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식 그림을 보고 온천욕을 하면서 마로우도(稀人)가 되다

겨울에 본 간또(關東) 지방의 근대와 현대문화 ③

등록 2007.02.10 17:43수정 2007.02.10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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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식사 후 방에 들어와 잠시 휴식을 취한다. 이때 한쪽 벽에 걸려있는 산수화보다는 다른 쪽 벽에 걸려있는 달력이 더 눈에 띤다. 그것은 산과 골짜기 그리고 소나무로 이루어진 동양화에 비해 달력의 그림이 훨씬 더 일본적이기 때문이다. 판화로 찍은 그림인데, 우리의 민중 미술 같은 느낌이 든다. 과감한 생략과 강조를 바탕으로 일본 사람의 풍속과 생활을 원색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그림들은 다끼히라 지로(瀧平二郞: 1921-)의 판화 작품이다. 다끼하라는 이 달력에 '마음에서 우러나는 시'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림을 통해 마음속의 생각을 표현하려고 한 것 같다. 1월(睦月)의 시제는 '학은 천년을 살고 거북이는 만년을 산다'이다. 1월이 되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손자 녀석들에게 제기와 연을 만들어주는 내용이다. 벽에는 다섯 마리 학이 그려져 있고, 할아버지가 든 연에는 용(龍)자가 쓰여 있다.


‘복은 안으로 악귀는 밖으로’라는 시제가 붙은 2월의 그림
‘복은 안으로 악귀는 밖으로’라는 시제가 붙은 2월의 그림이상기
2월(如月)의 시제는 '복은 안으로 악귀는 밖으로'이다. 도깨비 탈을 쓴 악마가 집으로 들어오려는 것을 오누이가 문에 서서 막고 있다. 3월에는 버드나무, 4월에는 꽃눈(花雪), 5월에는 풀피리(草笛), 6월에는 보리(麥)가 화제이다. 7월에는 여름철의 한가함이 그려지고, 8월에는 냇가에서 목욕하는 아이들이 그려져 있다.

꽃눈이 내리고 있는 4월의 그림
꽃눈이 내리고 있는 4월의 그림이상기
9월에는 저녁나절의 귀가가, 10월에는 가을걷이와 석양이 그려져 있다. 9월과 10월의 그림에는 색조가 노란색과 붉은색으로 변해 있다. 11월과 12월에는 앙상한 나뭇가지 눈 덮인 산, 따뜻한 방안 풍경을 그려 세월의 흐름을 표현하고 있다.

일본 여행을 하면서 이렇게 그림에 마음을 뺏겨 본 적이 없는데 다끼히라를 통해 일본 그림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1층 프런트에 가서 달력이 남아 있으면 하나 얻을 수 있겠냐고 물어 본다. 아들로 보이는 젊은이가 내실로 들어가더니 방에 걸린 것과 똑같은 달력을 하나 가져다준다. 아직 1월에 다가지 않았으니 달력이 남았던 것 같다.

료칸 프론트에 가지런히 정리된 신발의 모습
료칸 프론트에 가지런히 정리된 신발의 모습이상기
방으로 돌아와 아내와 함께 유카타로 갈아입고 1층에 있는 온천장으로 향한다. 이곳으로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가 이곳의 물이 정말 좋으니 온천욕을 꼭 하라고 권했기 때문이다. 온천에 들어가 보니 샤워시설은 좀 낡았다. 더운 물과 찬물을 적당하게 섞는 일이 쉽지가 않았다.

바로 탕으로 들어가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근다. 몸이 어느 정도 뜨거워지자 밖에 노천탕으로 나가 눈(雪)과 자연을 보면서 물속으로 들어간다. 몸은 따뜻하고 머리는 서늘하고 눈(眼)은 시원하다. 노천탕에서 하는 목욕의 진수를 느낄 수 있어 좋다.


노천탕에서 바라본 자연의 모습
노천탕에서 바라본 자연의 모습이상기
목욕을 끝내고 우리 팀들이 모여 이곳 아이즈 반다이(會津磐梯) 지역에서 유명한 청주(淸酒)를 한잔씩 마신다. '굴라시쿠(Classic)'라는 이름의 정종인데 술을 만들 때 이 음악을 들으면서 만들어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포장지에 모차르트의 사진과 악보가 있어 음악과 관련이 있겠다 생각했더니 이런 깊은 뜻이 있을 줄이야. 우리 일행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정종에 취해 깊어가는 일본의 겨울밤을 만끽한다.


이나와시로 덴포진(伝保人)과 외지에서 온 마로우도(稀人)

이나와시로 덴포진은 전통과 역사 그리고 문화유산을 보전하고 후세에 전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리고 마로우도는 외지에서 이 지방을 찾아오는 귀한 손님을 말한다. 일본의 민속학에서는 타향에서 내방하는 신(神)을 마로우도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나와시로의 자연과 역사, 문화와 전통을 알고 싶은 마로우도는 이나와시로 덴포진의 안내를 받아 현장을 체험할 수 있다. 이나와시로를 찾는 모든 마로우도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 이나와시로 덴포진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나와시로 덴포진은 우리의 문화유산 해설사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 이상기

덧붙이는 글 | 이번 여행의 주제는 간또 지방의 근대와 현대문화 보고 듣기이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 정치의 중심이 간사이에서 간또로 넘어갔으며, 그 근현대의 흔적을 찾아 가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이다. 여행은 센다이에서 시작해 도쿄로 이어진다. 약 10회에 걸쳐 간또지방을 중심으로 번성한 일본의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본다.

덧붙이는 글 이번 여행의 주제는 간또 지방의 근대와 현대문화 보고 듣기이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 정치의 중심이 간사이에서 간또로 넘어갔으며, 그 근현대의 흔적을 찾아 가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이다. 여행은 센다이에서 시작해 도쿄로 이어진다. 약 10회에 걸쳐 간또지방을 중심으로 번성한 일본의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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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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