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란 다른 세상을 여는 훌륭한 도구이며 마법의 열쇠다.유신준
구마모토는 내게 인연의 땅이다. 8년 전, 그러니까 98년에 교류연수 기회가 있어 이곳에서 아홉 달 동안 살았던 적이 있다. 지금 찾아가는 우츠노미야씨도 그때 인연을 맺은 분이다. 그분 근무처가 현 경찰본부였는데 내가 근무하던 현청과는 사이좋게 붙어있는 건물이었다.
어느 날인가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현청 앞 은행나무 정원에서 쉬고 있는데 그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면서 서로 알게 됐다. 알고 보니 한국에 관심이 많았던 분. 우연히 서로 알게 되어 내가 귀국한 뒤에도 서로 잊지 않고 가족끼리 왕래하며 인연을 소중히 이어왔다.
언어란 다른 세상을 여는 훌륭한 도구다. 소통되지 않으면 그냥 그림 속의 박제된 세계일 뿐이지만 언어가 통하면 그 세계가 살아 움직이며 통째로 다가온다. 말이 통하는 순간 가로막힌 장벽이 풀리고 내가 몰랐던 또 하나의 세상이 열리는 것이다.
단지 그림 속의 풍경처럼 느껴졌던 피상적인 세계가 실제로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세상으로 바뀌는 마법. 언어란 그림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마법의 열쇠가 되는 셈이다. 이곳에서 살았던 아홉 달 동안 느낀 생각들이다.
구마모토 초입에서 우츠노미야 댁 위치를 묻기 위해 파출소에 들렀다. 경찰관이 지도까지 그려가며 상세히 설명해준다. 설명을 듣다보니 아뿔싸, 목적지인 오미네까지는 거리가 20km가 넘는단다. 구마모토에 도착하면 금방일 줄로 알았는데. 시내를 향하는 길이 완만한 내리막으로 이어져 힘들지는 않았다.
구마모토에는 노면전차가 있다. ‘로덴’이라고 부르는 노면전차는 이곳의 도심을 달리는 주요 교통수단이다. 전찻길은 차도에 나있어 자동차와 차도를 함께 쓴다. 처음 봤을 때 자동차와 전차가 도로를 사이좋게 달리는 것을 보고 얼마나 신기했던지.
지도로 알기 힘든 길이 나올 때마다 몇 군데서 더 물어본다. 아직도 한참을 더 가야 한다는 얘기뿐. 하긴 20km라는 거리가 자전거로 간단히 해결될 분량이 아니다. 달리는 동안 주위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시내라서 야간 주행에 걱정은 없으나 배도 고프고 피곤해졌다. 우선 저녁을 먹고 기운을 내보기로 하고 근처 회전초밥집을 찾아 들어갔다.
밥 위에 얹은 회가 큼직하고 초밥이 제법 맛있다. 대개의 경우 회전초밥집은 한 접시에 100엔 짜리가 많은데 이곳은 좀 비싸다. 작은 접시 하나에 200∼300엔은 기본이고 더러 500엔 짜리도 보인다. 어쩐지 맛있다 했더니… 저녁을 먹고 나니 좀 기운이 난다. 다시 길 찾기를 시도해봤지만 어두운 밤거리를 헤매며 시내에서 길 찾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길을 잃고 국제미아가 될 뻔하다