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부 금씨, 그를 만날 때

용두동 철거민 금병화씨의 하루

등록 2002.10.10 03:40수정 2002.10.15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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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더미 내려와 아스팔트를 적시네.
새벽녘 아직도 모두 잠든 이 시간.
황색조끼에 허름한 솜바지,
좁은 이마에 잔주름이 가득찬
청소부 김씨 그를 만날 때
새벽길이 왠지 힘이 솟구쳐.
그 누구도 밟지않은 새벽길
세상은 그리 어두운 것만은 아냐.


"세상은 그리 어둔 것만은 아냐... 세상은 그리 어둔 것만은 아냐..." 세상이 어둡게 보일 때마다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이 노래를 흥얼거리곤 했었다. 민중가요를 불렀던 락밴드 천지인 1집에 있던 이 노래.

a 용두동 철거민 금병화 아저씨.

용두동 철거민 금병화 아저씨. ⓒ 박현주

'청소부 김씨'를 상처받은 얼굴로 혼자서 가만가만 부르던 시절은 아마도 90년대 초반이었을 게다. 환경미화원에 대한 경외감마저 들게 했던 노래로 기억되는데, 10년이 흐른 2002년, 이 노래의 주인공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는 정말 생각지 못했다. 10년이 흘렀는데...

용두동 철거민 금병화씨(남, 55세)는 '미소맨'이다. 집을 잃은 지 석달. 그러나 집 잃은 사람의 얼굴이라고 믿기 어렵게 환한 표정을 하고 사람들을 바라보는 금씨 아저씨는 용두동과 선화동 일대를 청소하는 환경미화원이다.

용두동 철거민들의 싸움은 거의 2년이 다 되어 가는 동안 너무 힘들어 그만 두는 사람도 많았고, 지도부도 여러 번 바뀌었다. 계란으로 바위 치는 싸움인 철거민 운동. 투쟁하다 직업을 잃은 사람도 있고, 생계를 찾아 투쟁을 그만둔 사람도 있었다.

300여 가구가 참여하다가 이젠 남은 주민들은 42가구. 이 중 직업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금병화씨가 유일하다. 그러나 하루 24시간을 투쟁의 현장을 지키는 주민들처럼 그도 현장을 떠나지 않는다. 일을 마치면 부리나케 달려온다.

일을 하면서도 시위에도 빠짐없이 나오는 아저씨 한 분이 있다는 이야기를 철거민공동대책위원회 실무자로부터 들었을 때 그의 하루가 퍽 궁금했다. 아니 그의 인생이 궁금했다.


금병화 아저씨에게 인터뷰 좀 하자고 찾아갔을 때, 노숙 투쟁의 현장에 이미 해는 기울었고, 거리에서 먹는 늦은 저녁식사를 마쳤다. 중구청에서 가로등을 켜주지 않아 컴컴한 도로변엔 낮게 깔리는 습기 찬 어둠도, 행인들의 힐끗거림도, 중구청 정문을 지키는 앳된 얼굴의 전경이 취한 부동자세도 어느새 익숙해진 풍경이 되었다.

"힘드시죠?"
"어쩔수 없죠.(웃음)"


"직업이 뭐예요?"
"청소부요."

"경상도 사투리를 쓰시는데, 고향이 어디예요?"
"경북 안동입니더. 저는 안동댐 수몰민이에요. 고향이 물에 잠긴 후, 친척들이 살고 있는 대전에 와서 청소부로 일한 지 17년 되었어요."

댐건설에 고향을 잃고 주거환경개선사업에 또 한번 삶의 터전을 잃다니... 정부의 개발사업에 두 번씩이나 희생 당하는 처지였다.

"하루 일과를 말씀해주세요."
"밤 11시부터 새벽 5시까지 청소 리어카를 끌어요. 그리고 임시로 마련한 집에 들어가 어머니 밥을 차려드립니다. 그리고 바로 중구청으로 오죠. 그러면 주민들이 아침밥을 먹고 있습니다. 같이 밥을 먹고 투쟁하고, 밤 11시면 다시 청소하러 갑니다."

"집을 구하셨어요?"
"늙은 어머니 때문에 할 수 없이 용두동에 사글세방을 얻었어요. 주택공사 현장사무실 바로 앞이라 다닐 때마다 아주 싫어요."

"잠을 거의 못 주무시는데... 너무 피곤하지 않나요?"
"(웃음) 피곤하죠. 낮에 잠깐 눈을 붙이기도 해요. 두어 시간 잠을 잡니더. 잠을 쫒으러 커피를 많이 마셔요."

"잠깐 쉴 수 도 있는데, 왜 시위 현장에 매일 나오시죠?"
"마음은 늘 용두동 주민들이 있는 곳에 가있어요. 동료들과(환경미화원) 함께 이야기할 때에도 집에 있을 때에도, 여기가(시위현장) 자꾸 생각나서 금세 달려오게 돼요. 마음은 늘 콩밭에 가 있죠(웃음)."

"데모하느라 일을 빠지지 않았나요?"
"한번도 청소일을 빠진 적이 없습니더. 우리는 일용직인데다, 하루 빠지면 3일치의 일당이 떨어져나가요. 큰 시위가 있으면 동료들과 교대를 했구요."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죠?"
"이놈들하고(주택공사, 경찰, 중구청) 싸울 때가 가장 힘들어요. 너무 성질이 나서..."

"기분좋을 때도 있습니까?"
"집회 때 연설 듣거나 모임 때 이야기 듣는 것이 가장 좋아요. 많이 배우고 느낍니다. 기분이 확 풀어집니다."

"집이 철거당한 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조금 생각하다가) 사람이 더 강해졌어요."

"투쟁을 하기 전과 지금은 사회를 보는 눈이 달라졌나요?"
"네, 물론이죠. 전에는 그저 일만 했습니다. 먹고 살기 바빠서. 그런데 지금은 제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세계를 많이 봐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사회를 보고 사람들을 만나니 시야가 넓어졌어요."

"지금이 더 행복한가요?"
"(웃음) 집도 없는데 더 행복할 리가 있어요? 정말 힘들어요. 집 있을때가 더 행복했지요. 그러나 지금도 특별히 더 불행한 것은 아닙니다."

질문을 하다가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생애에 두 번씩이나 국가란 존재에게 느닷없이 희생당하면서도 불행하지 않다고 말하는 힘 앞에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부끄러워졌다. 지식인 운동가들한테는 결코 볼 수 없는 강인함이었다. 그 강인함은 '부드러움'이었다. 보이지 않는 부드러운 힘이 용두동 투쟁을 지키고 있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 들었다. 그리고 그 힘이 용두동을 계속 지켜주었으면 했다. 눈물이 찔끔 났다.

"가장 속상하고 불행하다고 느낄 때는 언제입니까?"
"비올 때요. 비가 오는데, 노인들이 비맞으면서 잠을 자는 것을 볼 때 가장 불행감에 빠져들어요."

"소망이 무엇입니까?"
"집 마련해달라는 것입니다. 내 땅에 내 집이었는데... 그리고 빨리 가수용 단지를 지어주고 살집을 달라는 거예요. 다른 건 없어요."

"이 싸움에서 이길 것 같아요? "
"이길 때까지 싸울 거에요."

이길 때까지 싸울 거라는 용두동 철거민 '청소부 금씨'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버스 안에서 내내 흥얼거린다. 10년만에...

쓰라렸던 지난날
세상살이의 흔적들
끝없는 어둠에 상처뿐인 세상을
눈부신 햇살 새아침을 위하여
새벽 눈망울로 떨쳐나선 그대여.
청소부 금씨 그를 만날 때
새벽길이 왠지 힘이 솟구쳐
그 누구도 밟지않은 새벽길
세상은 그리 어두운 것만은 아냐.
청소부 금씨 그를 만날 때...
청소부 금씨 그를 만날 때...

덧붙이는 글 | 용두동 철거민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강제 철거 된 후 79일째 중구청 앞에서 노숙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날이 추워져 힘겨워졌습니다. 그러나 싸움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중구청과 대한 주택공사 대전충남지사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주민들을 자주 방문하셔서 위로와 격려를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E-mail : liferights@hanmail.net 
★ 후원계좌 : 김규복(예금주) // 한빛은행 563-039690-02-007
★ 연락처: 대전지역철거민공동대책위원회 042) 621-8891

덧붙이는 글 용두동 철거민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강제 철거 된 후 79일째 중구청 앞에서 노숙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날이 추워져 힘겨워졌습니다. 그러나 싸움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중구청과 대한 주택공사 대전충남지사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주민들을 자주 방문하셔서 위로와 격려를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E-mail : liferights@hanmail.net 
★ 후원계좌 : 김규복(예금주) // 한빛은행 563-039690-0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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