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젠지가 아름다운 것은 호수가 있기 때문이다

겨울에 본 간또(關東) 지방의 근대와 현대문화 ⑧

등록 2007.02.20 17:47수정 2007.02.20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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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이제 다이야가와(大谷川) 옆으로 나있는 도로를 따라 주젠지(中禪寺) 호수(中禪寺湖)로 향한다. 닛코 산나이(山內)에서 주젠지 호수로 오르는 길은 굽이굽이 돌고 도는 구절양장 고갯길이다. 일본 사람들은 이 길을 이로하자카(いろは坂)라고 부른다.

'이로하'는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유명한 일본의 시이다. 이 시가 48자로 이루어졌으며, 그 숫자가 이 고개의 구비 수와 일치해서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48자로 된 이 시는 그 내용이 아름답고 애절할 뿐만 아니라 개개의 글자가 모두 달라 애들이 처음 히라가나를 배울 때 이 노래를 외웠다는 것이다.


이로하 노래(いろは歌)

いろはにほへと / ちりぬるを
わかよたれそ/ つねならむ
うゐのおくやま / けふこえて 
あさきゆめみし / ゑひもせす

아름답게 피는 꽃도 머지않아 떨어져 버리네.
우리 인생도 이처럼 덧없는 것을.
이 무상한 인생의 험한 산길을 오늘도 넘어가네.
허망한 꿈을 꾸거나 취한 것처럼 멍해 있으면
이 세상의 참 모습을 알 수가 없다네. / 이상기

이 시를 통해 문자도 배우고 문학도 배우는 이중의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인생은 산에 오르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니 취생몽사(醉生夢死)하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가르친다.

이 길은 하도 험하고 굴곡이 심해서 일방통행로로 지정해 놓았다. 일본은 좌측통행이기 때문에 왼쪽으로 주젠지 호수까지 올라가서 오른쪽으로 내려오도록 되어 있다. 주젠지 호수까지 이어진 길은 오르는 길이 20구비, 내려오는 길이 28구비 도합 48구비이다.

오르는 길에 아케치다이라(明智平) 전망대가 있다. 이곳에서는 도쇼쿠 등 문화유산과 호수, 폭포, 산악 등 닛코 국립공원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주젠지 호수 너머로 보이는 난타이산 연봉
주젠지 호수 너머로 보이는 난타이산 연봉이상기
해발 530m의 닛코 산나이에서 이로하자카를 통해 해발 1269m의 주젠지 호수에 이르면 둘레가 21㎞나 되는 크고 시원한 호수가 펼쳐진다. 그 호수 너머로는 하얀 눈을 뒤집어쓰고 있는 난타이산(男體山) 연봉이 펼쳐진다.

차를 주젠지 옆에 대고 시원한 호수의 바람을 쐬면서 산과 호수의 기운을 가슴 속 깊이 들이마신다. 겨울이라 유람선은 운행하지 않고 사람도 많지를 않아 오히려 호젓하고 좋다.


주젠지 절에서 내려다 본 주젠지 호수의 모습
주젠지 절에서 내려다 본 주젠지 호수의 모습이상기
우리 일행은 호수 옆에 있는 절 주젠지를 향한다. 주젠지코라는 호수 이름이 바로 이 주젠지(中禪寺)라는 절 이름에서 나온 것이다. 주젠지는 784년 쇼도(勝道) 성인에 의해 이곳 난타이산 아래 호숫가에 세워졌다.

주젠지는 사람들의 기도를 잘 들어주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어떤 소원을 이루기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주젠지는 북쪽과 서쪽으로 문이 나 있으나 입장료를 받기 위해 북쪽 문만을 개방하고 있다.


주젠지 절의 정문(안에서 본 모습): 북향을 하고 있다.
주젠지 절의 정문(안에서 본 모습): 북향을 하고 있다.이상기
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범종이 있고 왼쪽으로 이시도리이(石鳥居)가 있다. 이들을 지나 똑바로 가면 서향을 한두 채의 건물이 나타난다. 호수를 향해 앞에 있는 것이 혼도(本殿)이고 뒤에 있는 것이 고다이도(五大殿)이다.

혼도 안에는 주젠지에서 가장 유명한 목조 관음이 있다. 일본 사람들은 이것을 다치키관온(立木觀音)이라 부르는데, 우리 식으로 말하면 천수관음이다. 천 개의 손을 가지고 있으니 사람들의 소원을 잘 들어줄 수밖에.

입목관음이 모셔져 있는 혼도의 모습
입목관음이 모셔져 있는 혼도의 모습이상기
이곳을 보고 뒤에 있는 고다이도로 갔다. 이 건물은 2층으로 되어 있다. 1층을 보고 2층으로 올라가니 다섯 분의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이곳은 주로 스님들이 참선 기도하는 곳이며, 일반 신도들도 기도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곳을 지키는 스님이 우리에게 뭔가를 열심히 설명해 주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어 미안하기 짝이 없다. 일본어를 좀 더 배우든지 이거 원 참.

고다이도의 출구는 2층에 있다. 이곳을 나오니 조금 높은 언덕으로 이어져 주젠지 호수의 전망이 정말 좋다. 호수 너머 난타이산의 모습도 좀 더 가까이 보이는 듯하다. 이곳 주젠지는 호수의 물, 산의 하얀 눈과 어울려 마치 신선의 세계처럼 보인다.

서양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한국의 풍경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한겨울 눈이 온 아침의 산사(山寺)"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곳 주젠지는 이름 그대로 선(禪) 한가운데 있는 모습이다.

호수쪽에서 바라 본 주젠지 전경
호수쪽에서 바라 본 주젠지 전경이상기

덧붙이는 글 | 이번 여행(지난 1월 30일∼2월 3일)의 주제는 간또 지방의 근대와 현대문화 보고 듣기이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 정치의 중심이 간사이에서 간또로 넘어갔으며, 그 근현대의 흔적을 찾아 가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이다. 약 15회에 걸쳐 간또지방을 중심으로 번성한 일본의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본다.

덧붙이는 글 이번 여행(지난 1월 30일∼2월 3일)의 주제는 간또 지방의 근대와 현대문화 보고 듣기이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 정치의 중심이 간사이에서 간또로 넘어갔으며, 그 근현대의 흔적을 찾아 가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이다. 약 15회에 걸쳐 간또지방을 중심으로 번성한 일본의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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