의 세미나에 문제가 더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일부 방송사기자는 <오마이뉴스>로 전화를 걸어와 해당 세미나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해명하면서 기사에 반영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금감원 출입기자 40여 명과 함께 금융감독위원회와 금감원의 각 실, 국별 국장급 간부 등 30명 이상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미나 패널 참가비'라는 이름의 20만 원이 든 흰 봉투는 첫날 세미나 초반부에 자료와 함께 기자들에게 전달됐고, 이후 기자와 금감원 간부들 사이에 식사와 술자리가 이어졌다. 13일에는 아침 일찍 서울로 돌아온 기자이외 일부 기자들은 등산과 골프 등을 즐긴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위원회 윤병로 공보관은 "촌지는 아니며 세미나에 참가한 기자들에게 패널 참가비를 준 것이며 모든 출입기자에게 돌아간 것이 아니다"면서 "참가비를 받은 기자들로부터 영수증까지 받았다"고 영수증 사본을 공개했다. 하지만 세미나 예산과 참가비 지출 내역에 대해선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언론 사회단체에서는 대규모 학술 세미나라고 해도 패널 자격으로 토론에 참석하는 인원이 10명을 넘지 않는 점을 감안할 때 40명이상이 집단으로 패널로 참가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금감원이 기자들에게 패널 참가비라는 명목으로 돈을 뿌린 것은 사실상 촌지의 다른 형태라는 것이 중론이다.

금융감독원 출입기자단에는 연합뉴스와 조선, 중앙, 동아 등 종합일간지(영자지 포함) 14개사와 매일경제, 한국경제 등 경제지 6개사, KBS, MBC, SBS, YTN 등 7개 방송사와 , 그리고 국제신문 등 지방지 3개사와 인터넷을 포함한 기타 경제관련 7개 언론사 등 모두 37개 언론사에 50여 명의 기자들이 가입돼 있다.

한편 이번 세미나에 참석하지 않은 언론사는 영자신문인 <코리아타임스>와 MBC, 그리고 외신으로 등록된 일부 언론사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지난 주말 한솔오크벨리에서 기자단 세미나를 열었다. 기자단에 촌지와 함께 배포된 자료(위)와 이번 세미나와 관련한 금감원의 공식입장 ⓒ 오마이뉴스
세미나장 입구에서 20만 원 든 흰봉투, 폭탄주와 골프 접대 이어져

출입기자 40여 명은 지난 12일 오후 4시와 4시20분 두 차례에 나눠 서울 여의도 금감원 빌딩 앞에서 버스를 타고 강원도 원주의 한솔 오크벨리로 향했으며 오후 7시께 세미나 장소에 도착했다.

이어 오후 7시 30분께 오크벨리 콘도 세미나실 입구에서 '신용카드 시장의 건전화와 효율화 방안'이라는 제목의 세미나 자료와 참가비 명목의 20만 원이 들어있는 촌지와 영수증이 참석 기자들에게 전달됐다. 금융연구원 김병덕, 이건범 박사의 주제 발표와 함께 한 시간 가량 토론이 토론이 진행됐으며 대부분의 기자들이 세미나에 참석했다.

세미나가 끝난후, 8시 30분께 인근 한식당으로 자리를 옮긴 기자단과 패널, 금감원 고위 간부 등은 저녁 식사와 함께 맥주와 양주 등을 주문해 폭탄주가 서너배씩 돌았다. 이어 일부 기자들의 경우 촌지 금액으로 별도로 술을 먹거나 금감원 간부들과 포카 등 카드를 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3일 오전 9시께 아침식사를 마친 일부 기자들과 금감원 관계자들은 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으며 나머지 기자들과 금감원 관계자 등은 팀으로 나뉘어 오크벨리의 18홀 골프와 등산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골프 라운딩 요금과 등산 비용은 금감원쪽에서 부담했다.

금융연구원 김병덕 박사는 16일 "세미나 2~3일 전에 자료를 금감원쪽에 보내줬으며 주최쪽의 일정에 따라 움직였을 뿐 촌지가 건네진 것에 대해선 잘 모른다"면서 "일요일(14일)에는 몇몇 기자들과 (골프) 라운딩을 했고, 정확히 몇 명의 기자들이 참석했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 김연섭 공보실장은 "세미나에서 지급된 참가비는 정당한 예산 편성과 집행 절차에 따라 정해진 금액을 지출됐으며 부당하게 집행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수백만 원에 달하는 골프 라운딩 비용도 예산에 편성됐는가라는 질문에 김 실장은 "뭐라 말할 수 없다"고 언급 자체를 꺼렸다.


한솔 오크벨리는?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에 위치한 한솔오크벨리는 340만 평의 자연을 가지고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종합생태 관광단지로 꾸며져 있고 사계절 종합휴양리조트로 유명하다.

세계적인 건축 설계사 WATG사의 설계로 다른 콘도들과 달리 사용 기자재나 인테리어 소품들이 매우 고급스럽고 38, 46, 48평 등 넓은 평형을 중심으로 550여 개의 객실을 가지고 있다.

객실 내부는 국내 최고급 콘도에 걸맞게 특급 호텔 스위트룸 수준의 객실 인테리어와 시설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국내 최초 골프장내 객실에서 골프장 조망이 가능한 빌라형 콘도가 지어져 있다.

부대시설로는 18홀의 회원제 골프장을 비롯해 실내외 수영장, 골프 연습장, 사우나, 유아보호실, 체력단련실 등을 가지고 있고 대형 연회장도 마련돼 있어 단체 관광객들이 자주 찾고 있다.
기자들, 부끄러운 일이다…일부 기자들, 촌지수수 부인

세미나에 참석했던 중앙일간지 A기자는 "금감원이 주최하는 세미나는 이같은 형식(촌지와 향응, 골프접대 등)으로 일년에 두 차례씩 진행돼 왔으며 관행화 된 상태"라며 "이번에 참가비로 20만 원이 나왔지만 전에는 액수가 더 많았고 매번 (받을 때마다) 갈등은 했지만 결국 돌려주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B기자는 "세미나가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서울에서도 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본다"면서 "주말을 이용해 콘도 등으로 나가는 것은 사실상 세미나를 핑계로 술과 골프를 치러 가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자단에 가입돼 있는 일부 지방 일간지 C기자는 "딱히 촌지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고 금감원에서 해마다 이뤄지고 있는 행사여서 특별한 문제의식 없이 (기자들이 돈을) 받은 것 같다"면서 "잘못된 관행이라는 지적은 옳다고 생각하며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일부 기자들의 경우는 "촌지라는 지적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경제일간지 D 기자는 "관점에 따라 다르다고 본다. 세미나에 정당하게 참석하고 토론에 참가한 참가비 형식으로 받은 돈이며 영수증 처리가 됐다"면서 "촌지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바쁜 취재일정 가운데 이틀간 일정을 포기하면서까지 참석한 비용치고 적다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은가"라며 되물었다.

하지만 골프라운딩 요금을 금감원쪽에서 부담한 것에 대해서 D 기자는 "그건 주최쪽에 물어보는 게 좋겠다"며 언급을 꺼렸다.

또 다른 출입기자인 E 기자는 "세미나에 참석했지만 촌지는 받지도 않았으며 그런 얘기를 들어보지도 못했다"면서 "14일 아침 버스로 서울에 올라왔고 남아있던 기자가 얼마나 됐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면서 촌지 수수를 부인했다.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에 대해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최민희 사무총장은 "(기자에 대한)촌지수수와 골프 향응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면서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금감원이 참가비라는 편법을 합리화 하기 위해 영수증까지 끊었다면 돈을 받은 기자와 총 지출 비용 등 내역을 공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김용백 위원장도 "취재원들의 기자에 대한 촌지와 각종 향응 접대 등의 언론 고질적인 문제가 여전하다"면서 "최근 삼성전자의 향응 접대를 비롯해 이번 정부 기관의 촌지와 골프 접대에 대해 부끄러운 일이며 오는 23일 기자 윤리위원회에서 정식으로 이들 문제를 다룰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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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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