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금횡령혐의' 군수, 되레 군의원을 꾸짖다

[取중眞담] 금산군의회 회의록이 주는 놀라움

등록 2005.01.02 16:02수정 2005.01.03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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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기 금산군수
김행기 금산군수금산군청 홈페이지
기자가 새해 아침 가장 먼저 읽은 책은 철 지난 금산군의회 임시회 회의록이다. 지난해 11월 중순에 열린 두꺼운 회의록을 이제야 넘겨볼 작정을 한 건 순전히 김행기 금산군수의 최근 행적 때문이었다.

김 군수는 최근 시민단체에 의해 충남시장군수협의회 기금을 횡령한 혐의로 고발돼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았다. 김 군수는 충남시장군수협의회 총무로 있던 지난 2000년- 2002년 6월까지 공금으로 조성한 협의회 기금 1억 5000만원을 나머지 시장 군수들과 나눠가진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전 비서실장 등 김 군수의 측근인사 3명이 최근 잇달아 공금횡령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검찰은 구속된 측근과의 연관성을 밝히기 위해 김 군수의 관사와 집무실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이기도 했다.

김 군수는 지난해 초에는 의회 행정사무감사 과정에서 일용직 여직원을 5년여 동안 자신의 관사로 출근시켜 청소와 빨래 등 파출부 일을 하도록 한 것으로 밝혀져 물의를 빚기도 했다. 공무원이 관사로 출근해 군수 가정의 빨래를 널며 집안일을 해온 것인데 여직원의 인건비는 군 재정으로 지출돼 왔다. 전남 모 군의 자치단체장도 지난 2002년 김 군수처럼 일용직 여직원을 관사에서 일하게 하다 행정자치부로 부터 인건비 전액을 환수조치 당한 바 있다.

공무원 관사 불러다 5년 동안 빨래-청소일 시켜

'군정질의'가 담긴 의회 회의록에는 이같은 사안에 대한 군의원의 질의와 김 군수의 답변이 비교적 길게 실려 있었다.

기자가 놀란 것은 김 군수의 '의외'의 답변 내용이다.

금산군의회 김용환 의원은 이날 질의를 통해 김 군수에게 "공금으로 조성된 협의회 기금을 다른 시장 군수들과 나눠 가진 뒤 이를 9개월 후에서야 반납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김 군수가 공금 1100여만원을 배분받은 뒤 감사원의 지적을 받고서야 군 재무과에 입금조치한 사실을 문제삼은 것이다. 김 군수는 또 반납한 이 돈 마저 개인명의가 아닌 '행정지원과'명의로 입금해 공금으로 대납한 것 아니냐는 또 다른 의혹을 사고 있다.


그러나 김 군수는 "당시 충남시장군수협의회 총무를 봤다"면서도 "회비의 깊숙한 집행 내역은 이 자리에서 얘기할 사항이 아니다"며 답변을 거절했다. 김 군수는 "말할 수 있는 것은 협의회비가 단 1원도, 단 하루도 개인 통장에서 잠을 자거나 유용된 일이 없다는 것"이라고 강변했다.

공금을 사적으로 배분하고 감사원 지적이 있기까지 9개월 동안 가지고 있었던 '사실'에 대한 답변치고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물론 기자가 '구렁이 담 넘어 가듯 한 답변'을 놀라워 한 것은 아니다.

김 의원은 이어 김 군수에게 "지난 98년부터 2003년 까지 5년여 동안 군수관사에 일용직 공무원을 불법파견한 인건비를 변제할 의사가 없느냐"고 물었다.

김 군수는 "의원이 불법이냐 아니냐를 판정할 권한이 있느냐"며 "불법이라는 증거를 대라"고 역공을 폈다. 김 군수는 이어 '불법'이라는 용어 사용을 문제삼아 질의 의원에게 "사과하라"고 거듭 요구했다.

김 군수는 또 "(다른 군수가 있던) 81년부터 관사 시설관리를 해왔다"며 "따라서 관사운영에 대한 책임은 의회와 공동책임이 있다고 본다"고 되받았다. 의회가 지난해 행정사무감사를 통해 문제를 제기한 것을 두고 '지적하지 않은 동안에 대해서는 의회도 책임이 있다'는 논리를 들이댄 것이다.

의원 "불법파견 공무원 인건비 변제의향 없나"
군수 "불법 판정할 권한 누가 줬나? 사과하라"


잠깐 해당 의원과 김 군수간 질의와 답변의 요지를 들여다 보자.

김용환 의원 "금산군 관사운영 조례에는 관사운영비는 사용자가 부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인건비는 관사를 운영하는 사용자가 부담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관사에 불법파견한 공무원 인건비를 변제할 의향은 없으신지요?"
김행기 군수 "질문 끝났습니까? 아까부터 '불법지출' '불법 파견'하는데 불법이라고 하고... 어떻게 확인된 거죠?"

김 의원 "불법으로 볼 수 밖에..."
김 군수 "김 의원님이 불법을 판정할 수 있는 그런 권한이 있으십니까?"

김 의원 "조례를 보세요."
김 군수 "아니, 불법이라는 용어를 쓸 때는 행정적 사법적 권한자에 의해 판정된 것을 가지고 인용해야죠. 죄인이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해도 죄가 확정될 때까지는 죄인취급은 안하거든요.(중략) 김 의원님이 불법 지출이라고 해서 그게 확정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김 의원 "관사 운영부담에 관한 우리군 조례를 보면 관사운영비는 사용자 부담 원칙으로 돼 있어요. 다만 1호에서 8호에 해당하는 경비는 예산에서 지출할 수 있는데 인건비는 해당되지 않거든요. 더군다나 공무원이 관사에 파견 나가 있다면 그것이 불법이 아니고 합법입니까?"

김 군수 "합법이냐 불법이냐에 관한 주무과장의 의견은 (관사도 청사의 일부이기 때문에) 합법적인 것으로 보는 견해를 보이고 있습니다. 또 (주무부서는) 그런 해석의 권한이 있다는 거죠. 김 의원 처럼 불법이라고 보는 견해는 김 의원님의 견해입니다. 김 의원님의 견해가 맞을 지 주무과장의 견해가 맞을지는 유권적 기관이 확인을 한 후에 사실로 확정된 이후의 얘기예요. 김 의원님의 견해를 가지고 사실로 확정지어 몰아붙이는 것에 따른 미치는 영향과 불법성에 관해서 생각해 봤냐구, 김 의원님이 말하면 전부 사실이고 진리입니까?"

김 의원 "제가 진리라는 얘기는 안했습니다."
김 군수 "내가 묻는 것에 답변을 하세요. 왜 불법 지출된, 언제 지출됐냐 누가 확인했느냐 얘기요... 그 사실을 지금 증명해 달라는 겁니다."

김 의원 "결국 헌법적인 해석을 찾아야겠다는 얘기입니까? "
김 군수 "김 의원이 불법지출됐다고 질의한 걸 입증을 하시라는 말씀이예요."

김 의원 "상위법에 의해서.."
김 군수 "아니 지금 질문했으니까 답변하셔야죠. 일문일답 아닙니까."

김 의원 "그러니까 지금 제가 말씀드리쟎아요"
김 군수 "증거를 대시라구요. (중략..)"


결국 군정질의는 질의자와 답변자가 뒤바뀌고 김 군수가 거듭 "김 의원으로부터 내가 사과받아야 한다. 명예를 소중히 하는 군수로 살고 싶다"는 말로 끝맺고 있다.

군의회에 출석해 군민을 대표한 의원에게 억지 논리를 내세워 되레 사법기관의 유권해석을 받아 오라며 꾸짖는 군수의 적반하장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할까. 의회 경시성 김 군수의 발언을 누구도 문제삼지 않는 무덤덤한 의원들, 김 의원 외 이같은 현안에 의문조차 갖지 않는 의원들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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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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