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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군산복합세력의 세계대전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한 전세계 전투기시장의 주문 동향은 일정한 주기를 갖고 있다. 1945년 전세계 전투기 주문물량은 2500대다. 그러나 그후 급격히 하락하여 1950년 1천대, 1960년 7백대로 감소하다가 1970년에 갑자기 2천대로 물량이 늘어났다.

이 기조는 1980년 1900여 대로 유지되는 듯했다. 그러나 1990년 다시 6백대로 급격히 하락한다. 2000년에도 주문물량은 7백대에 불과했다. 1970년 이후 전투기 대량주문이 소멸된 것이다. 이러한 증가와 하락의 순환주기는 대략 25년이다. 전투기 한 대의 수명주기와 거의 일치한다.

[집중기획] 무기도입 사업의 추진 실태와 문제
1. '미국제 무기'에 휘둘리는 한반도, F-X 뒤에도 수조원대 사업 줄이어
2. 부시 달래는 '당근'치곤 너무 비싸지 않을까


그러면 21세기의 동향은 어떠할까. [제인연감] 등 각종 국제 군사연감을 참고해볼 때 현재 전세계 전투기 총수량은 2만6천대다. 이중 2500대의 F-5와 1500대의 미라주3/5를 포함한 약6천대는 수명이 다한 기종이다.

이제 또 다시 대량주문의 시대에 근접하는 순환주기에 들어선다고 보여진다. 이 분석을 기초로 대략적인 예상을 해본다면 향후 5년간 전투기 물량은 최소한 2600여 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약3천억 달러에 달하는 시장규모다. 향후 10년간 전투기 주문물량은 약6천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약7천억달러의 시장규모다.

이 시장을 놓고 신개념, 신기술이 적용된 최첨단 전투기를 내놓고 있는 각국은 21세기 전투기 시장 석권을 위한 발빠른 채비를 하고 있다. 자국의 과학기술과 산업능력을 합친 종합산업이며 국가 전략사업인 항공에 집중시킴으로써 경제패권도 노리고 있다.

특히 신소재, 첨단 전자전 기술, 신개념의 체계통합능력은 현대전에 부합되는 고지식의 전쟁수행을 위해 '제4세대급' 전투기 개발과 공격적인 해외 마케팅과 맞물리면서 국가의 사활을 건 전쟁으로 비화되고 있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범세계적인 군비확산을 불러일으킴은 물론, 새로운 차원의 군비경쟁을 부추긴다. 이 포성없는 전쟁은 과학기술의 군사화를 촉진함은 물론 21세기의 질서를 갈등과 경쟁의 양상으로 끌어가는데 톡톡히 한몫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환경 속에서 F-X사업, 한국 공군의 차기전투기사업은 2010년까지 4조2천억원을 들여 40대의 전투기를 들여오는 사업이다. 이 사업에는 미 보잉사의 F-15K, 프랑스 닷소사의 라팔, 유럽 컨소시엄의 유로파이터, 러시아의 수호이(SU-35)기가 경쟁 중이다.

▲ 라팔기(왼쪽)와 F15

이 4개 기종 중 F-15K와 라팔로 경쟁이 압축되면서 미국제냐, 유럽제냐 하는 논란이 고조되고 있다. 이 논란과 갈등 속에서 우리는 숙명적으로 피할 수 없는 '두 개의 전쟁'에 직면하고 있다.

'두 개의 전쟁'

그 첫 번째 전쟁은 미국세력과 유럽세력, 러시아세력간의 고강도 정치·외교전쟁이다. 그 중에서도 미국세력과 유럽세력간의 정면 충돌을 기본축으로 하면서 러시아가 제3의 세력으로 끼어드는 보조축을 형성하는 3파전의 양상을 띠고 있다.

한국 공군의 F-X사업은 곧 이어 닥칠 21세기 무기시장에서 3자간의 대충돌을 예견하는 서막을 이루고 있다. 이미 미국, 불란서, 러시아 3개국 대통령은 비슷한 시기에 김대중 대통령을 만나 자국의 전투기 수주를 부탁했다.

대통령 뿐만이 아니다. 자국의 대사, 국방장관, 합참의장, 국회의원이 총동원되어 한국의 청와대와 국방부, 공군을 향해 일제히 압박을 가하는, 말 그대로 올 코트 프레싱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최근 기무사에서 양심선언한 공군 장교를 구속한 이후 이들의 고공로비는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미국은 올해 다목적 합동전투기 개발사업으로 2천억 달러 규모의 JSF사업에 착수하였으며 그 수주업체로 미국 내 제1의 방산업체인 록히드 마틴이 선정되었다. 이 기종으로 미국과 영국에 3천여대를 판매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외에 네덜란드, 싱가포르, 터키, 이스라엘 등 전세계 국가들에도 약3천대의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약6천대의 전투기 시장을 완전히 석권하겠다는 야심을 다지며 세계 전투기의 '미국화'를 추진하고 있다. 전세계 전투기 시장을 미국이 장악하는 것은 향후 세계질서에서 미국의 지도적 위치를 보장하는 핵심 축이다.

유럽세력은 미국의 전투기 시장 독점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최근 유럽연합(EU)의 반미적 성향이 강화되는 추세를 볼 때, 그 충돌의 강도는 매우 심각하다. 특히 유럽이 세계 무기시장에서 미국에 저항하는 것은 미국의 세계 리더쉽에 대한 저항인 동시에 미국식 패러다임에 대한 충돌이다.

자존심 강한 프랑스는 한국의 F-X사업에서 미국에 밀리지 않기 위해 그 어떤 출혈도 불사할 태세다. 이러다보니 4조원에 불과한 한국의 전투기 시장은 상상을 초월하는 과열양상을 보이면서 고강도 정치·외교전쟁으로 비화된 것이다.

무기시장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전투기 시장을 장악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가 있다. 전투기는 모든 무기체계 중 핵심으로서 공급국에 의한 지속적 부품공급과 유지관리의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만일 미국이 전세계에 전투기를 판매하게 되면 전쟁을 통제하고 전략을 주도하는 군사적 영향력이 보장되기 때문에, 이것이 바로 전세계에서 위협관리, 전쟁관리의 유력한 수단이 된다. 전투기는 단순히 경제적 이익만이 아니라 국가의 핵심 대외전략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축으로서 그 중요성이 결코 간과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전투기 판매경쟁은 20세기 초 제국간 식민경쟁에 비견되는 현대적 의미의 식민정책이며, 강대국의 세계 경영전략의 중요한 축이다. 제국의 발톱들이 일제히 한국을 향하고 있다.

자주국방 세력과 연합방위세력의 충돌

이러한 국제환경 속에서 두 번째 전쟁이 기다리고 있다. 국제 군산복합세력의 세력경쟁을 한 축으로 하면서 한국군 내에는 창군 이래 한국군의 정신사를 이뤄온 주요한 두 축, 즉 '자주국방 세력'과 '연합방위 세력'의 정면 충돌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자주국방세력'은 더 이상 한미 군사동맹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완전한 시장논리에 의해 자주적으로 기종을 결정하자는 것. 그간 80%가 넘는 과도한 미국무기 의존의 폐해를 교훈으로 이제는 국제적으로 다변화된 무기도입을 주장하며, 한국 무기도입의 '세계화'를 주장하는 세력이다.

▲ 작년 11월15일 워싱턴에서 개최된 제33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 김동신 국방부장관(왼쪽)과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 ⓒ 국방홍보원

지난 30년간 한미 연합방위체제의 기본성격은 '역할분담론'에 깊이 중독되어 있었다. 미국이 증원군 중심의 해·공군, 한국이 지상군 전력으로 각자의 비교우위를 가진 가운데 연합전력 증강의 효율화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 연합방위 체제 하에서 과도한 육군 위주의 국방재원 편중, 해·공군 발전 제한이라는 불균형 상태를 초래했다. 연합방위체제에 충실하면 할수록 더욱 더 군의 정상적 발전과 멀어진다는 '안보 딜레마'가 한국군을 조여왔다.

따라서 무기의 자주화, 다변화는 한미연합방위체제로부터 상대적 자율성이 높은 해·공군과 국방과학연구소, 합참 정보본부를 위주로 형성되어 있다. 이들의 안보 패러다임은 한마디로 '박정희식 자주적 안보관'이라 할 것이다.

특히 이번에 공군의 하부단위인 조종사, 정비사들은 미국과의 동맹논리가 전투기 기종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해 격렬하게 반발할 태세다. 전투기의 최종 수요자인 공군의 하부단위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채 국방 최고위층의 정치논리에 따라 기종이 결정된다는 것은 자주국방의 좌절이라는 것이다.

최근 기무사에 구속된 공군 시험평가단의 조 모 대령은 공군의 나아갈 길, 미래 한국의 안보정책에 대해 보기드믄 신념가다. 이러한 자주국방세력과 국방 최고위층과의 충돌은 비단 이번 전투기 사업을 둘러싼 갈등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과거 금강·백두 정찰기 도입시, 조기경보기 도입 논란시에도 어김없이 드러났다.

반면 '연합방위세력'은 전투기 기종결정이 미국과의 동맹논리라는 정치적, 정책적 고려로 되어야 한다는 것. 주로 육군 중심의 국방부와 최고위층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 이들의 안보 패러다임은 '전두환식 대외의존적 안보관'이라 할 것이다.

현재 국방의 최고위층이 철저한 친미파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이며, 이중에는 과거 KFP사업 당시에 F-16을 추종하는 세력이 아직도 다수가 남아 F-X사업에 모종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12년 전 KFP 당시와 놀랍도록 흡사한 인맥구조의 실상은 이러하다.

우선 보잉사의 전투기 담당 이사들은 과거 한국에 F-18을 팔기 위해 협상하던 맥도널 더글라스사 임원진들이다. 맥도널 더글러스사가 보잉으로 합병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1989년 12월 한국정부가 F-18로 기종을 선정하고도 1991년 3월 F-16으로 기종을 번복하여 '다 된 밥에 코 빠뜨리는' 낭패를 경험했던 자들이다. 이들은 당시를 떠올리며 이제는 기어이 먹겠다는 각오로 이번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국방부 장관을 측근에서 보좌하며 김대중 대통령과 이정빈 외교 장관 방미시 동했했던 차 모 장군은 국방부 정책통으로서, 손꼽히는 미국통이다. 1980년 쿠테타로 등장한 전두환의 국보위 출신으로서 과거 F-16 도입시에 미국 업체와 모종의 잡음을 일으킨 사실이 있다. 현재 청와대와 국방장관 정책보좌의 최고 요직을 맡고 있다.

▲ F-16의 비행 ⓒ 국방홍보원

얼마 전 합참에서 3성장군으로 전역하고 미국의 랜드 연구소에서 대한반도 안보정책에 참여하고 있는 김 모 장군은 전두환-노태우 정권 양대에 걸쳐 청와대 국방비서관으로 재직하면서 당시 김종휘 외교안보수석의 지침을 받아 F-16으로 기종을 변경시킨 당사자다. 역시 F-X에 깊숙히 관여되어 있다.

재향군인회장을 역임한 이상훈 씨는 하나회 출신이며 과거 F-16 기종변경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국회 국정조사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인사다. 뇌물죄로 수감 중에 옥중 청문회 당시 F-16으로의 기종변경을 집중 추궁 당한 바 있다. 이상훈 씨가 작년 3월 한미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수행하여 방미했던 사실은 이미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당시 미국은 F-15K 구매 압력을 부쩍 강화하고 있던 시기였다. 신임 국방연구원장으로 임명된 황동준 씨는 과거 F-16으로 기종변경 당시 국방연구원에서 무기도입의 비용 대 효과분석에 관여하는 자리에 있었던 인물이다. 이번에 기종결정의 과정에 국방연구원이 최종 평가를 하는 기관이라는 점에서 예전의 관례를 깨고 연구원 출신을 연구원장으로 임명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

이러한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12년 전 KFP사업 당시 F-16 선호론자의 국방부 '재점령'이다. 친미파 실세군부의 전면배치를 통한 미국 중심의 안보정책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다. '전두환식 대외의존 안보관'의 부활이다.

여기에서 공군과 달리 국방부가 이번 전투기사업에서의 공정성, 투명성, 객관성을 상실하고 오로지 '미국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물적인 토대가 갖추어지고 있다. 이 모든 친미 군부 실세의 인맥체계를 완성하게 하는 데는 기무사령부의 역할도 간과하기 어렵다. 지금 기무사령부의 공군 조 모 대령 수사는 바로 유럽세력 발본색원하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렇듯 국방 최고위층을 중심으로 연합방위세력의 전면 포진, 평가방식과 배점기준을 조정함으로써 차세대전투기 기종선정에서 대한 모종의 의도를 표출한 사실은 분명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미국 중심의 안보정책, 정치논리에 의해 굴절된 무기도입이 천연덕스럽게 이루어진다면 멀지 않은 시기에 미국이 군의 인사까지도 장악하게 될 날이 곧 온다. 바로 한국형 군산복합체의 출현 징후다.

이 때문에 보다 정상적인, 자주적인 안보 리더쉽이 더욱 절실해지는 것이다. 아무튼 중요한 결정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이 시점, 후세의 역사는 2002년의 서울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전세계의 시선이 지금 서울로 집중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김종대(군사전문가) 씨의 기고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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