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 호수의 해적선을 타고 하코네마치로

겨울에 본 간또(關東) 지방의 근대와 현대문화 ⑪

등록 2007.02.26 13:54수정 2007.02.26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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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산에서부터 아시 호수를 거쳐 하코네(마치)로 연결되는 교통로 지도
조운산에서부터 아시 호수를 거쳐 하코네(마치)로 연결되는 교통로 지도이상기
아시 호수는 해발 723m의 높이에 있는 화산 호수이다. 수심이 43.5m, 둘레가 19㎞인데 투명도가 10m나 되는 아주 맑은 호수이다. 경우에 따라 호수에 비치는 후지산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호수의 북쪽에 있는 도겐다이(桃源臺) 항에서 해적선에 오른다. 이 배는 남북으로 길게 펼쳐져 있는 아시 호수를 가로 질러 남쪽의 하코네마치(箱根町)까지 운행한다.

우리가 탄 해적선
우리가 탄 해적선이상기
해적선이라는 이름은 재미를 위해 그렇게 치장을 한 것이지 결코 무시무시하지 않다. 배는 천천히 출발한다. 10.5노트의 속도로 약 40분을 운행하면 하코네마치에 도착한다. 배를 타고 가면서 좌우에 보이는 경치가 정말 시원하고 훌륭하다. 스위스의 루체른 호수나 취리히 호수와 분위기가 비슷하다. 그리고 높은 산 속에서 호수를 볼 수 없는 우리 입장에서는 부럽기만 하다.


오다큐야마 호텔 뒤로 고마가타케 정상이 보인다.
오다큐야마 호텔 뒤로 고마가타케 정상이 보인다.이상기
호수 왼쪽으로 하코네엔(箱根園)이 있으며 이곳에서 고마가타케(駒ケ岳) 정상까지는 케이블카로 연결된다. 곧 이어 역사와 전통을 지닌 오다큐야마(小田急山) 호텔이 보인다. 이곳은 에도시대부터 있던 것으로 옛날부터 사람들이 묵어가는 여관의 구실을 했다고 한다.

하코네 마치 항구 풍경
하코네 마치 항구 풍경이상기
배가 서서히 하코네마치 항으로 들어선다. 아시 호수의 남쪽에는 모토하코네(元箱根)와 하코네마치 두 마을이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모토하코네는 진자(神社)가 있는 번화가였고, 하코네마치는 세키쇼(關所)가 있는 역원촌이었다.

이곳 하코네는 옛날 에도와 교토를 잇는 1번 국도 중 도쿄에 들어가고 나가기 위한 관문 역할을 했다. 그래서 조선의 통신사들도 이곳 하코네를 반드시 지나갔고, 하코네와 아시 호수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1643년 7월4일 윤순지가 이끄는 조선통신사 일행은 하코네를 지난다. 이날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아시 호수에서 바라 본 하코네세키쇼 전경: 조선통신사 일행이 이곳을 지나갔다.
아시 호수에서 바라 본 하코네세키쇼 전경: 조선통신사 일행이 이곳을 지나갔다.이상기
4일(을미)

비가 내림. 삼도(三島: 미시마)를 떠나 세 판교(坂橋)를 지나니 인가가 연속된 것이 10여 리나 되었다. 땅은 비탈이 지고 네 냇물이 둘러싸고 있다. 상근령(箱根嶺)에 당도했다. 이곳은 곧 부사산(富士山) 동쪽 기슭으로 일본에서 가장 큰 고개이다. 고갯길이 험하고도 긴데, 이때 마침 장마철이어서 흙탕물이 정강이까지 빠졌다. 수십 리 길을 가는 동안에 모두 대나무를 엮어서 길바닥에 깔았으니 인력을 많이 들인 것을 알 만하였다.


고개 마루턱을 넘고 보니 두 산이 마주보고 있는 사이에 땅이 조금 펑퍼짐했다. 그 속에 호수가 있는데 그 둘레가 수백 리가 되었다. 그 근원은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가 없으며, 물이 맑고 깨끗하였지만 깊이는 알 수가 없었다. 전하는 말로는 그 속에 신물(神物)이 있어서 이름을 구두룡(九頭龍)이라 하는데 가끔 나타난다고 했다. 이곳이 바로 상근호(箱根湖)이다.

호숫가에는 인가 두세 채가 있다. 이곳은 상모주(相模州) 땅으로서 이두주(伊豆州) 경계는 고개 앞에서 다했다고 한다. 호숫가 점사(店舍)에서 점심을 먹는데 대관(代官) 이내병장(伊奈兵藏)과 우위문(右衛門) 강천태랑(江川太郞) 등이 접대해 준다. 점심을 먹은 뒤에 비를 맞고 고개를 내려갔다. 위험한 잔도(棧道)가 꾸불거리고 어지러운 돌이 여기저기 서 있으며 아래로는 큰 골짜기에 임하여 눈이 어지럽고 무서웠다. 그리고 흙탕물이 돌에 부딪치고 어두운 안개가 숲을 메웠으므로 말발굽이 떨려서 자주 자빠졌다.


간신히 고개를 넘어 세 판교(坂橋)를 지나니 비로소 평지가 나오는데, 고개 앞뒤가 모두 40리나 되었다. 소전원(小田原: 오다와라)에 이르니 날이 이미 어두웠다."
(번역문은 http://www.minchu.or.kr 의 『계미 동사일기』를 토대로 하였음)


우리 일행은 겨울에 버스와 유람선을 타고 아주 편안하게 이곳을 감상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사회 간접자본 즉 도로와 교통의 문제로 인해 너무나 많은 고생을 하고 있다

해적선 선장의 여유있는 모습(좌)/해적선에 만들어진 조각품: 후크 선장 이야기에 나오는 피터같이 보인다(우)
해적선 선장의 여유있는 모습(좌)/해적선에 만들어진 조각품: 후크 선장 이야기에 나오는 피터같이 보인다(우)이상기
360년의 시간 격차를 두고 조선통신사와 우리가 이곳 하코네를 공유하고 있지만 그 경험은 이렇게 다르게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6~7개월이나 걸리는 여행에서 매일 매일 일어나는 일을 이렇게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정신적인 세계는 지금의 우리에 결코 전혀 뒤지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 이번 여행(지난 1월 30일∼2월 3일)의 주제는 간또 지방의 근대와 현대문화 보고 듣기이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 정치의 중심이 간사이에서 간또로 넘어갔으며, 그 근현대의 흔적을 찾아 가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이다. 약 15회에 걸쳐 간또지방을 중심으로 번성한 일본의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본다.

덧붙이는 글 이번 여행(지난 1월 30일∼2월 3일)의 주제는 간또 지방의 근대와 현대문화 보고 듣기이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 정치의 중심이 간사이에서 간또로 넘어갔으며, 그 근현대의 흔적을 찾아 가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이다. 약 15회에 걸쳐 간또지방을 중심으로 번성한 일본의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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