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군수의 '하루살이' 장항산단 소신

[取중眞담] "정부안 반대"(23일)-> "검토하겠다"(26일)-> "수용 못 한다"(28일)

등록 2007.03.02 13:30수정 2007.03.02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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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해 8월, 충남 장항어민들이 충남도청 앞에서 나소열 서천군수와 이완구 충남도지사 규탄 시위를 벌이며 갯벌 매립 계획을 철회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충남 장항어민들이 충남도청 앞에서 나소열 서천군수와 이완구 충남도지사 규탄 시위를 벌이며 갯벌 매립 계획을 철회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심규상

하루살이라는 곤충이 있다. 애벌레는 물속에서 2~3년 살지만 탈피한 하루살이의 수명은 한 시간에서 길어야 며칠 정도다. '하루살이 인생', '하루살이 목숨'이라는 말도 이 때문에 나왔다.

최근 나소열 서천군수의 장항갯벌에 대한 대응 과정은 '하루살이 소신'을 떠오르게 하기에 충분하다.

@BRI@환경부는 지난달 22일 장항갯벌을 매립하지 말고 장항일대를 관광, 레저단지 등으로 조성하는 것을 골자로 한 '어메니티 서천 2020 프로젝트'를 추진하자고 서천군에 제안했다.

관계부처 합동안 성격인 이 제안의 골자는 모두 1조7959억원(정부투자 6859억원)을 들여 국립생태원과 해양생태자원관, 에코벤처 단지, 관광단지 등을 조성해 21세기 지식기반형 기업 생태도시를 건설한다는 내용이다.

게다가 이날 제안은 나 군수가 하루 전인 21일, 국무조정실을 방문해 '내일 방문하겠으니 정부안을 설명해 달라'는 요청에 따라 이뤄졌다는 것이 환경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나 군수는 하루 만인 23일 정부 대안에 대한 공식 반대 입장을 밝혔다.

나 군수는 "환경부장관의 입장 표명에 불과한 것으로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다"며 "정부는 서천군민들이 수용할 수 없는 대안을 빌미로 장항국가산업단지를 또다시 지연시키지 말고 즉시 착공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에 환경부 관계자들은 나 군수를 직접 찾아가 환경부의 독자안이 아니라 주무부처인 건교부와 해수부 등과 협의한 정부 합동안 성격임을 거듭 설명했다.

이어 26일, 나 군수는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나 군수는 이날 '장항산단 즉시착공 대정부투쟁 비상대책위원회'와 연 간담회에서 "환경부의 제안을 거부한 것은 환경부의 독단적인 대안으로 (잘못) 알았기 때문"이라며 "정부안이라면 군민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고 그쪽(환경부)에서 공식 요청이 온다면 거부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또 "정부가 보증할 수 있는 사업이라면 군 조직을 동원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나 군수의 이 같은 입장에 이완구 충남지사가 나서 "군민의 대표자가 그동안 (선착공 후보완) 의사 표시를 했으면 그만이지 왜 환경부 제의를 받아들이겠다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충청도 사람이 바보 될까봐 걱정스럽다"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장항갯벌-지역어민'도 '하루살이 목숨'?

a 2005년 10월, 나소열 서천군수가 과천정부청사 앞에서 열린 '11·2 방폐장 주민투표 중단을 위한 범서천인 집회'에 참석해 규탄사를 하고 있다.

2005년 10월, 나소열 서천군수가 과천정부청사 앞에서 열린 '11·2 방폐장 주민투표 중단을 위한 범서천인 집회'에 참석해 규탄사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하지만 나 군수는 거듭 "정부안에 대해 군수가 군 조직을 통해 검토조차 못하는 건 아니다"라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로부터 나 군수의 후속 입장이 나온 것은 꼭 하루 반 만인 28일이다. 나 군수는 이날 군청 회의실에서 지역주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회의를 열고 "정부가 제시한 대안사업을 검토한 결과 사업 규모와 현실성, 예산확보 대책, 제도적인 장치 등 확실성이 결여돼 있고 지역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미흡하다고 판단해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나 군수의 소신은 장항갯벌 매립을 통한 장항국가산업단지 '즉시착공'이라는 처음으로 되돌아갔다.

수 개월간의 정부안을 하루 반 만에 검토를 끝낸 것. 지역 주민들에게 정부안을 설명하거나 이해당사자들에게 의견을 청취하는 기본 절차도 생략됐다.

'하루살이 소신'일지언정 나 군수 개인 문제로 끝난다면 굳이 콩이요 팥이요 할 생각이 없다.

문제는 나 군수의 '하루살이 소신'에 5천년을 이어온 장항갯벌과 이를 터전으로 살아온 어민들도 '하루살이'가 될 수 있다는 데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장항갯벌은 금강 하구 북쪽의 충남 서천군 장항읍과 마서면 서쪽에 이르는 374만여평 규모의 매립예정지(새만금 북쪽 10㎞ 지점)로 18년 전인 1989년 장항 군산국가산업단지 조성사업으로 계획됐다. 이후 사업추진이 미뤄지다 2004년부터 사업지구에 대한 환경영향평가가 진행돼 찬반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 제안한 산업단지 대안 내용은
"환경생태형 도시로 종합개발"

▲ 정부는 최근 환경부를 통해 '어메니티 서천 2020 프로젝트'를 장항국가산업단지 대안으로 제시했다.
ⓒ환경부

정부가 지난달 22일 환경부를 통해 장항국가산업단지 대안으로 제시한 '어메니티 서천 2020 프로젝트'는 서천군을 환경생태형 도시로 종합 개발하겠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안에 따르면 구체적으로 기업도시법에 근거한 지식기반형 기업도시가 추진된다.

국립생태원(30만평)과 해양생태자원관(10만평)을 토대로 민간기업에서 에코-벤처단지(50만평), 관광단지(50만평) 등 에코시티를 조성하겠다는 것.

이를 위해 지역균형발전법에 의한 특정지역 또는 개발촉진지구로 지정해 민간기업의투자를 유치하고 기반시설을 집중 지원하겠다는 구상이다.

환경부가 국립생태원 조성에 3000억원, 해수부가 국립해양생태자원관 조성 및 습지보호구역 관리사업 등에 2359억원, 견교부가 도로 건설 등에 1500억원 등 모두 6859억원을 투자하는 것으로 돼 있다. 이 밖에 수족관, 에코벤처단지(곤충, 식물, 관상어 양식), 에코시티 등에 드는 1조1100억원은 민간투자를 유치하겠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고용창출 1만명, 인구 증가 4만명, 연 1000억원 등의 관광객 수입이 예상되고 생태관광 휴양도시로 새로운 지역 브랜드가 창출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안에는 서천지역 갯벌과 관련, "세계적 철새이동경로인 금강하구와 연결된 천연갯벌로 서해의 자연 해안선 중 보존이 양호한 청정해안 생태계와 수려한 풍광을 보유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환경단체는 "갯벌도 살리고 지역경제도 살리는 대안이 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지역주민과 시민단체가 함께 참여해 대안을 공론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반면 충남도와 서천군은 "장항산단을 대체할 만한 수준의 경제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실현 가능성도 낮다"고 주장하고 "산업단지 선(先)착공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며 대안논의 필요성을 부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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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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